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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458. 유럽에서 가장 큰 성, 말보르크성

유럽에 성이 참 많습니다. 몇 개인지 세어보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요. 그 중에서 가장 큰 성은 어디일까요? 유네스코에서 이 성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성"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폴란드의 말보르크성(Zamek w Malborku)입니다. 그 이름과 똑같은 작은 마을인 말보르크(Malbork)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가장 큰 성"을 따지는 기준은 성이 차지하는 면적의 넓이가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렇게 큰 성이 폴란드 북부의 작은 마을에 존재한다면 뭔가 사연이 있겠죠. 상식적으로, 성이 크다는 건 그 성에서 보호 받을 거민이 많다는 뜻이잖아요. 작은 마을에 큰 성이 있는 건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죠. 이 성은 그 자체가 하나의 국가와 다름없는 장소였습니다. 바로 튜튼기사단(독일기사단)의 기지였어요.


튜튼기사단은 십자군 원정을 위해 조직되었으며, 주로 독일인 기사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튜튼(도이치의 어원) 기사단이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독일기사단이라고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베네치아 등 유럽 남쪽에 머물렀으나 십자군 원정이 끝난 뒤에는 머물 곳이 없어져서 유럽을 떠돌며 용병 노릇을 했고, 그러다 폴란드에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블로그에 한 번 따로 정리했던 글이 있으니 참고해주시고요.

훗날 이들은 폴란드의 봉신국(폴란드 왕을 주군으로 섬기는 신하 국가)을 자처하며 폴란드 북부에서 독자적인 국가도 결성합니다. 그것을 튜튼기사국(독일기사국)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기사단이 동아리 정도의 단체는 아니겠구나, 그들의 성이 최소한 도시국가 정도의 규모는 되었겠구나, 하고 유추할 수 있죠. 말보르크성의 규모가 거대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당시에는 이 성을 독일어로 마리엔부르크(Marienburg; 성모마리아 성)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마리엔부르크에서 파생된 폴란드어 말보르크가 된 것입니다.


튜튼기사단은 폴란드가 약해진 틈을 타서 말보르크성을 떠나 더 넓은 곳으로 진출해 이민족을 점령하고 그들의 나라를 제대로 만들기 시작하였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를 받아들여 기사단을 해체합니다(기사단은 교황청이 십자군 원정을 위해 조직한 가톨릭의 용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점령한 이민족의 이름을 따서 나라의 이름을 프로이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게 오늘날 독일의 뿌리가 되는 프로이센 왕국의 출발입니다.

말보르크성은 튜튼기사단이 떠난 이후 사실상 방치되어 있었기에 크게 훼손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크게 파손되었습니다. 전후 폴란드 정부가 다시 복원한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고요. 비교적 충실하게 복원을 마쳐 튜튼기사단이 호령하던 원래의 모습을 상당부분 되찾았습니다. 다만, 성 내에 있던 성당은 복원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 덕분에 도시국가와 같은 성의 모습이 아니라 진짜 전쟁을 위해 쌓은 요새 같은 성의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마치 판타지 영화나 게임에 나올법한 그런 모습입니다. 내부는 박물관으로 단장되어 있습니다.


말보르크는 외딴 시골 마을이지만, 멀지 않은 곳에 관광으로 유명한 그다인스크(그단스크; Gdańsk)도 있으니 원데이투어 겸해서 말보르크성을 여행하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