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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정보/비행기

라이언에어 |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 노숙

여행 중 라이언에어 스케줄 때문에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Stansted Airport)에서 하루밤을 보내야했다. 스탠스테드 공항은 2013년 6월에 방문했을 때 노숙까지는 아니지만 새벽 일찍부터 공항에서 몇 시간을 보냈던 경험이 있다. 그 때의 기억만 생각하고서 "그 정도면 하루밤 잘 수 있지" 하는 안일한 생각에 예약을 마쳤다. 그리고는 편의시설을 찾아보려 공항 홈페이지를 뒤져보니 샤워실이 있다고 해서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다가 2014년 중 스탠스테드 공항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이언에어는 새벽 일찍부터 출발하는 노선이 많은데다가 런던 시내에서 그 새벽에 버스를 타고 공항까지 가는 것이 쉽지 않다보니 공항에서 노숙하는 사람이 많다. 원래부터 그랬던 곳이다. 그런데 마치 "노숙하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내려는듯 최소한의 쉴 곳조차 없애버린채 "노숙하기 최악의 공항"으로 돌변해버린 것이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던 중 "스탠스테드 공항은 매일 밤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호스텔이 된다"고 표현하는 것을 보았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한다. "스탠스테드 공항은 매일 밤마다 난민촌이 된다."

우선 공항 대합실의 의자를 조금만 남기고 다 치워버렸다. 눕기는 커녕 앉을 곳도 없다. 바닥은 차가운 대리석, 그냥 앉아있는 것도 엉덩이 아픈 곳에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잔뜩 보인다. 침낭이라도 챙겨오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해서 외투만 대충 깔고 웅크려 자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당시 겨울이었는데 난방도 전혀 가동하지 않았다.


소수의 의자를 차지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단 카페 등 편의시설을 찾는다. 코스타 커피(Costa Coffee)가 대표적인 곳. 특히 소파 좌석은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하다. 단, 모든 상점이 24시간 영업하는 게 아니다. 가령, 코스타 커피 바로 옆 버거킹은 새벽 2시경에 문을 닫는다. 만약 버거킹에서 자리를 잡고 소파에 누웠다면 새벽 1시에 청소 때문에 쫓겨나고, 버거킹 앞 딱딱한 의자 테이블에 누워도 새벽 2시경 쫓겨난다.


카페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제 크지 않은 공항 내에서 최대한 몸 구길 곳을 찾는다. 창문 바로 앞 바닥에 길게 금속으로 된 바(bar) 형태의 구조물이 있는데, 이 좁은 금속 위에서 눕거나 앉는 사람이 많다. 특히 창문쪽에 있는 카페나 영업장 뒤편의 좁은 구석까지 찾아들어가 쉬는 사람도 보였다.


여기도 놓쳤다면 이제 차가운 맨바닥밖에 없다. 그나마 통로에서 먼 쪽, 가급적 기둥 뒤편의 그늘진 곳에 하나둘 사람들이 눕거나 앉기 시작한다. 그나마 순찰하는 경비원들이 주기적으로 지나다니므로 도난 사고 등은 없는 것 같았다.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이 있어 물이나 간식 같은 것은 조달이 가능하다.


전원을 충전할 콘센트는 사실상 없다. 화장실 입구 앞 정도에 몇 개 보였는데 택도 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영국은 콘센트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어댑터 없이 아예 이용할 수 없다. 와이파이는 1시간 무료, 그 이상 사용하려면 1일권을 결제해야 되는데 가격은 비쌌다(9파운드). 전원 충전도 힘들고 와이파이도 제한적이니 밤을 새고 싶어도 시간 보내기 참 힘들 것이다.


또한 새벽 4시경부터 청소를 시작하면서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깨운다. 경비원들이 짝을 지어 돌아다니며 바닥에 누운 사람들이 일어날 때까지 깨운다. 만약 깼다가 도로 잠들면 다시 와서 깨운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바닥에서 노숙이 가능한 시각은 새벽 4시까지라고 보면 되고, 코스타 카페 등 영업장에서 잔다면 그러한 제한은 없다.

공항이 다시 깨어나면 난민촌은 공항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비행 스케줄에 맞춰 수속하고 입장하는 사람들로 분주해진다. 일단 공항에서 티켓팅하고 출국장으로 입장하면 출국장에도 의자는 더 있다. 그래서 바닥에서 자던 사람들은 차라리 일찍 입장해서 출국장 내에 있는 의자를 확보하는 편이 낫다. 앞서 라이언에어의 수속에 대해 정리하면서 이야기하기를, 라이언에어는 미리 온라인 체크인을 하고 보딩패스를 출력해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내 비행 스케줄이 언제든간에 보딩패스가 있으므로 개찰구에 스캔하고 출국장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최대한 일찍 들어가 자리를 확보하는게 좋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 같은 여행자들은 비자 체크를 받아야 한다. 비자 체크는 수속 카운터가 열려야 하므로 내가 탑승할 비행기의 카운터가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현지인들은 미리 입장할 수 있고 외국인 여행자는 그럴 수 없는 구조. 덕분에 출국장에 들어가도 이미 의자는 꽉 차서 다리 뻗고 눕기는 어렵다. 참고로, 공항 전광판에 수속 카운터가 표시되어 서둘러 가도 카운터에 직원이 없다. 전광판을 보고 탑승객이 찾아와 줄을 길게 서면 그제서야 카운터를 오픈한다. 말인즉슨, 일단 와서 줄 서는 것 보고 오픈해야 자신들의 노동력을 절약할 수 있다는 뜻일 게다.

2013년 6월에 스탠스테드 공항을 이용할 때 출국장 내에도 휴식공간은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왜인고하니 예전에 보지 못한 쇼핑 시설이 잔뜩 생겼기 때문이다. 공항의 돈벌이 때문에 승객의 편의는 크게 제한된 이런 변화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심지어 공항 내 화장실조차도 부족하다. 그런데 편의시설을 늘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2014년 12월 당시 출국장은 아직도 뭔가를 공사하는 구역이 있었다. 아마도 이런 쇼핑 시설을 더 늘리는 중인 것 같다.


여담 하나. 그래서 홈페이지에는 있다고 나오는 샤워실은 존재하는가? 천만의 말씀. 화장실도 부족한 곳에 샤워실이 있을 턱이 있을까. 그런데 공항 공사는 열심히 하면서 홈페이지는 안 고치고 있으니 자기들이 생각해도 이런 개악(開惡)이 떳떳하지 않은 모양이다.


하여 결론을 내린다. 혹시라도 스탠스테드 공항에서 노숙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시길. 피치 못한 상황이라면 맨 바닥에서 밤을 샐 각오를 하시길.

참고로 라이언에어 환승만 하더라도 런던 입국심사는 받아야 한다(아일랜드는 예외). 똑같이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필자는 신고서에 주소를 적을 때 Stansted Airport라고만 적었고, 입국심사 시 "여기서 자고 내일 새벽에 비행기 탄다"고 이야기했다. 꼬장꼬장하게 생긴 입국심사관은 그래도 못 미더운지 자꾸 질문을 던지고, 내 머리 속에서 문장을 만들 틈도 주지 않고 계속 몰아붙였지만, 어쨌든 입국심사는 문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