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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12. 레기오날반과 철도 민영화

앞서 독일의 초고속열차인 ICE와 레기오날반을 소개했습니다. 그 외에 고속열차인 IC, EC도 있지만 이미 블로그에 다 정리가 되어 있으니 자세한 내용을 적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이것을 감안하더라도 독일철도청에서 스케줄을 조회하다보면 다른 코드가 마구 튀어나와요. ME, AG, VIA, WB, EB, ENO, M 등 희한한 열차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이건 또 무엇들인지 헷갈리는 게 당연하죠.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모두 레기오날반입니다. 모두 레기오날반과 동급이므로 요금체계를 비롯한 모든 규정이 레기오날반과 같습니다. 그러니 고속열차군인 ICE, IC, EC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레기오날반이라고 이해하면 정리 끝. (물론 야간열차 등 특수열차는 논외로 합니다.)

위 사진은 MRB 열차입니다. Mittelrheinbahn의 약자인데요. 딱 봐도 레기오날반의 붉은색도 아니고 전혀 새로운 열차처럼 보이죠. 그러나 레기오날반입니다. 그러면 왜 이름이 다른가. 독일철도청이 아닌 민간업체의 열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본 여행을 많이 하시니까 일본 철도에 대해 아는 분들은 많이 있을 줄 압니다. 흔히 국철(JR)과 사철로 구분하죠. 사철이 민간업체의 열차를 말하는데, 위 열차가 말하자면 독일의 사철인 셈입니다. ME, AG, VIA, WB, EB, ENO, M 등 고속열차도 아니고 레기오날반도 아닌 나머지 코드 전체가 다 이러한 사철이며, 곧 레기오날반입니다. (여전히 야간열차 등 특수열차는 논외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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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독일 철도의 민영화 모델을 설명합니다.


독일철도청(Deutsche Bahn AG; 정확한 표현으로는 독일철도 주식회사, 그러나 국가가 지분 100%를 소유한 공기업이므로 관용적으로 철도청이라 부릅니다)은 ICE 등 "돈 되는 노선"은 직접 관리하지만 레기오날반 등 "돈 많이 안 되고 관리하기 까다로운 노선"은 적극적으로 민간 운수업체에 위탁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영의 효율화죠. 돈이 많이 안 되는 노선을 민간에 넘겨 라이센스를 받고, 그만큼 고용을 늘리지 않아도 되니 고정지출을 줄여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민간에 모든 권한을 넘기는 것도 아닙니다. 요금과 운행 스케줄은 전적으로 독일철도청이 주관합니다. 민간기업 입장에서는 그래도 좋은 장사입니다. 레기오날반은 "시민의 발"이라고 했습니다. 통근열차 개념도 된다고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용자가 확보되는 알짜 사업입니다.


독일철도청은 관리하기 어려운 부분을 민간업체에 넘겨 돈을 벌고 부채를 줄이고, 민간업체는 관리하는 손품이 많이 들어가는 대신 고정적인 수입을 확보하고, 서로 윈윈이 되는 거죠. 2000년대 중반부터 레기오날반 노선이 속속 민간업체로 넘어가고 있으며, 그래서 이제는 AG, ME, WB 같은 사철이 꽤 많아졌습니다.


물론 당초 독일철도청의 계획은 ICE 등 장거리 노선이나 화물 운송까지도 민영화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유럽 금융위기로 타이밍을 놓쳤고, 워낙 국민의 반대가 극심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힘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도 철도 민영화 이야기가 주기적으로 나오는 나라입니다. 실제 몇 해 전 코레일 민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독일의 철도 민영화 성공 사례"를 근거로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나쁜 왜곡입니다. 한국처럼 돈 되는 장거리 노선을 민영화하고 돈 안 되지만 공공 차원에서 유지해야 할 지방 노선은 공기업이 운행하겠다는 계획은 독일과는 한참 다릅니다.


장거리 노선을 민영화하여 국철과 사철이 경쟁하게 하겠다는 건 일본이나 영국식 민영화 모델입니다. 독일은 아니에요. 적어도 한국에서 철도 민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독일처럼 하자"고 이야기하면 그건 높은 확률로 사기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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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시 기차여행 이야기로 돌아오죠. 우리 같은 여행자들은 독일의 레기오날반 사철을 이용하면서 주의할 것은 딱 하나뿐입니다.

위 사진처럼 독일철도청 티켓판매기 외에 사철 업체의 판매기가 별도로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디서 표를 사야 돼?" 당황할 수 있는데요. 독일철도청 티켓판매기 이용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현지인이 아니니까 그 정도만 알아두면 여행에 불편은 없습니다.

사철도 1등석과 2등석을 구분하는 건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출입문 안과 밖에 숫자 1과 2로 구분합니다. 내부에 충전 전원이 있는지, 와이파이를 제공하는지, 그런 건 열차마다 달라요. 화장실은 있습니다. 그리고 간혹 독일철도청과 다른 이용 규정을 운용하는 경우도 있는데(가령, 열차 내 음주 금지) 그런 경우는 열차 안에 다 안내가 되어 있으니 어려운 부분은 없을 겁니다.

ICE, IC, EC, IRE, RE, RB, S 빼고 전부 다 민간업체 사철이니까 레기오날반과 같다는 말을 오해하지 마시라고 노파심에 하나만 덧붙입니다. 이건 독일 열차의 이야기입니다. RJ, THA, TGV 등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의 열차는 따로 구분해야겠죠. 위 사진의 RJ 열차는 오스트리아의 초고속열차입니다. 레기오날반이 아닙니다.


정리하자면, 독일 열차에는 많은 민간업체의 열차들이 있지만 모두 레기오날반과 같다, 이 한 문장만 기억하시면 이 포스팅은 완료입니다.


아무래도 저는 10년 넘게 독일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독일에 살아본 사람과는 또 다른 시각에서 독일의 사회와 문화 및 제도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이번 포스팅처럼 여행 이야기 속에서도 간혹 정치/사회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