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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48. 드레스덴과 폴란드의 강건왕

독일 드레스덴(Dresden)은 지리적으로 폴란드와 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레스덴과 폴란드에 어떤 교집합이 겉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 명의 인물에 의해 그 교집합이 생겼고, 우리는 여행의 테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인물은 바로 "강건왕" 아우구스트 2세(August II. der Starke)입니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이 양반이 누구인지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텐데요. 독일 드레스덴의 아름다운 시가지를 완성한 주인공이라고 먼저 소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독일 드레스덴에 있는 아우구스트 2세의 기마상입니다. 그는 작센 선제후국의 선제후였는데요. 선제후라는 직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간절히 왕이 되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신성로마제국의 복잡한 구조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데, 신성로마제국은 여러 지방국가의 연합체였으며 제국의 황제가 따로 있었지만 사실상 얼굴마담에 불과한 존재였습니다. 작센 선제후국은 그 지방국가 중 하나였고요. 이런 지방국가를 다스리는 권력자를 일반적으로 대공(大公; 높은 지위의 공작)이라고 불렀고, 그 중에서도 특별히 높은 권력자는 대주교와 함께 선제후 지위를 가졌습니다. 황제[帝]를 선출[選]할 권리를 가진 이들을 뜻하는 것이니 사실 아우구스트 2세는 황제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높은 지위를 가진 권력자였기에, 자신이 "왕"으로 불리기를 간절히 원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에서는 그게 허락되지 않았죠. 그래서 작센 선제후국과 이웃한 폴란드 왕국의 국왕 자리를 노렸고, 결국 폴란드 국왕이 됩니다. 당시 폴란드 왕국은 리투아니아를 다스릴 정도로 동유럽의 만만치 않은 강국이었습니다.


폴란드 왕국은 로마가톨릭 국가였기에 국왕이 되려면 무조건 가톨릭을 믿어야 됩니다. 당시 작센 선제후국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루터교 국가였고, 당연히 아우구스트 2세도 루터교 신자였지만 미련없이 개종하여 국왕의 자격을 갖춥니다. 그 정도로 "왕"이라는 타이틀에 강한 집착을 보였습니다.


자, 이 정도로 왕권에 집착하는 권력자라면 당연히 검소하고 소탈하지는 않았겠죠. 힘을 과시하고 화려하게 치장하기를 즐겨했겠죠. 권력자가 자기 권력을 과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궁전의 건축입니다. 아우구스트 2세는 자신의 수도 드레스덴과 근교에 화려한 궁전을 여러 개 남기게 됩니다.

드레스덴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레지덴츠 궁전(Residenzschloss)과 츠빙어 궁전(Zwinger)이 바로 아우구스트 2세가 남긴 역작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거처와 놀이터까지 이렇게 화려하게 만들어놓고도 성에 차지 않았던 아우구스트 2세는 드레스덴 근교에 별장으로 사용할 궁전을 여럿 더 남기게 됩니다.

필니츠 궁전(Schloss Pillnitz)과 모리츠부르크 궁전(Schloss Moritzburg)입니다. 이 중 모리츠부르크 궁전은 원래 있던 것을 더 크고 화려하게 증축하였고, 필니츠 궁전은 엘베강변에 전망 좋은 터에 별장으로 따로 지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드레스덴 근교의 베름스도르프(Wermsdorf)라는 곳에 후베르투스 성(Hubertusburg)을 지었는데, 이것은 아우구스트 2세의 다음 왕인 아우구스트 3세의 궁전으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폴란드 국왕을 겸임하게 되었으니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Warszawa)에 머무는 날도 많을 수밖에 없겠죠. 바르샤바가 수도가 된 이래 국왕이 쭉 머물렀던 왕궁을 더 크게 확장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바르샤바 구시가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옛 왕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복원되어 원래의 아름다운 위용이 많이 훼손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품위 있고 아름다운 곳이죠. 그러니 아우구스트 2세 시절에는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시하기 좋아하고 사치가 심했던 아우구스트 2세의 취미 중 하나가 도자기 수집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도자기는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유럽에 소개되었고, 매우 값비싼 예술품으로 다루어졌는데요. 수집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들고 싶은 욕구가 강했겠죠. 마침 중국에서 도자기 기술을 훔친 연금술사가 아우구스트 2세에 접근해 왕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공방을 차리고 도자기를 직접 생산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유럽 최초의 도자기인 그 유명한 마이센(Meissen)의 유래입니다. 마이센은 드레스덴 근교 도시 이름이고, 거기에 공방을 만들어 도자기를 생산하면서 도자기 이름도 마이센이 되었습니다.


