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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독일뉴스

News |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30년 전 오늘, 1989년 11월 9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반대편으로 건너간 날이다. 장벽은 붕괴되었고, 이제 통일은 기정사실. 이후 서독과 동독은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90년 10월 3일 공식적으로 통일에 이른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매우 우발적인 "사고"였다. 당시 동독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진 민중항쟁으로 인해 동독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여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책을 발표한다. 말이 좋아 여행의 자유 보장이지 사실상 여권이나 비자 발급 기간을 단축하고 심사조건을 약간 완화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것은 동독에서 체코, 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로 갈 때나 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자회견 자리에서 발표자인 귄터 샤보브스키가 초대형 말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전날 휴가에서 복귀해 아직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회견장에 갔는데, 기자의 질문이 쏟아지자 잘 모르고 틀린 답변을 해버린 것이다.


그의 말실수는 크게 두 가지다.


여행의 자유 보장에 서베를린도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언제부터 적용되느냐는 질문에 지금 당장부터라고 답했다. 원래 계획은 국경 경비를 강화한 뒤 다음날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끝났으면 모르겠는데, 기자도 초대형 오보를 날리고 만다.


기자회견장에 있던 이탈리아 기자는 "서베를린도 포함되는 여행의 자유 강화를 지금부터 시작한다"는 (말실수)회견 결론을 엉뚱하게 이해했다. 그리고 본국 뉴스에 이런 보도를 냈다. "지금 베를린 장벽이 열렸다"고.


초대형 특종이니 언론사가 다들 미쳤다. AP 같은 기간통신사도 팩트체크 없이 베를린 장벽 붕괴를 속보로 내보낸다. 기자회견을 올바르게 이해했던(독일어를 사용하는) 서독에서도 해외발 오보가 속보로 쏟아지니 어리버리하다가 같이 오보를 내보내고 만다.


서독의 뉴스는 서베를린에 송출된다. 당연히 동베를린 일부에서도 전파가 잡혀 뉴스를 볼 수 있다. 동베를린 시민은 "지금 베를린 장벽이 열렸다"는 속보를 보았다. 확인하러 나갔다. 수천명이 동시에 장벽으로 몰려드니 동독 국경수비대도 당황했다. 원칙대로라면 사살했겠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라는 걸 직감하고 시민을 막지 않았다. 그렇게 시민들은 장벽으로 몰려가 손에 든 망치 등을 이용해 장벽을 부수었다.


서베를린 시민도 뉴스를 보았다. 그들은 베를린 장벽이 열리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뉴스를 보고 장벽에 나가보았다. 마침 반대편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장벽을 부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서베를린 시민도 함께 연장을 챙겨 장벽을 부수었다. 장벽에 틈이 생기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서베를린 시민은 그렇게 동포의 손을 잡아 도와주었다.


말도 안 되는 스토리다. 누가 이런 영화 시나리오를 썼으면 욕만 먹었을 거다. 그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하루밤 사이에 벌어졌다. 그게 100년 200년 전 일도 아니고 딱 30년 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