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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17. 표준 독일어 이야기

독일은 독일어를 사용합니다. 당연한 이야기. 그런데 독일어에도 방언은 존재합니다. 이 또한 당연한 이야기. 이번 포스팅은 독일어의 표준어에 대한 잡담입니다.


언어와 문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국인 앞에 명함을 내밀만한 민족은 없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문자 창제의 원리를 기록으로 남긴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이니까요. 나머지 문자와 언어는 오래 전부터 존재하면서 사람의 말을 통해 계승되었습니다.


당연히 사람마다 말이 다르겠지요. 같은 언어라 해도 수많은 방언이 존재함은 물론, 아예 다른 언어라 해도 될 정도로 상반된 체계로 계승되기도 하였습니다.


중세 시대 독일어는 저지독일어와 고지독일어로 나뉘고, 각각의 수많은 방언이 존재했습니다. 체계화된 문법도 없었죠. 소위 높으신 양반들은 라틴어를 사용했고, 독일어는 "못 배운" 평민들의 언어였습니다. 더욱 체계화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중구난방 제각각인 독일어가 처음으로 하나로 정리된 것이 1500년대입니다. 한 사람의 위인이 그 일을 해냈죠.

바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입니다. 종교개혁의 불을 당겨 서유럽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르네상스를 촉발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언어학자도 아니고 목사인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의 표준을 제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니, 설령 그가 표준을 제시해도 독일 전국의 국민이 그걸 따를 이유도 없잖아요.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의 일환으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 출간합니다. 이 때 그가 사용한 독일어는 고지독일어였구요. 성경은 뜻이 조금만 변질되어도 큰일이니 그 어려운 성경을 정확하게 번역하려고 단어 사용 하나까지 고민하고 체계화된 문법을 사용합니다.


종교개혁이 독일 전국으로 퍼지고, 루터의 성경도 전국으로 보급되었죠. 사람들은 그 성경을 보면서 독일어를 익히게 되었습니다. 내가 평소 쓰던 단어나 문법과 다르면 성경을 보면서 내 언어습관을 고쳤죠.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같은 문법을 사용하게 되었고, 독일어가 하나의 표준 아래 정리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아이제나흐의 바르트 성(Wartburg)에 있는 루터의 방입니다. 루터는 여기 틀어박혀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아이제나흐는 튀링엔에 있는 도시, 루터의 고향인 아이슬레벤이나 루터의 주 활동지인 비텐베르크는 작센안할트에 있는 도시, 당시로 따지면 작센 선제후국의 영토였습니다.


오늘날 작센이나 튀링엔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독일어가 바로 고지독일어였어요. 루터는 자기가 아는 독일어를 가지고 성경을 번역한 거죠.


저지독일어를 사용하던 지역에서는 고지독일어로 된 성경이 꽤 낯설었겠죠. 그래도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왜? 주로 저지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이 오늘날의 함부르크, 브레멘, 하노버 등이 있는 네덜란드와 가까운 지역인데요.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게 바로 이 지역 도시들입니다. 그러다보니 고지독일어가 자연스럽게 이들의 생활에 자리를 잡았고, 고지독일어가 독일 전국에서 표준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마다 언어생활이 다르니 방언의 형태로 차이는 있었지만, 적어도 서로 말은 통할 정도는 된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독일어의 표준어는 "하노버 지역의 방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원래 저지독일어를 사용했던 하노버 지역의 방언이 표준어가 된 역사적 배경이 이러합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루터가 사용하던 고지독일어의 방언이 표준어의 뿌리가 되고, 루터의 개신교 사상을 받아들인 저지독일어 사용지역에서 표준어가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면 독일어의 표준어를 튀링엔이나 작센의 방언이라 해도 될 텐데 왜 하노버의 방언이라고 할까요?


사실 제가 전문적인 학술자료까지는 보지 않아서 이 부분에 대해 "학술적으로 올바른" 답을 할 위치는 아닙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추정입니다.


튀링엔이나 작센은 주로 1차산업이 발달한 지역이었기에 교육과 생활수준이 높은 편은 아니었어요. 반면 하노버 지역, 즉 오늘날의 니더작센과 함부르크, 브레멘 지역은 상업과 무역이 발달해 생활수준도 높았을뿐 아니라 다른 지역과의 교류도 활발했습니다.


루터가 번역한 성경을 토대로 독일어의 문법을 학술적으로 정리하고 완성하고 이것을 토대로 다른 지역과 적극 교류한 것은 하노버 지역이었고, 그래서 하노버 지역의 방언이 독일어의 표준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뮌헨 등 독일 남부 지역은 오늘날에도 방언이 강합니다. 자부심이 강해서라는 말도 하지만, 남부 도시는 종교개혁을 거부한 가톨릭 국가가 많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라고 봅니다. 가령, 뮌헨만 하더라도 종교개혁의 반대점에서 가장 선봉에 섰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현지 거주자의 말을 들어보면, 북부와 남부의 방언 차이가 무시할 수준은 아니지만 어쨌든 서로 말은 통하는 정도의 차이래요. 대신 말투를 들어보면 저 사람이 북부 사람인지 남부 사람인지 쉽게 구분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독일어를 사용하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역시 독일의 관점에서는 독일어 방언을 사용하는 셈이 됩니다. 오스트리아의 독일어는 독일 남부의 방언과 유사점이 있고, 스위스의 독일어는 더 다르다고 하네요.


물론 우리가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독일어는 표준어입니다. 하노버 지역의 방언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