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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51. 다크 투어 in 베를린

요즘 다크 투어(Dark Tour)가 주목 받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관광이나 휴양이 아닌, 전쟁이나 재해 등 역사 속 비극의 현장을 찾아가 견학하고 생각하며 교훈을 얻는 체험형 여행 테마를 다크 투어리즘이라 하고, 줄여서 다크 투어라고 부르죠.


전 세계에서 다크 투어의 1번지는 단연 독일 베를린을 꼽습니다. 최악의 전쟁이 벌어졌던 곳, 그걸로 모자라 한 도시가 둘로 나뉘고 적이 되어 원수처럼 증오하고 핵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아야 했던 곳, 서슬 퍼런 독재자와 공산주의 정권의 만행이 벌어졌던 곳, 하지만 그런 비극을 끝내고 통일의 영광을 누리는 곳. 그런데 이런 비극적인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빠짐없이 기록하고 기념하며 기억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베를린에서 체험할 수 있는 다크 투어의 현장, 언뜻 머리에 떠오르는 곳만 정리해도 이만큼입니다.


전쟁의 상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온 도시가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죠. 황제를 기념하며 건축한 거대한 교회 역시 첨탑만 남기고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베를린은 교회를 복원하거나 철거하는 대신, 파괴된 모습을 그대로 남겨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기념관으로 사용합니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Kaiser-Wilhelm-Gedächtniskirche)입니다.


가해자의 사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독일은 엄연히 가해자의 입장입니다. 나치 독재정권은 인권을 탄압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종을 학살하는 수준의 전쟁범죄를 저질렀죠. 독일 입장에서는 매우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과거이겠지만 독일은 모든 가해의 역사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공개하면서 피해자에게 사죄합니다.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추모비(Holocaust-Mahnmal)가 대표적인 장소이고, 단순히 자료만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의 감정까지 공유하는 유대인 박물관(Jüdisches Museum) 역시 매우 인상적인 장소입니다.

뿐만 아니라, 근교 오라니엔부르크(Oranienburg)로 나가면 나치의 강제수용소를 보존하고 공개하고 있습니다.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기념관(KZ Sachsenhausen)에 죄 없는 사람을 강제로 붙잡아 노역을 시키면서 생체실험까지 저지른 나치의 만행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정도가 아닙니다. 언제 어떻게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 시청각 자료를 토대로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어 속이 울렁거릴 정도의 불쾌한 기분을 주지만, 그래서 더욱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다크 투어를 만드는 곳입니다.

이 정도로 잘못을 고백하고 사죄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나쁜 짓에 가담한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합니다. 가령, 나치가 수많은 사람을 강제수용소에 수감할 때 전철을 이용했습니다. 독일철도청에 운행한 것이죠. 독일철도청은 당시 수감자를 태웠던 전철역인 그루네발트역의 17번 플랫폼에 추모관(Mahnmal Gleis 17)을 만들어 자신들의 과오를 사죄합니다.


전쟁의 흔적

또한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제2차 세계대전의 흔적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쟁 당시 베를린은 지하에 또 하나의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단순한 방공호나 벙커가 아니라 통신수단과 연결통로를 가진 문자 그대로 하나의 도시입니다. 비밀에 쌓여있던 지하의 도시는 속속 발굴되어 그 중 안전시설을 갖춘 일부 장소를 베를린 지하세계(Berliner Unterwelten)라는 이름으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실제 전쟁 당시 만든 지하 도시를 직접 구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베를린 장벽

그리고 베를린 다크 투어의 주인공은 뭐니뭐니해도 베를린 장벽이겠죠. 통일 당시 시민들에 의해 장벽은 부수어졌지만 일부 구간은 그대로 남겨두어 역사를 박제합니다. 분단을 경험하지 못한 미래 세대도 분단의 현장을 직접 보고 배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베를린 장벽이 더욱 남 일 같지 않은 장소가 되죠. 꼭 찾아가보아야 합니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Gedenkstätte Berliner Mauer), 테러의 토포그래피(Topographie des Terrors)가 대표적인 곳이고, 단순히 장벽만 구경하는 게 아니라 왜 분단이 되었으며 분단 중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장벽이 무너졌는지 모든 역사의 기록이 함께 합니다.

