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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독일 #2

jtbc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독일편 세 번째 이야기이자 실질적으로 두 번째 이야기. 지난주의 축구 이야기를 마저 마무리하고,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를 찍고 다하우(Dachau)를 갔다.


일단 축구 이야기 마무리.

그런데 이 자막은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다. 벤츠, 폭스바겐 등 독일의 기업과 지역구단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데, 엄밀히 말하면 분데스리가에서 기업이 운영하는 구단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지역 내에서 독자적으로 자생하는 시민구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벤츠가 운영하는 구단은 슈투트가르트, 폭스바겐이 운영하는 구단은 볼프스부르크, 그리고 제약회사 바이엘이 운영하는 구단은 레버쿠젠, 이런 식으로 극소수의 사례가 존재하는 것이고, 너무도 유명한 바이에른 뮌헨이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은 모두 시민구단이라고 보면 된다. (이것이 한국의 시민구단과 같다는 뜻은 아니지만, 아무튼 큰 틀에서 개념을 이해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이 모든 것을 요약하는 것 같다. "축구는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다." 독일의 축구를 묘사하는 것으로서 그 이상의 적당한 표현은 없을듯.


그리고 축구를 즐기지 않는 두 친구의 잠시동안 하이델베르크 여행.

워낙 유명한 곳이니 부연설명은 생략한다. 오히려 이런 관광지는 방송에서도 큰 관심이 없는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고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잘 알려진대로 독일의 대학 등록금은 무료. 어디 대학뿐이던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공짜로 공부할 수 있다. 그런다고 대충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교육시설과 교수의 수준은 세계 최상위권. 세금을 내지 않는 유학생들도 등록금을 받지 않으니 단순히 세금을 많이 받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나라의 국가적 철학의 클래스 차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었던 학생식당 멘자(Mensa)는 일부 여행자료에서 소개하기도 하지만 나는 블로그나 책에서 생략했다. 하이델베르크는 아니지만 다른 도시의 멘자를 몇 번 이용해보면서 느낀 바로는, 분명 가격도 식당보다 저렴하고 음식 수준도 괜찮지만 어디까지나 학생들의 공간인만큼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시스템이 독일어를 모르는 일반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제 뮌헨(München)으로.

일단 뮌헨은 이 방송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고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비어홀에서 소란스럽게 맥주 한 잔 걸치는 모습 정도만 보여줬는데, 어차피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이야기가 뒤에 있는 것 같으니 맥주에 대한 부분은 부연을 생략한다.

다만 괜히 딴지를 걸자면, 학센(Haxen)은 복수형이고 학세(Haxe)가 기본 이름이라는 것, 그리고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는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고 독일어식으로 표기하려면 자우어크라우트라고 하는 게 나았겠다는 점 정도.


이제 이 방송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될 특별한 공간. 다하우로 간다.

다하우 강제수용소는 광기의 현장이다. 직접 보았을 때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찝찝하고 먹먹한 느낌을 받았는데, 방송으로 보아도 그 기분은 똑같다. 예능이라고 해서 적당히 가볍게 포장하는 일은 없었다. 하긴, 이런 공간에서 "적당히"라는 건 존재할 수 없으니.

이런 폭압적인 역사를 솔직히 공개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 독일인들이 젊은 세대까지도 역사를 직시하고 있으며 그렇게 교육을 시킨다는 이야기까지 빼놓지 않는다. 나는 독일이 과거사를 반성한다고 했을 때 가장 본받을 점은 잘못을 공개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그것을 후손들에게 똑바로 교육시켜 반드시 알도록 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가장 참혹한 장소이자 독일의 가장 부끄러운 치부라 할 수 있을 소각장까지도 방송에 소개했다. 참고로, 이 방송이 나갈 시간쯤 블로그 방문자가 크게 늘어 깜짝 놀랐다. 방송을 보다가 충격받아서 자세한 내용을 찾아보려 스마트폰을 집어든 사람이 굉장히 많았던 모양이다. 그 정도로 충격적인 현장이 맞다.

위 캡쳐 화면에서 좌측의 안내판에 모자이크가 보이시는가. 원래 저 곳에 자료사진이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시체를 쌓아둔 사진이 있던 안내판일 것이다. 차마 15세 관람가 방송에 내보낼 수도 없는 끔찍한 사진이다. 저 사진을 볼 때 내 표정이 위 멤버들과 똑같았다. 뭐랄까, 보고만 있어도 사람의 정신을 파괴하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방송에 내보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던 당시의 사료들까지 강제수용소에서 낱낱이 볼 수 있다. 저런거 하나 살짝 가린다고 누가 뭐라고 할까. 그런데도 독일은 모든 것을 다 공개하고 있다는 뜻인 것이다.

히틀러는 독일의 우수한 역사를 부각하며 대중을 선동했다. 우리는 이렇게 위대한 민족이다, 위대하니 세상을 정복할 자격이 된다, 열등한 이민족은 짐승처럼 학대해도 된다, 그 지독한 민족주의가 독일을 뒤덮고 사람들은 사탕발림 같은 말에 현혹되어 살인마를 지지했다. 지금 독일은 정반대의 길을 간다. 독일사람 다니엘은 다하우를 보고 난 뒤(뮌헨에 처음 왔다고 했으니 아마 다하우도 처음 왔을 것이다) 부끄럽다고 했다. 자기가 저지른 잘못도 아니지만 부끄럽고 반성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금의 독일은 이런 식으로 부끄러운 역사를 강조한다. 이런 걸 자학사관이라고 한다. 요즘 "자학사관이 문제"라면서 망언을 내뱉는 어떤 인간들에게 고한다. 자학사관의 끝판왕 독일을 보시라고.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지 않고 날 것 그대로 가르치는 것은 민족성을 자해하기 위함이 아니다. 실수를 인정해야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그래야 역사에 발전이 있고 인간의 삶도 진보하기 때문인 것이다. 실수를 감추거나 합리화하면 나중에 같은 실수를 또 저지르게 된다. 굳이 논쟁거리도 없는 간단명료한 진리다. 그런데 이런 진리가 통하지 않는 어떤 나라를 보면 참 답답할 따름이다.


나는 독일 가이드북을 쓸 때 "독일 Best 15", 그러니까 독일에서 꼭 가봐야 할 15곳의 선정하면서 다하우를 포함시켰다. 내가 다하우에서 느꼈던 그 불쾌하지만 강한 여운을 모두가 공유하기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예능 프로에서 다하우를 간다고 했을 때 용감한 선택에 박수를 보냈다. 그래도 한 편으로는 이것이 "남의 일"이니 방관자처럼 그려지면 어떻게 하나, 또는 감성적인 면을 부각하여 그냥 눈물을 짜는 방송이면 어떻게 하나, 그런 일말의 걱정은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단언하건대, 지금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는 "나쁜" 인간들이 스스로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선동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주었을 것이다.


무거운 주제를 절대 가볍게 포장하지 않은채 그대로 전달하고는 다음주에 옥토버페스트를 보여줄 모양이다. 독일의 가장 날 것 그대로의 역사를 보고, 이제 가장 날 것 그대로의 난장판(!)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