흔히 생각하기로, 사치가 심하고 권력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왕은 "폭군"의 이미지가 강하죠. 나라를 말아먹을 것처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성격의 권력자였기에 화려한 궁전을 여럿 남기고, 역사적인 예술품도 남기게 되었다는 게 아이러니죠. 이 글에서는 자세히 부연하지 않았지만, 이런 권력자는 거장의 미술품도 돈 주고 수집하기 마련이기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우수한 미술관의 기틀을 닦기도 합니다.


"강건왕" 아우구스트 2세는 "성군"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욕심은 그의 사후 폴란드의 분열을 가져와 오히려 나라를 망하게 만든 원인이 됩니다. 작센 선제후국 역시 신성로마제국 내에서 급속도로 영향력이 소멸되고 외교적으로 줄타기에 실패해 과거의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여행자들 입장에서는 평생 기억에 남을 끝내주는 볼거리를, 그것도 독일과 폴란드에 걸쳐 여럿 남겨준 고마운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아, 그래서 왜 그의 별명은 "강건왕"이었을까요? 엄청나게 체격이 크고 맨 손으로 편자(말발굽 밑에 붙이는 강철 조각)를 깨버릴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고 합니다. 성격도 호방해 마치 곰 같은 모습으로 인해 "강건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넘치는 힘을 어디에 썼을지, 여러분이 짐작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살면서 그가 만든 사생아가 무려 354명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그가 원나잇으로 즐겼던 여인이 나중에 자신의 딸로 밝혀지기도 했답니다. 이런 난봉꾼이기에 "강건왕"이라는 별명이 더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강건왕"은 폴란드 크라쿠프(Kraków)의 바벨 대성당(Katedra Wawelska)에서 대관식을 가졌습니다. 역대 폴란드 국왕이 왕관을 썼던 곳입니다. 그리고 죽고 난 뒤에도 전통에 따라 바벨 대성당에 시신이 안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공들여 만든 화려한 도시 드레스덴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왕의 심장만 드레스덴의 궁정교회(Katholische Hofkirche)에 안장되었습니다. 궁정교회는 레지덴츠 궁전에 딸린 왕실의 교회로, 루터교 국가인 드레스덴에서 왕의 개종에 의해 건축된 가톨릭교회입니다.


실제로는 황제보다 높은 권력을 가졌으나 왕이 되고 싶었던 "강건왕". 그가 자신의 권력을 뽐내며 여느 왕국의 수도가 부럽지 않을만큼 화려하게 단장한 드레스덴, 그리고 마침내 왕이 되겠다는 꿈을 이룬 뒤 왕국의 수도를 살짝 업그레이드한 바르샤바, 왕국의 전통이 담긴 크라쿠프. 이렇게 교집합이 완성됩니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역사적인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당시 폴란드 국왕의 힘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습니다. 여기도 얼굴마담 수준의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는데요. 아우구스트 2세는 "왕"의 지위를 얻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폴란드를 중앙집권적인 나라로 바꾸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외세의 힘을 빌리느라 러시아와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우구스트 2세는 몰락하고 분열된 폴란드를 러시아가 아주 쉽게 집어삼키고, 그 밑천으로 동유럽에 세를 뻗치게 됩니다.


힘이 빠져버린 작센 선제후국은 나폴레옹이 독일을 침공하자 나폴레옹의 편에 섰다가 쪽박을 차고 영토의 절반 가까이 날려먹습니다. 그리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는 나폴레옹을 격퇴하는 데 선봉을 섰던 프로이센의 반대편인 오스트리아의 편에 서서 프로이센과 한 판 붙었다가 또 한 번 쪽박을 차게 됩니다.


프로이센이야말로 대표적인 개신교 국가였고, 오스트리아는 가톨릭 국가였습니다. 어쩌면, 아우구스트 2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에서 이 모든 나비효과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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