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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457. 독일이 두 번 빼앗긴 땅, 브레슬라우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슐레지엔(Schlesien)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영어식 이름인 실레시아(Silesia)라는 명칭을 들어본 분들도 있을 겁니다.


슐레지엔은 석탄과 광물이 풍부했기에 어느나라든 탐을 낼만한 요충지였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은 미약했죠. 주로 보헤미아(오늘날 체코)의 지배를 받은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보헤미아의 힘이 약해졌을 때 스스로의 공작령을 세우고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지방 구성국으로 대접받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1537년 신성로마제국의 구성국인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이 슐레지엔의 브리크 공국과 협정을 체결하였습니다. 만약 브리크 공국 공작의 후사가 끊어지면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이 공국을 다스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의 수도가 베를린. 이후 프로이센 공국과 합쳐져 프로이센 왕국이 되고, 그 후 독일의 리더가 되어 독일제국을 탄생시키는 바로 그 나라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도 변방의 미약한 나라였습니다. 브리크 공국은 후사가 끊어졌고 협정을 이행해야 할 때 보헤미아의 왕권을 가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가 강제로 슐레지엔을 보헤미아에 포함시켜 버립니다. 당연히 슐레지엔의 지배권도 오스트리아가 갖게 되었죠.


이후 프로이센 왕국은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여 슐레지엔을 탈환합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이라 불리는 이 싸움에서 프로이센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오스트리아를 제압하고, 오스트리아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왕위 계승을 인정받는 대신 슐레지엔을 점령한 프로이센의 영유권을 인정하게 되죠. 슐레지엔은 프로이센을 거쳐 독일제국, 바이마르 공화국, 그리고 나치 독일 시대까지도 독일의 영토로 존속합니다.


하지만 2차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한 뒤 상당한 영토를 강제로 빼앗기게 되는데, 슐레지엔도 그 중 하나입니다. 슐레지엔의 대부분은 폴란드에 넘어가고, 나머지는 체코에 넘어갑니다. 이 지역은 나치 독일이 강제로 병합한 것이 아니라 원래 독일 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힘의 논리에 따라 빼앗기고 맙니다.


브란덴부르크가 오스트리아에게 한 번 빼앗기고, 독일이 폴란드에게(실제로는 소련에게) 또 한 번 빼앗긴 땅 슐레지엔의 중심도시는 브레슬라우(Breslau)입니다. 나치가 집권할 무렵 독일에서 인구가 8번째로 많았던 대도시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독일어 명칭인 브레슬라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 도시는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ław)입니다.


다행히 브로츠와프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구시가지를 거의 온전한 상태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마치 독일의 소도시를 보는 것 같은 동화 같은 귀여운 풍경입니다.

브로츠와프에서 가장 오래 된 시가지가 보존 또는 복원된 오스트로브 툼스키(Ostrów Tumski)는 거대한 붉은 벽돌 고딕 양식의 교회가 시가지 중심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게 전형적인 북부 독일에서 발견되는 풍경과 같죠. 발음하기 까다로운 오스트로브 툼스키의 독일어식 지명은 돔인젤(Dominsel), 즉 "대성당 섬"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섬이었다고 해요. 폴란드 출신의 글로벌 위인 코페르니쿠스도 이곳에 살았었다고 합니다.

이런 도시에는 시청사가 있는 광장이 관광의 중심이 되죠. 브로츠와프도 마찬가지로 리네크(Rynek)라 불리는 광장이 도시의 중심입니다. 그런데 리네크는 폴란드어로 시장이라는 뜻입니다. 감이 오는 분들이 있을 거에요. 독일에서 도시의 중심 광장을 대개 '시장'이라는 뜻의 마르크트라고 부르죠. 중세에는 광장에 시장이 열렸으니까요. 브레슬라우에서 마르크트 광장이라 불리던 곳이 지금 브로츠와프에서 리네크라 불립니다.

그런가 하면, 네 사원 지구(Dzielnica Czterech Wyznań; 또는 네 종교 지구)라 불리는 곳은 종교적 색채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보르츠와프의 독특한 명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곳은 가까운 거리에 로마가톨릭 성당, 개신교 교회, 유대교 회당, 러시아정교회 예배당이 모두 모여 있는 곳입니다. 각각의 건축미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최근에는 부근 골목마다 카페, 레스토랑, 펍, 클럽 등이 하나하나 자리를 잡으면서 도시의 힙플레이스가 되었습니다.

아담하지만 세련된 왕궁(Pałac Królewski)도 있습니다. 귀족의 저택이었는데,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2세가 구입하여 왕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브로츠와프가 프로이센에 중요한 곳이었음을 상징하는 곳이며, 오늘날에는 브로츠와프의 1천년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박물관으로 사용됩니다.

외곽에 위치한 센테니얼 홀(Hala Stulecia)입니다. 동구권 국가에 이런 비주얼이 펼쳐지면 십중팔구 공산주의 정권이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이곳은 독일제국 시절인 1913년에 완성된 다목적홀입니다. 당시에는 독일어로 야르훈데르트할레(Jahrhunderthalle)라고 불렀죠. 뜻은 같습니다. 세기(100년)의 홀이라는 뜻이고, 1813년에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독일이 주축이 된 연합군이 나폴레옹군을 격퇴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건물입니다.


이처럼 브로츠와프에 남아있는 관광명소는 대부분 독일의 손으로, 또는 일부는 오스트리아의 손으로 만든 것들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소도시를 여행하는 듯 익숙한 풍경이 펼쳐지니 상투적인 표현으로 "폴란드 속 독일"이라 해도 되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따지면 "폴란드 속 독일"로 꼽을 장소가 여럿 있다는 게 함정입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