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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391. 과거사 사죄, 독일과 일본은 왜 다를까?

요즘 일본 때문에 분노하는 분들 많죠? 같은 전범국인데 독일은 과거사를 성실히 사죄하고 배상하는 반면 일본은 책임을 회피하고 적반하장으로 나온다며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는 기사도 심심치않게 보입니다.


대체 이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요? 독일인이 일본인보다 인종적으로 우월하여 이성적이고 양심적인 건 아니잖아요. 다 똑같은 사람인데, 똑같은 시기의 똑같은 행위에 대하여 정반대로 대처하는 이유가 뭘까요?


단순히 "독일은 대단하다" "일본은 독일을 보고 배워라"와 같은 말을 할 게 아니라, 우리는 그 차이의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올리는 글인데, 이번 글은 여행 이야기가 아니라 시사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늘 언급되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비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장면입니다. 일본 총리가 한국에 와서 소녀상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사진을 보면 바닥이 젖어있죠. 비를 그냥 맞으며 사죄했습니다. 덕분에 폴란드인이 독일을 향해 갖고 있던 증오가 풀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독일(서독) 총리는 이렇게 하는데 일본 총리는 이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간단합니다. 빌리 브란트는 전범(나치 독일)과 무관한 사람입니다. 오히려 나치에 탄압 받고 독일에서 추방당해 해외에서 저항운동을 펼친 사람입니다. 그러니 나치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죄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개인적으로 책임질 도덕적,법적 채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전범의 후예들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아베 신조도 외조부가 A급 전범이라고 하죠. 만약 아베가 과거사를 사죄한다 칩시다. 그러면 "당신이 전범의 후손이고, 범죄행위로 얻은 재산과 지위를 바탕으로 지금 위치에 올랐는데 당신도 책임지라"는 말이 나오겠죠. 총리직에서 사퇴하는 게 마땅합니다. 자기가 개인적으로 책임질 도덕적,법적 채무가 있기 때문에 죽어도 사죄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위치입니다.


결국 전쟁이 끝난 뒤에 전범세력을 철저히 심판하고 청산한 독일, 전범세력이 그대로 살아남아 부정한 권력을 연장한 일본, 그 차이가 오늘날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는 것입니다.



제가 독일 뮌헨 근교의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여행할 때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 악명높은 가스실보다도 더 강렬한 인상을 받은 곳이 있습니다.

당시 수용소에서 범죄를 저지른 나치의 책임자들이 모두 공개되어 있었습니다. 이들도 위에서 시키니까 "까라면 깐" 사람들이죠. 명령을 거부하면 죽임을 당했을 테니 살기 위해 죄를 저질렀노라 변명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런 "정상참작"이 없습니다. 얼굴 까고 이름 까고 어떤 나쁜 짓을 했는지 다 적어서 세상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이 자들의 후손이라면, 저는 창피해서 이 나라에 살지 못하고 도피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전범 행위에 대하여 히틀러와 나치의 지도부만 고발하는 게 아니라 말단까지도 낱낱이 공개하고 있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전범 행위를 합리화하는 그 어떤 소리도 나올 수 없습니다.


운 좋게 도피한 전범행위자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추적합니다. 90세 넘은 노인이 되어서도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말단이었으니 봐주자" "소극적 가담이니 봐주자"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으니 봐주자" 이런 말 자체가 통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과연 전범 세력을 이렇게 처벌하고 부정한 역사로부터 단절되었나요? 아니죠. 오히려 일본의 전범들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을 강조하며 "일본인은 학살 당한 피해자"라는 프레임으로 그들의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이 지금까지 일본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은 철저히 전범을 심판하여 처벌한 반면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결정적인 차이가 뭘까요?


독일에게 피해를 입은 희생자(유대인, 프랑스, 영국, 슬라브인 등)는 조금의 관용도 없이 사죄를 받아내고자 했습니다.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한국은 배상금 몇 푼에 넓은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독일은 사죄를 받아내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진 피해자를 대면하였고,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전범을 심판하고 과거로부터 단절한 뒤 새로 역사를 썼습니다.


일본은 사죄를 받아낼 피해자부터가 의지가 없었으니 굳이 전범을 심판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유대인이니까 독일을 굴복시킨 것 아니야고요. 그러면 반대로 묻습니다. 빌리 브란트가 무릎 꿇고 사죄한 폴란드(슬라브인)도 유대인 수준의 영향력을 가진 강한 민족인가요? 유대인에게만 사죄하면서 슬라브인은 무시해도 되잖아요. 심지어 슬라브인은 민주진영의 적인 공산국가들입니다. 서독에서는 냉전시대의 논리 때문에라도 슬라브인에게 사죄하는 게 더 이상했을 시절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죠. 피해자의 국력의 차이가 아닙니다. 의지와 신념의 차이입니다.


저는 최근 한국을 지배하는 일본 불매운동을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합니다. 74년만에 드디어 한국에서도 피해자가 사죄를 받아내겠다는 강한 의지와 신념을 보였다는 측면에서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매우 늦기는 했죠. 지금 와서 일본이 과거사를 사죄하고 아베가 사퇴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일본과 한국 모두 첫 단추부터 틀렸습니다. 따라서 이 싸움의 결론은 매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라 전망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적어도 피해자인 한국이 가해자에게 침묵할 의사가 없음을 천명했으므로 앞으로도 한국인과 일본인의 관계 속에 과거사가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일본인 중에서도 극우적인 가치관을 가진 적과 평화를 사랑하는 친구가 있듯, 일본기업 중에서도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는 전범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이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이 앞으로 한일관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