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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04.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찾아온 곳

음악의 아버지 바흐(Johann S. Bach), 그리고 음악의 어머니 핸델(Georg F. Händel). 동시대에 활동하며 바로크 음악을 완성한 음악의 거장들이며, 이들이 확립한 음악의 법칙이 지금까지 유효하기 때문에 이들을 가리켜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여담이지만, 음악의 어머니라는 별명 때문에 핸델을 여자로 오인하는 분도 많습니다. 왜 그런 별명을 붙였는지는 알겠지만 세심하지 못한 다소 촌스러운 별명인데, 알고보니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별명은 그들이 활동한 유럽이 아니라 일본에서 현대에 들어 붙였다는 말이 많더군요.)


핸델은 활동하던 시기에 이미 유럽에 명성을 날린 톱클래스 음악가였고, 바흐는 그보다는 명성이 덜했지만 아무튼 나름의 인지도를 가진 탄탄한 음악가였습니다. 그런 그들이 비슷한 시기에 음악을 한 수 배우겠다며 찾아간 거장이 있습니다.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진가를 알아보고 한 수 배우려 했다면 이 사람은 음악의 할아버지쯤 되는 걸까요?

바흐와 핸델이 찾아간 곳은 뤼베크(Lübeck)의 성모 마리아 교회(St. Marienkirche)입니다. 여기서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던 음악의 대가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독일여행을 공부하기 전까지는 북스테후데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바흐와 핸델의 바로크 음악, 모차르트의 고전주의 음악, 베토벤의 낭만주의 음악까지 연달아 등장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 그보다 앞 세대인 북스테후데는 완전히 기억에서 잊혀진 것인지, 현대에 들어 전혀 조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대에는 단연 최고의 음악가였죠. 뤼베크는 한자동맹의 중심지로 매우 부유한 도시였고, 그런 부자 동네의 가장 큰 교회 오르간 주자는 부유한 상인의 재정 후원을 든든히 받는 매우 알짜배기 자리였습니다. 당연히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죠.


재미있는 것은, 성모 마리아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있었답니다. 선임자가 은퇴할 때 그의 딸과 결혼하는 사람이 물려받았다고 해요. 북스테후데는 선임자의 딸과 결혼하고 이 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핸델이 그를 찾아왔을 때 핸델의 실력을 알아보고는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고 싶었대요. 마침 북스테후데에게는 딸이 7명이나 있었다는데, 핸델은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었음인지 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이 알짜배기 자리를 거부하고는 돌아갔다고 합니다.

대단한 거장이 직접 연주했을 오르간은, 안타깝게도 지금 남아있지 않습니다. 뤼베크는 독일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탄세례를 받고 온 도시가 파괴되었으며, 성모 마리아 교회 역시 큰 피해를 입으며 오르간도 파괴되었습니다.


오늘날 거대한 건물은 다시 복구되었지만 내부는 썰렁한 편입니다. 바흐와 헨델이 찾아왔을 정도로 명성을 떨쳤던, 부유한 상인들의 재정 후원으로 크고 화려하게 번영했을, 당시의 영광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입니다.


북스테후데는 단지 연주만 잘한 게 아니라 유능한 작곡가이기도 했습니다. 주로 칸타타 등 종교음악을 작곡했고 바로크 음악의 공식에 충실합니다. 여러모로 바흐와 비슷하죠. 바흐가 집대성하여 하나의 법칙을 확립하기 전 바로크 음악의 물줄기를 튼 인물이었노라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