너무 교육적이고 딱딱한 장소는 부담된다면, 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분단의 현장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군 검문소를 복원해 마치 테마파크처럼 재미있게 분단 시절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산가족의 눈물

한국도 분단 때문에 이산가족이 많이 생겼죠. 베를린은 하루 아침에 한 도시가 둘로 나뉘어 버렸으니 이산가족이 좀 많이 생겼겠습니까. 걸어서 10분 거리에 살던 부모님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직장 때문에 잠깐 옆동네 친척집에 맡겨둔 아들딸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분단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어떻게 찢어놓고 눈물 짓게 만들었는지, 눈물의 궁전(Tränenpalast)에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산정권의 그늘

동독이 북한 정도의 독재국가는 아닙니다만 공산정권은 필연적으로 개개인의 자유를 탄압하기에 무고한 희생자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동독의 정보기관인 슈타지는 간첩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아무나 잡아들이고 고문하고 죽일 수 있었죠. 베를린은 그 만행이 벌어졌던 건물에 슈타지 박물관(Stasi Museum)을 만들어 낱낱이 공개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합니다.


영화 속 이야기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실제 영화로도 제작된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무대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톰 크루즈 주연의 <작전명 발키리>는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을 그린 영화인데요.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인물이 처형당한 장소에 독일 저항 기념관(Gedenkstätte Deutscher Widerstand)이 있습니다. 그리고 톰 행크스 주연의 <스파이 브릿지>는 냉전시대 서베를린에 주둔한 미군과 근교 도시 포츠담(Potsdam)에 주둔한 소련군 사이의 비밀 포로 교환 사건을 소재로 하는데요. 실제로 포로 교환이 이루어졌던 글리니케 다리(Glienicker Brücke)가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머리에 추가로 떠오른 장소들이 더 있습니다만 우선은 이만큼만 소개할게요. 이 정도로 베를린에 다크 투어 여행지가 많습니다. 그야말로 온 도시가 비극적인 역사박물관이나 마찬가지인데요. 그렇다고 해서 어둡고 우울한 장소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선진국 대도시에 걸맞은 수많은 볼거리와 놀거리가 가득하기 때문에 입체적인 여행이 가능합니다.


물론 독일에서 베를린 외에도 전쟁과 분단 등 어두운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이런 다크 투어 여행지는 많습니다만, 그 어떤 도시도 베를린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혹시 이런 질문을 던지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즐겁고 기쁘자고 여행 가는데 그런 우울하고 어두운 경험을 왜 해야 하느냐?"고요.


얼마 전에 종영된 <꽃보다 할배 리턴즈>에서 베를린의 역사적인 장소를 잠깐이라도 보여주었는데요. 이런 소회를 남겼습니다.

다크 투어의 목적은 남의 역사를 공부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비극의 현장 속에서 나의 처지를 비교하며 교훈을 얻고,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함입니다. 마침 베를린의 역사는 한국과 겹쳐지는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그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우리의 현실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굳이 통일을 해야 하는가, 그냥 통일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당연합니다. 통일해서 좋은 게 뭔지 모르겠거든요. 한민족이니까 통일하자, 그런 감상적인 접근은 별로 공감이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일단은 베를린을 보시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통일해서 좋은 게 뭔지 베를린이 보여주니까요.


막연히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내 가슴으로 느낀 것을 바탕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견문을 넓힌다"고 표현합니다. 다크 투어의 목적이 그것입니다. 베를린이야말로 당신의 견문을 넓혀줄, 특히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보아야 할 다크 투어의 1번지입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