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차례 소개해드린바 있는 독일 맥주의 한 종류인 헤페바이첸(Hefe-Weizen). 효모를 거르지 않고 만들어 탁한 밀맥주가 구수한 곡식의 풍미를 보여주기에 "독일식 막걸리"라고 부릅니다.
갑자기 궁금했습니다. 독일식 막걸리와 진짜 막걸리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해보았습니다. 제 마음대로 맥걸리(맥주+막걸리)라고 이름도 붙였습니다. 어감이 입에 착 붙는 게 참 좋네요.
사실 한국 사람은 술을 섞어마시는 걸 좋아합니다. 맥주+소주, 맥주+양주 등 궁합이 맞으면 다 섞어버립니다. 그런데 왠지 맥주와 막걸리는 궁합이 안 맞을 것 같죠. 그래서 섞어마시는 시도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저 역시 한국맥주와 막걸리를 섞어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독일식 막걸리라 불리는 헤페바이첸은 섞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 번 도전해보았습니다.
준비물은 헤페바이첸 맥주와 기본 막걸리입니다. 막걸리에 과일이나 밤, 옥수수 등 이것저것 맛을 섞은 게 있는데 그런 건 쳐다보지 말기로 하고요. 오로지 밀과 보리로 맛을 내는 헤페바이첸과 쌀로 맛을 내는 기본 막걸리를 준비합니다. 삼대곡식 단합대회
잔을 준비하고 막걸리를 잘 흔들어서 반쯤 따라줍니다.
그 다음에는 헤페바이첸 맥주로 가득 채웁니다.
마셔보니 괜찮아요. 첫 맛은 맥주 특유의 상쾌함, 뒷맛은 막걸리 특유의 시큼함이 남아있습니다. 쓴 맛도 단 맛도 느껴지지 않고 시원하게 넘어가서 마치 음료수처럼 벌컥벌컥 마시게 되는 맛이네요.
물론 반대로 이야기하면, 풍미가 깊고 뒷맛이 오래가는 독일 맥주의 장점이 사라진 것이기는 합니다만, 막걸리의 맛이 좀 더 산뜻하게 개량된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그냥 "감"으로 시도해본 겁니다. 첫 시도의 결과가 나쁘지 않아 가끔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게 될 것 같습니다. 비율을 달리해볼 수도 있을 것이고, 섞는 순서를 바꿀 수도 있겠죠. 혹시라도 최적의 레시피가 발견된다면 다시 글을 올리겠습니다.
새로운 맛을 갈구하는 주당 여러분들도 저마다의 "감"으로 한 번 섞어보세요. 헤페바이첸과 막걸리의 궁합은 꽤 좋습니다.
작가는 뜬금없이 이런 시도를 왜 했는고 하니, 독일 맥주 강연을 앞두고 독일 맥주의 확장성을 연구하다가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이런 애정과 정성으로 독일 맥주를 대하는데 강연도 재미없지는 않지 않을까요?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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