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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독일뉴스

News | 독일의 코로나19 사망자가 적은 이유는?

오늘 날짜 기준으로 독일은 유럽에서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으나 사망자는 92명에 불과하다. 프랑스, 영국보다 적어 사망자 기준으로는 유럽에서 다섯 번째. 확진자가 한국의 3배 가까이 되는데 사망자는 한국보다 적은 셈으로 굉장히 이례적인 낮은 치명율을 보이고 있다.


이런 이례적인 현상이 주목 받는 건 당연지사. WHO를 비롯하여 세계의 전문가들이 독일의 낮은 치명율의 원인을 찾고 있다. 물론 독일 내에서도 연구가 이루어지지만 아직 확답을 낼 수는 없는 상태. 그러나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으며, 그걸 종합하여 정리한다.


일단, 한국에서는 이런 기사가 나오면 "독일은 사망자의 코로나19 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은 옳다. 독일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아닌 사람이 사망하면 별도로 검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0.3%로 유지되는 낮은 치명율을 설명할 수는 없다. 독일처럼 노인 인구가 많아 코로나19에 더 취약하다 이야기하는 이탈리아의 치명율이 9%에 육박하는데, 독일에서 검사받지 않고 사망한 사람이 9%를 차지할리는 없지 않은가. 실제 전문가들 역시 사후 검사가 없음으로 인해 치명율이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그게 핵심적인 변수는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면 대체 뭘까? 현재 전문가의 분석은 크게 두 가지다. 의외로 독일의 코로나19 확진자에서 노인의 비율이 적다. 독일 내 초기 전파자는 이탈리아 북부에 휴가를 다녀 온 사람들로 추정되는데, 이 시기에 이탈리아 북부에 갔다는 건 100% 스키 여행이다. 따라서 알프스에서 스키를 즐길 정도면 건강한 체력을 가진 청장년층일 것이므로 상대적으로 코로나19가 큰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또한 독일의 노인들은 추운 겨울에 거의 집밖에 나오지 않는 고독한 사람들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대개 자가격리가 잘 이루어졌기에 코로나19가 전파될 때 상대적으로 안전했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현재까지의 확진자를 분석해보면 독일 내 감염자의 80%가 60세 미만, 70%는 50세 미만이라고 한다. 노인층의 감염 비율이 높은 이탈리아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기에 순식간에 의료체계가 붕괴한 이탈리아와 달리 독일은 시간을 끌며 준비할 틈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국가의 기본적인 의료 인프라가 유럽에서 가장 우월하다. 독일에 집중치료병상이 25,000개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탈리아는 5,000개 정도. 그래서 이탈리아는 밀려드는 환자를 수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보니 결국 증상이 심한 환자의 치료를 포기하고 사망자가 속출하며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했으나 독일은 초기에 시간을 벌 만큼의 인프라가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역시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위기의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월 말쯤 독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늘어난다며 주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독일 서부) 지역의 비중이 높다는 기사가 있었다. 필자는 그 기사를 보자마자 바로 카니발을 떠올렸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이 카니발로 유명한 쾰른, 뒤셀도르프 등이 있는 곳. 2월 중하순이 카니발이었다. 만약 독일이 일찍 위기를 예측했다면 카니발 같은 행사를 다 취소했을 것이고, 바이러스 전파를 크게 늦췄을지 모른다.


독일인은 언제나 매뉴얼부터 찾는다. 그들이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바이러스를 앞에 두고 보나마나 매뉴얼을 찾으며 어떻게 대응할지 사무적으로 고민하고 토론하느라 시간이 많이 허비되었을 것이다. 메르켈 총리가 "인구의 60~70%가 코로나19에 감염될 것"이라고 경고한 게 그 때쯤이다. 그 발언을 접한 한국에서조차 "엄살" "오버" 등의 반응이 나왔을 정도로 뜬금없는 소리였는데, 이때 독일이 정신을 차리고 의료장비를 확충하고 검사의 방향을 바꾼 게 크게 유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독일도 한국처럼 매우 공격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이 하루 1~2만건이라는 미친듯한 수치로 검사한다며 세계가 놀라는데, 독일도 그 수준으로 검사를 진행하는 중이다. 의학 선진국답게 우한에서 사태가 퍼지던 초창기에 이미 독일의 민간 연구소는 바이러스 연구를 시작했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진단 키트를 빨리 완성해 대량 검사의 인프라를 만들 수 있었다. 열이 없어도 감기 비슷한 증상만 있어도 모두 코로나19 검사를 받게 한다. 겨울은 독일인이 감기를 달고 사는 시즌이기도 하므로 검사자가 많은 게 당연한 노릇. 검사자가 많다는 건 일찍 감염자를 발견하여 병이 심해지기 전에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처럼 국가에서 검사 자체를 회피하는 경우 검사 받지 못하고 앓다가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 독일은 이처럼 공격적으로 검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검사도 받지 못하다가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조금만 증상이 있어도 하루 1만명 이상을 검사하는 와중에 92명이 사망했다는 건데, 검사도 받지 못하고 사망한 사람이 많아봐야 몇십 명이나 될까? 그 몇십 명이 코로나19 사망자로 집계되더라도 독일의 치명율은 1% 미만인 셈이다.


게다가 독일의 제약 회사와 의료기기 회사는 이미 전세계 최고 수준. 병원이 포화되기 전부터 인공호흡기 등 중증 환자에게 필요한 장비를 엄청나게 생산하고 있어 이탈리아처럼 장비가 부족해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일을 막고 있다. 또한 독일 제약 회사 바이엘이 생산하는 말라리아약을 이용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 중이라는 말도 들었다.


한국의 대응 사례도 적극적으로 참조한다. 독일은 원래 토론 문화가 강한 나라여서 뭔가 대책을 만들 때에도 끝없는 토론이 필요한 나라인데, 지금은 그렇게 시간을 끌 수 없으니 기존 사례를 가지고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하고, 한국의 모범적인 대응법을 적극 받아들여 일찌감치 드라이브스루 검사를 도입한 것은 물론, 중증 환자와 경증 환자의 병상을 구분하는 것까지 참조했다고 한다. 경증 환자는 박람회장 등 대형 시설에 임시로 만든 병상에 수용하고, 훌륭한 의료장비를 갖춘 병원에서 중증 환자를 집중 치료하기 때문에 사망자가 적다.


하지만 이처럼 우월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이미 독일 내에서도 "사망자는 결국 늘어날 것"이라고 전제하고 대책을 세운다고 한다. 말하자면, 독일은 아직 발병 초기단계이어서 사망자가 적은 것이지 결국 시간이 지나면 평균에 수렴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 하에 대책을 세워나간다고 한다. 노인 인구가 많다는 게 큰 위험요소임은 변하지 않는지라 이동 금지, 식당 폐쇄 등 강력한 조치를 연달아 시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며칠 뒤가 될지 몇주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독일도 유럽의 평균에 수렴하는 치명율을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며 치료제를 개발할 시간을 벌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단지 사망자의 코로나19 검사가 없기 때문에 치명율이 낮은 게 아니라, 의료 선진국의 모든 역량을 다 때려부으며 최대한 버티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