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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463. 같은 모델 다른 결과, 고전주의 vs 낭만주의

네이버 여행플러스를 통해 연재하는 독일 역사 여행기가 진행 중입니다. 프로이센의 고전주의와 바이에른의 낭만주의가 모두 언급되었는데요.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 바이에른의 수도 뮌헨의 한 건축물을 통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좀 더 극명하게 비교해보려고 합니다.

여기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유적이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의 정문에 해당되는 프로필레아(프로필라이아)입니다. 베를린과 뮌헨에 프로필레아를 본따 거의 비슷한 시기에 완성한 건축물이 하나씩 있습니다.


굉장히 유명한 곳이죠.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Brandenburger Tor)이 그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에는 문만 남아있으나 원래 이곳은 도시를 둘러싼 관세성벽의 출입문으로 제작된 것이며, 실제 출입이 목적인만큼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습니다. 프로필레아를 그대로 본따 6개의 기둥이 5개의 출입로를 형성하며, 평소에는 양쪽 가장자리의 통로 하나씩만 개방하였다고 합니다.


고전주의는 그리스 로마 등 고대 시대의 건축양식만 본따 흉내내는 게 아닙니다. 그 시절의 철학까지 계승하려고 했죠. 로마가 남긴 엄청난 건축물들을 생각해보세요. 멋을 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모든 건축물은 저마다의 용도에 가장 최적화 된 실용성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래서 고전주의는 실용성이 핵심이고, 브란덴부르크문은 실제 성벽 출입문이라는 용도에 최적화되어 프로필레아를 되살린 결과물이라 하겠습니다.


원래 브란덴부르크문의 이름은 평화의 문(Friedenstor)이었습니다. 문 위에 장식된 사두마차를 이끄는 여신이 "승리의 신" 니케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여 평화를 누린다는 군국주의 국가 프로이센의 이데올로기가 드러나죠. 그런데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도 니케의 신전이 있습니다. 즉, 프로필레아를 본따 만드는 게 전부가 아니라 아크로폴리스의 니케까지 소환하고, 거기에서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백성에게 보여주는 지극히 실용적이며 상징적인 건축물이 브란덴부르크문입니다.


뮌헨에서 프로필레아를 본따 만든 곳은 쾨니히 광장(Königsplatz)에 있는 프로필레아입니다. 독일어로 프로피레엔(Propyläen)이라고 불렀습니다.

프로피레엔은 아크로폴리스의 프로필레아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이렇게 생겼을 것이라는 상상도에 입각하여 철저히 그 모습을 되살려 보여주는 것에 주력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출입문을 양끝에 만들기는 했지만, 애당초 프로피레엔은 성벽 출입문이 아닙니다. 광장에 있는 구조물입니다. 따라서 출입문 역할이 중요치 않습니다. 뻥 뚫린 광장이니까 굳이 문을 통해 드나들 이유가 없잖아요.


쾨니히 광장은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1세의 명령으로 조성되었는데, 바이에른 1세는 노골적으로 아크로폴리스를 뮌헨에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광장 주변에 고전주의 양식으로 박물관, 갤러리, 사원 등을 건축하였고, 뮌헨 시민이 아무 때나 모여 서로 학문을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예술을 즐기는 공간을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출입문도 아니고 박물관 등 어떤 용도가 있는 것도 아닌 프로피레엔의 존재는 "장식품"이라고 해석하는 게 타당하겠죠. 뮌헨에 아크로폴리스를 만들려고 했으니 프로필레아도 만들어야 하고, 사람들이 바라보면서 그런 아테네풍의 분위기를 만끽하라는 의도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이게 낭만주의입니다. 사람들의 감정(애국심, 감동, 위안, 낭만 등)을 움직이는 목적에 충실한 사조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베를린을 "슈프레강의 아테네", 뮌헨을 "이자르강의 아테네"라고 불렀습니다. (슈프레강과 이자르강은 각각 베를린과 뮌헨에 흐르는 강 이름입니다.)


똑같이 아테네라 불렸고 똑같은 프로필레아를 본따 건축물을 만들었는데,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과 뮌헨 쾨니히 광장은 이렇게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게 프로이센의 고전주의, 바이에른의 낭만주의의 차이입니다.


베를린과 뮌헨은 그렇게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 도시입니다. 우리는 두 도시가 모두 독일의 유명 대도시니까 다 비슷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다른 나라라고 해도 될 정도로 두 도시는 아주 정반대의 양상을 띕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