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유.Travel to Germany :: #118. 베를린, 4개국의 추억

어제 방송된 <꽃보다 할배 리턴즈>에 이런 장면이 지나갑니다. 나름 인류의 역사의 중요한 시기였고 베를린이 그 중요한 장소였기에 이 내용에 대한 부연설명을 해볼까 합니다.

독일이 동서로 분단되었을 때 베를린은 "4개국 관리지역"이라고 하는데요. 그 4개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입니다. 서베를린을 미영프 3개국이 분할 통치하고, 동베를린에 소련군이 진주했었죠.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이 한반도에서 벌어지던 시기입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전쟁이 극에 달해 있던 시절, 그 양편이 베를린에서 직접적으로 대치했습니다.

강대국이 자기들 땅이라면 전쟁을 피할 텐데 베를린은 자기들 땅도 아니죠. 남의 땅이니 여차하면 전쟁을 벌여도 피해가 덜한 상황, 그래서 전쟁의 바로 직전까지의 긴장상태가 늘 계속되었던 곳이 베를린입니다. 그러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설치됩니다.

4개국은 독일이 통일되기까지 계속 베를린에서 대치했습니다. 독일이 패망한 1945년부터 독일이 통일된 1990년까지,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긴 기간 동안 이들이 베를린에 남긴 흔적이 좀 많겠습니까. 통일 후 베를린이 완전히 새롭게 변모하였고 지금도 변화하는 중이지만 여전히 이 4개국이 베를린에 남겨둔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장소가 남아있기도 하고, 문화가 남아있기도 합니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4개국과 관련된 대표적인 장소(또는 문화)를 하나씩 골랐습니다.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에 가면 미군 검문소와 미군 병사(진짜 군인은 아니지만)를 볼 수 있습니다. 실제 미군의 검문소가 있던 곳을 당시 모습대로 복원하여 관광상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미군이 설치한 경고문구도 보입니다.

베를린의 명물인 커리부어스트(Currywurst)는 영국이 준 선물입니다. 전후 서베를린에 물자가 풍족할리 없죠. 주둔군의 구호식량이 많이 풀렸는데 그 중 영국군이 준 커리가 있었습니다.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배했으니 진작부터 커리를 접해왔고, 그게 서베를린으로 전해져 소시지와 결합해 커리부어스트라는 요리가 탄생된 것입니다.

매년 여름 베를린에서 열리는 축제의 이름은 독일-프랑스 민속축제(Deutsch-Französisches Volksfest)입니다. 베를린에 주둔한 프랑스군이 1963년 서베를린 시민과의 우호증진을 위해 축제를 열었던 것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이름을 베를린 여름민속축제(Berliner Volksfestsommer)로 바꾸었지만, 베를린 최대의 민속축제도 이처럼 역사의 한 토막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동구권 국가에 가면 이렇게 생긴 기념비 하나씩은 꼭 볼 수 있죠. 소련이 "우리가 너희를 해방시켜주었다"고 선전하려고 만든 것들인데, 베를린에도 있습니다. 소련은 소비에트 기념비(Sowjetisches Ehrenmal)를 심지어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에 각각 하나씩 만들었습니다. 물론 서베를린에 만든 것은 체제 선전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마지막 베를린 전투에서 숨진 소련군을 기리는 추모의 목적이라 연합군도 OK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4개국과 관련된 장소는 참 많아요. 프랑스군이 만들어준 공항이 현재 베를린의 가장 큰 공항인 테겔 공항이고,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유명한 연설을 남긴 곳도 있습니다. 미군을 따라서 서베를린에 거주하던 미국인들을 위한 영화관도 박물관으로 개방되어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포로를 교환한 스파이 브릿지도 빼놓을 수 없죠.

그래서 베를린을 여행하다보면 이런 의미심장한 장면들을 반드시 마주하게 됩니다. 여기 뜬금없이 성조기가 왜 흩날리나, 여기 뜬금없이 소련스러운 동상은 왜 서 있나 등등 모르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곳들입니다.

베를린은 알면 알수록, 특히 역사를 알면 알수록 특별한 장소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 나라 역사도 어려운데 남의 나라 역사까지 공부해야 되나 생각하실 분들을 위해 제가 대신 공부해서 중요한 장소들을 발견해 정리한 베를린 가이드북도 있다는 사실을 살짝 부연합니다.

---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