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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정보/비텐베르크

Wittenberg | Introduction. 비텐베르크

종교개혁은 단지 개신교 내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었다. 이것은 소수에게 집중된 권력이 다수의 민중에게로 이양되는 혁명적인 사건이었으며, 현대 독일어의 틀이 완성되어 다수의 민중에게 지식이 공급되도록 한 시발점이었다. 우리로 따지면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버금가는, 사회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버린 엄청난 혁명의 순간인 것이다.


종교개혁의 시작은 의외로 조용했다. 당시 로마 교황청이 면죄부를 판매하고, 심지어 이미 죽은 사람의 면죄부까지 판매하는 지경에 이르자, 당시 신학 교수이자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이름없는 목사가 자신의 교회 출입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것이 혁명의 시작이다. 로마 교황청의 행태가 자신이 알고 있는 성경의 내용과 모순되는 점이 많아 이에 대해 토론을 해보자며 먼저 의견을 게재한 것이다. 아, 정말 토론을 좋아하는 독일인들이란!


이 이름없는 목사가 바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이다. 그리고 그가 95개조 반박문을 써붙인 교회가 비텐베르크(Wittenberg)에 있는 슐로스 교회(Schlosskirche)이다. 이후 루터는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종교개혁 운동에 힘 쓰게 된다. 아이제나하(Eisenach)에서는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까지 완수했다. 하지만, 루터의 발길이 닿은 수많은 도시 중 지금 독일에서 "루터의 도시(Lutherstadt)"라는 공식 타이틀을 가진 도시는 단 두 곳뿐. 그 중 하나가 비텐베르크이다. 그래서 비텐베르크의 정식 명칭은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Lutherstadt Wittenberg)"이다. (나머지 한 곳은, 루터의 고향이자 그가 임종을 맞이한 아이슬레벤이다. Lutherstadt Eisleben이라고 적는다.)


그렇다. 한 마디로, 이 도시는 성지(聖地)이다. 오늘날에도 루터의 흔적을 좇는 순례자들이 이 작은 도시로 모여든다. 종교개혁과 관련된 유적지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