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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55. 영국 왕은 독일 혈통이다?

영국은 아직도 국왕이 존재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엘리자베스 2세를 포함한 영국 왕실은 마치 아이돌처럼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죠. 왕위 계승 서열이 어떻게 되고, 왕자가 왕세손을 낳았고, 그런 보도가 자연스럽게 전해집니다.


그 대단한 영국 왕실. 엘리자베스 2세를 포함하여 영국 왕이 사실은 독일 혈통이라는 사실, 알고 계세요?


앞서 하이델베르크 로맨스에서 소개했던 에피소드를 다시 이야기합니다. 팔츠 공국의 대공 프리드리히 5세가 영국 왕실 출신의 엘리자베트 대공비를 맞아들였다고 했죠. 영국에서 국왕이 후사가 없이 죽고 형제도 후사가 없이 죽고, 이복동생은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왕위계승권이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따지고 따지니 가장 높은 왕위계승권을 가진 사람이 엘리자베트 대공비의 딸 조피였어요. 하지만 영국에서 마지막 국왕(앤 여왕)이 사망한 1714년에 조피도 사망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아들인 게오르크가 영국 왕에 오릅니다.


게오르크(Gerog)의 영어식 이름이 조지(George)에요. 조지 1세가 되었습니다. 독일 하노버 출신이었기에 조지 1세부터 하노버 왕가가 시작됩니다. 이후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루는 빅토리아 여왕이 바로 하노버 왕가 직계이구요. 빅토리아 여왕은 독일인 남편을 맞아들입니다. 그래서 영국 왕가는 남편의 가문인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로 바뀌었고, 훗날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에서 반독일 감정이 극심해지자 여론을 의식해 윈저 왕조로 개명합니다. 이후 오늘날 엘리자베스 2세까지 이어지는 윈저 왕조는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사실상 독일 혈통인 하노버 왕가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콜라보레이션이니 영국 왕실은 독일 혈통이 맞습니다.


하노버 왕가를 연 조지 1세는 영국 국왕이 되었지만 영어를 하지 못했습니다. 독일에서 살던 사람이니 당연하죠. 게다가 독일은 왕이 궁전에서 모든 걸 다스리는 군주국이었는데 영국에서는 왕이 의회에 출석해 회의를 주재하며 국사를 처리했습니다. 조지 1세는 이런 방식이 못마땅해 의회 출석을 거부하고 총리를 뽑아 그에게 전권을 위임하였습니다.


영국 왕실의 "군림은 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전통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총리가 강한 권한을 갖게 되면서 총리와 의회의 권한이 강화되었고, 오늘날 입헌군주제가 완성되었습니다. 조지 1세가 그런 것까지 기대하며 국사에서 손을 뗀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조지 1세는 사망한 뒤 고국인 독일 하노버에 안장됩니다. 하노버 왕국의 궁전인 라이네 궁전(Leineschloss)이 그의 장지입니다. 조지 1세의 손자인 조지 3세부터는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독일 혈통의 영국인이구요. 이때부터 하노버 왕가는 그들의 고향인 하노버를 버려두고 영국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영국 국왕이 하노버 국왕을 겸하는 식이었죠.


그러다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면서 이 전통이 깨집니다. 하노버는 여왕을 인정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가장 서열이 높은 왕실의 남성이 하노버 국왕으로 부임하니 그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입니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는 "괴팅엔 7교수 사건"을 촉발한 폭군이었는데도 오늘날 하노버 중앙역 앞에 그의 기마상이 떡하니 서 있는 것을 보면 나름 영국으로부터 소외 받은 하노버 왕국의 기틀을 다지는 역할을 했나봐요. 아무튼 이때부터 영국과 하노버 왕국은 별개의 길을 가게 됩니다.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독일의 중소도시 하노버입니다만, 이렇듯 전세계 역사에 살짝 발을 걸치고 있습니다. 하노버를 여행할 때 하노버 왕국의 흔적들을 구경하거든 이런 역사적 스토리를 떠올려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하이델베르크에 시집 온 엘리자베트 대공비는 독일 역사를 따질 때에도 족보에 이름을 올립니다. 그녀의 외손녀인 조피 샤를로테가 프로이센 초대 국왕의 왕비가 되었고, 여기서 독일제국의 황제까지 혈통이 이어집니다. 혹시라도 조피 샤를로테라는 이름이 낯익다면, 네 맞습니다.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궁전(Schloss Charlottenburg)의 바로 그 왕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