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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48. 쾰른 대성당

독일을 대표하는 명소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쾰른 대성당(Kölner Dom)은 하루에 수만명이 방문하는 인기 관광지입니다. 특정종교와 관련된 장소이기는 하지만, 한국을 여행하면서 불교신자가 아니라고 천년고찰을 무시하는 게 웃기는 것처럼, 종교와 상관없이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마주할 당위는 충분하죠.

35mm 환산 24mm의 광각 카메라를 가지고 갔지만 저 멀리서 찍어야 건물 전체가 한 장에 담깁니다. 굉장히 크고, 높고, 압도적인 스케일을 뽐내며, 매우 엄숙합니다. 전형적인 고딕 양식이며, 무려 600년의 공사기간이 소요되었습니다(물론 엄밀히 말하면 상당기간 공사가 중단되었기 때문이기는 합니다). 완공은 1880년. 공사를 시작할 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여러 기계가 공사에 동원되어 비교적 수월하게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기계도 없던 시절에 이런 엄청난 프로젝트를 꿈꾸었다는 것이니 인간의 욕심이 대단합니다.

게다가 이 큰 건물의 외벽은 빠짐없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크고 높은 게 장점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사람의 정성이 이 큰 건물에 빼곡하다는 점에서 더 위대하게 느껴지더군요. 외벽이 검게 그을린 것은 전쟁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온 독일에 폭탄을 퍼부을 때 쾰른 대성당만큼은 폭격하지 않고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좋게 이야기하자면, 그들도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인데 이 위대한 교회를 차마 부술 수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고, 나쁘게 이야기하자면, 온 독일이 다 폐허가 되다보니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위치를 식별할 표식이 하나 필요해 거대한 대성당은 놔두었다는(이것마저 부수면 하늘에서 바라볼 때 여기가 어디인지 알 방법이 없으니) 말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다 하더라도 쾰른에 쏟아진 소이탄(폭발 후 거대한 화염과 수천도의 고열로 주변을 파괴하는 폭탄) 때문에 대성당은 무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때 그을린 외벽이 지금도 시커멓게 남아있는 것이고, 폭격으로 지반에 문제가 생겨 지금까지도 첨탑 보수공사 중에 있습니다. 시커먼 외벽에 깨끗한 조각이나 벽돌이 보이거든, 그건 망가진 것을 최근에 들어 복원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내부도 고딕 양식의 압도적인 스케일이 펼쳐집니다. 이 위대한 문화유산에 입장할 때 요금은 무료. 대신 종교시설인만큼 모자를 벗고 과도한 소음을 유발해서는 안 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음주도 곤란하구요. 하지만 복장의 제한은 없었습니다. 어차피 벗고 들어가실 분은 없을 테니, 여름에 반바지나 슬리퍼 차림이어도 입장에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청바지나 캐주얼 정도는 입어주는 게 에티켓이기는 합니다.

내부는 전체 구역이 빠짐없이 개방되어 있으니 구석구석 둘러보세요. 건축과 예술에 조예가 깊은 분들이라면 기둥 하나하나, 조각 하나하나도 신기할 겁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라 하더라도 아래부터 위까지 빼곡히 채운 갖가지 조형물이나 제단, 장식품 등을 둘러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특히 창문마다 달린 스테인드글라스의 예술미가 압권입니다. 창문에 이렇게 섬세하게 색을 입혀 거대하게 제작할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다행히 스테인드글라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리 해체하여 안전한 곳에 보관해두어 화를 면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내부의 하이라이트는 이것이죠. 아기예수를 경배하러 찾아온 동방박사 3인의 유골함입니다. 이것이 쾰른 대성당의 출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공수하여 쾰른에 보관하기로 했는데, 여기에 찾아오는 순례자가 너무 많아지자 큰 성당을 짓기로 한 것이 지금의 쾰른 대성당입니다. 이 엄청난 규모의 유산은, 바로 이 유골함을 위한 안식처인 셈입니다.


일일이 정리하자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내부의 걸작은 여기까지만 적겠습니다. 이 외에도 유료로 개방된 보물관에 들어가면 수백년 동안 쾰른 대성당이 수집하거나 생산한 값진 종교예술품이 가득하구요. 체력에 자신 있다면 뱅글뱅글 돌아 올라가는 전망대에서 쾰른의 전망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전망대는 다리가 아파서 힘든 것보다도, 돌 틈으로 바깥이 너무 잘 보여서 이거 안전한 거 맞는지 다리가 후들거려 힘들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안전합니다.

소소한 볼거리도 있습니다. 밤이 되면 출입문 앞에서 레이저로 바닥에 글자를 만듭니다. 여기에 한국어도 있네요. "성문"이라고 하니까 여기 무슨 고성이 있었나 생각할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성문은 "성스러운 문[聖門]"이라는 뜻입니다. 저도 처음에 "왜 성문일까" 의아했는데, 그 옆에 독일어로 Heilige Pforte라고 적힌 걸 보고 그 뜻을 알았습니다.

대성당과 관련된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여기는 폭격하지 않았다고 했죠. 그래서 사람들은 대성당 앞에 방공호를 파고 그 안에 들어가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방공호를 파던 중 고대로마의 유물들이 마구 출토됐어요. 쾰른이 원래 로마제국의 도시였었고, 도시 이름도 "식민지"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였거든요. 오늘날 쾰른의 영어식 이름이 콜론(Cologne; 프랑스어 표기와 철자가 같음)이고, 영어로 식민지를 뜻하는 단어가 콜로니(colony)라는 것을 보면 그 어원이 같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당장 살기 위해 땅을 팠는데 유물이 쏟아지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살고 봐야 되니 다 내다버리고 목숨을 구해야겠죠. 그런데 쾰른 시민은 이걸 다 안전하게 보관해두었대요.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출토하여 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쾰른 대성당 바로 옆에 있는 로마 게르만 박물관(Römisch-Germanisches Museum)입니다. 박물관이 대성당과 세트로 붙어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늘을 찌르듯 높으니 당연히 높은 곳을 바라보며 걷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러다가 발을 헛디뎌 카메라 하나 작살낼뻔 했습니다. 올림푸스가 확실히 튼튼해요. 쾰른 대성당에서는 발 밑을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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