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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420. 파울라너, 아우구스티너, 프란치스카너

수입맥주로 많이 판매되어 여러분도 잘 아실 독일맥주 파울라너(Paulaner)입니다.

독일에서 맥주로 가장 유명한, 작가 개인의 주장으로는 세계 전체를 통틀어도 이만한 도시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뮌헨에서 로컬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아우구스티너(Augustiner) 맥주입니다.

그리고 이 또한 수입맥주로 종종 보셨을 프란치스카너(Franziskaner) 맥주입니다.


공교롭게도 모두 뮌헨의 맥주인데, 이 글에서 뮌헨이 중요한 건 아니니 부연하지 않기로 하고요. 파울라너, 아우구스티너, 프란치스카너. 그 이름에서 혹시 뭔가 힌트를 발견한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파울라너는 파울(Paul), 아우구스티너는 아우구스틴(Augustin), 프란치스카너는 프란치스칸(Franziskan)에서 파생된 이름이죠. 이걸 각각 한국에서 통용되는 명사로 치환하면 바오로 수도회,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프란치스코 수도회 되겠습니다.


뭔 말인고 하니, 파울라너, 아우구스티너, 프란치스카너는 수도사가 만든 맥주입니다. 뮌헨의 바오로 수도회 수도사가 만든 맥주가 파울라너의 시작인 것과 같다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지금이야 맥주 회사로 성장하여 수도회와의 연관성은 없습니다만, 이처럼 수도사가 만든 맥주에 뿌리를 둔 독일 맥주가 굉장히 많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맥주 양조장으로 꼽히는 바이엔슈테파너(Weihenstephaner)도 그렇고요.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사랑했다는 아인베커(Einbecker)도 그렇습니다. 그 외에도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워요.


이런 수도사의 맥주는 주로 16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이엔슈테파너는 거의 1000년 된 맥주이고요.


당시 수도사에게 맥주 양조가 매우 중요한 업무였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첫째, 수도사는 금식을 자주합니다. 그래도 "곡기"를 끊으면 안 되는지라 금식 중 맥주를 빵 대신 먹었다고 해요. 그래서 맥주를 일컬어 "마시는 빵"이라는 별명으로 부립니다. 둘째, 수도회도 돈을 벌어야 유지가 되잖아요. 헌금만 받아서는 운영이 어려우니까 수익사업이 필요한데, 나라에서 허가받은 합법적인 돈벌이가 바로 맥주 양조였던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기에 성직자가 술을 마시는 것뿐 아니라 술을 만들어 팔기까지 한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맥주는 술이 아니고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물이다"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수긍이 됩니다.


앞서 마르틴 루터를 언급했는데요. 루터도 맥주를 굉장히 좋아해서 나중에는 집에서 아내가 맥주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루터가 신학교 교수로 받는 월급이 적지는 않았지만 가난한 학생을 하도 많이 거두어 먹이다보니 살림은 늘 궁핍했대요. 게다가 공부만 하다가 성직자가 된 터라 세상물정에 어두워 돈 관념도 없었답니다. 그래서 아내는 맥주를 만들어서 돈도 벌고 남편도 먹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거라고 하네요.


루터가 남긴 명언이 있습니다. "맥주를 마시면 잠을 잔다, 잠을 자면 죄를 짓지 않는다, 죄를 짓지 않으면 천국에 간다."


우리에게 친숙한 수입맥주들, 가령 독일에서는 벡스(Beck's)나 크롬바허(Krombacher), 체코의 필스너 우르켈, 네덜란드의 하이네켄, 아일랜드의 기네스 등 대형 맥주 회사들은 대부분 19세기경에 생겼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맥주를 만들어 팔 목적으로 큰 공장을 짓고 맥주 회사를 설립한 케이스입니다.


그런 맥주가 가격경쟁력과 마케팅의 우위를 가지고 시장을 지배하면서 규모가 작은 맥주는 서서히 도태될 수밖에 없었고, 수도원에 기반을 둔 작은 맥주 양조장은 문을 닫게 됐겠죠. 한때 유럽 곳곳에 수도사의 맥주가 가득했지만 지금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뮌헨만큼은 예외에요. 앞서 소개한 파울라너, 아우구스티너, 프란치스카너 등의 맥주는 여전히 시장의 지배자로 군림합니다. 이런 맥주들은 최소 500년, 길게는 1000년, 일반적으로 7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맥주의 산 역사"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뮌헨 여행 중 이런 유서깊은 맥주를 꼭 마셔보는 건 필수 코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