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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독일뉴스

News | 독일이 패망한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다.

1945년 5월 8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이다. 히틀러가 자살한 뒤 1주일쯤 지나 독일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날이기 때문이다. (시차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5월 9일을 종전일로 기록한다.)


독일 입장에서는 전쟁에 패하고 나라가 망한 날이다. 하지만 베를린시에서는 올해부터 이 날을 공휴일로 기념하기로 결정하였다. 유럽에서는 흔히 VE Day(VE는 빅토리 유럽)라고 부르는 이 날을 독일에서는 "해방의 날(Tag der Befreiung)"이라 부른다. 국가는 패망했지만, 국가를 뒤덮은 나치의 잘못된 지배로부터 해방된 날이라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1985년부터 서독 대통령의 제안으로 "해방의 날"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고 한다.


원래 첫 공휴일 지정인만큼 이 날 총리공관 앞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하여 행사가 취소되었고, 대신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 조촐하지만 의미있는 기념식이 열렸다.

베를린의 노이에 바헤(Neue Wache) 기념관에서 열린 행사 모습이다(사진 출처 :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0/may/08/european-leaders-mark-heroics-of-war-generation-after-75-years)


노이에 바헤는 전쟁 희생자를 위한 기념관이다. 이 자리에서 독일 대통령과 총리, 연방의회 의장, 헌법재판소장 등 "삼부요인"이 -1.5m 거리를 두고- 한 자리에 모여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고 전쟁이 주는 의미를 되새겼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전쟁이 끝났다고 하여 자유와 평화를 억압하는 폭력이 끝난 게 아니라면서,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폭력과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인종차별과 네오나치 극우세력은 싸워야 할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한 것이다.


이 날을 공휴일로 제정하자는 말은 95세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청원 사이트에서 많은 동의를 받은 뒤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 공휴일 제정을 제안했는데, 독일에서 가장 먼저 응답해주었다.


다만, 독일 내에서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에는 동의 여론이 높지 않아 베를린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독일의 극우 정당에서는 "패배의 날"을 기념하려 한다며 격렬히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계속해서 자국민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nie wieder)" 끝없이 메시지를 주입하는 독일의 지성은 본받을 만하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코로나19로 인해 인종차별이 고개를 드는 것을 강력히 경고하였고, 독일이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았음을 상기시키며 유럽의 통합을 주문하였다. 이것은 코로나19로 인해 이탈리아 등 유럽 일부에서 탈EU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대한 응답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