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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455. 문화유산을 취소시킨 드레스덴의 다리

독일 드레스덴(Dresden)은 중세의 건축과 예술 등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일찍부터 아름다운 도시라는 소문이 온 유럽에 퍼질 정도였고, 특히 엘베강(Elbe)을 끼고 형성된 드레스덴 중심부와 강변의 여러 궁전 등은 탁월한 예술미에 높은 점수를 얻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습니다.

따로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아름다운 건축물이 거의 같은 시기에 완성되었기에 서로 조화를 이루며 도시 전체의 풍경을 완성한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드레스덴의 풍경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완전히 쑥대밭이 되고 구동독에 속한 시절 동안 많이 훼손된 것을 2000년대 들어 하나하나 되살린 것입니다. 따라서 원래의 아름다움보다는 덜하지만 지극정성으로 되살린 정성까지도 느껴질 정도이어서 인기가 높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되살리고 문화유산의 영예까지 얻은 드레스덴은,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더 이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아닙니다. 세계 최초로 문화유산이 등재 취소된 불명예를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드레스덴의 세계문화유산의 등재명은 "드레스덴 엘베 계곡"입니다.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엘베강을 따라 드레스덴 주변의 강변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문화유산이 되었던 것인데요. 드레스덴에서 엘베강에 다리 하나를 새로 건설하면서 유산의 가치가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등재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유네스코에서는 다리 건설을 강행할 경우 등재를 취소할 것이라며 위험목록에 올리고 경고를 하였고, 단순히 경고만 한 게 아니라 다리를 지하 터널로 만들면 된다는 대안까지도 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권고를 무시하고 다리를 건설하자 결국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문화유산의 지위를 박탈당하게 된 것입니다.


위 사진에서 가장 위에 보이는 다리가 그 문제의 다리입니다. 관광지와는 거리가 떨어져 있으니 오로지 시민의 편의를 위한 결정인 셈이고요. 저기까지 가려면 걸어서 갈 수는 없는 거리입니다.

그 문제의 발트슐뢰스헨 다리(Waldschlösschenbrücke)를 직접 찾아가보았습니다. 그냥 평범한 다리입니다. 통일 후 드레스덴이 다시 복원되고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교통량도 늘어났고, 이를 위해 다리를 건설한 것이므로 상식적인 결정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공사비를 더 들여 지하터널을 뚫지 않고 그냥 다리 건설을 강행해 문화유산 등재취소를 감수한 셈입니다. 그 결정은 주민투표에 부쳤다고 해요. 일반적으로 전통과 문화의 보존에 열을 올리는 독일인의 국민성을 감안했을 때 상당히 어색한 결정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어찌 되었든 드레스덴 시민들은 문화유산 소재지의 영예보다는 교통의 편의와 공사비 절감이라는 실용적인 이득을 택하였습니다. 주민투표로 결정한 문제이니 이 결정의 옳고 그름을 논할 이유는 없겠죠. 그러나 앞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의 등재 취소가 거론될 때마다 드레스덴의 사례가 소환되는 불명예는 피할 수 없을 듯싶습니다.


아, 그런데 고작 이 다리를 직접 보려고 일부러 관광지에서 동떨어진 곳까지 트램을 타고 갔느냐고요? 그건 아닙니다.

다리 바로 앞에 맥주가 맛있는 비어홀이 있습니다. "발트슐뢰스헨 옆 양조장"이라는 뜻의 브라우하우스 암 발트슐뢰스헨(Brauhaus am Waldschlösschen)입니다. 규모도 엄청나게 크고, 날씨 좋은 여름밤에는 넓은 뜰에 비어가르텐도 들어섭니다.

지금 발트슐뢰스헨 다리를 이야기한 이유. 지금부터는 정치사회적 이야기로 바뀌니 관심있는 분들만 읽어주세요.


짐작하셨겠지만 최근 거론되는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의 유네스코 유산 등재 취소와 관련하여 또 드레스덴이 거론되고 있기에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실제 등재취소 사례가 있으므로 일본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문화유산 등재취소가 가능할 거라는 기대를 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여기 역사적인 칼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그 예술성이나 독창성 등을 평가하여 보물로 인정할 것인지 협의하는데, 한 사람이 이야기합니다. 내 아버지가 그 칼에 죽임을 당해서 납득할 수 없다고요. 이런 화해안이 나왔습니다. 칼의 주인은 그걸로 사람을 죽였음을 고백하여 피해자에게 예를 갖추라, 그리고 피해자는 등재에 동의해달라, 그렇게 보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칼의 주인이 약속을 안 지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이라는 것은 칼의 가치를 평가하는 요소가 아니라 피해자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었으므로, 약속을 어겼다고 해서 칼의 가치가 훼손되는 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둘 중 하나입니다. 칼의 주인이 나중에 약속을 어길 생각으로 사기를 쳤고 피해자는 멍청하게 당했든지, 또는 나중에 어차피 약속 안 지켜도 문제될 건 없다는 걸 피해자도 알면서 칼의 주인을 배려하여 연극을 했든지.


아무튼 중요한 것은, 유네스코 위원회는 이 문제가 한일 양국의 문제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뒤로 빠질 확률이 높고, 굳이 나선다면 일본에 약속 이행을 형식적으로 권고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매우 열 받지만 현실적인 장벽입니다. 애당초 등재 당시 한국 정부가 동의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 문제, 동의를 하더라도 일본의 책임을 분명히 그 자리에서 명시하도록 했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일본은 그 당시에도 forced to work라는 말은 하면서도 이게 강제노역을 뜻하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해 한국인 속을 뒤집어놓았던 자들입니다. 그러면 상식적인 대응은, 그 자리에서 강제노역임을 인정할 때까지 싸워야죠. 일본은 아니라는데 한국에서만 forced to work는 강제노역이 맞다며 정신승리하고 끝냈죠. 그걸로 끝이 난 사안입니다.


혹시나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드레스덴의 사례를 검색하여 여기까지 온 분들도 있을 텐데요. 유감스럽지만 선례로 대입하기는 어려운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