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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469. 산업유산의 바이블, 에센 촐페라인

산업과 기술이 발달하였으면서 역사를 허투루 대하지 않는 독일은 산업유산을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나라입니다.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 공장이나 탄광 등 산업시설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죠. 이러한 부류의 명소로 첫 손에 꼽을 장소가 에센(Essen)에 있는 촐페라인 탄광(Zeche Zollverein)입니다.


* 국내에는 졸버레인, 촐퍼레인 등 표기가 제각각인데요. 독일어 외래어표기법에 의하면 촐페라인이라고 적는 게 가장 적당하고요. 실제 발음은 "쫄페어아인"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촐퍼라인, 촐퍼아인도 틀린 표기는 아닙니다.

촐페라인 탄광은 프로이센 왕국 시절인 1847년 처음으로 가동되었습니다. 철강 생산을 위한 코크스 생산을 위해 석탄을 채굴하는 탄광이었습니다. 촐페라인은 "관세동맹"이라는 뜻이며, 당시 프로이센 주도로 독일 지역에 형성된 독일 관세동맹에서 이름을 딴 것입니다. 그렇게 샤프트(갱도)를 땅 속으로 뚫어 석탄을 캐고, 그것을 가지고 코크스를 만드는 공장까지 하나의 산업단지를 형성합니다. 1930년대에 마지막 12번 샤프트를 뚫었으며, 바우하우스 정신에 입각하여 완성한 12번 샤프트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산업의 발전을 가져옵니다. 생산량도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되죠. 당시 유럽 최대 규모의 탄광이었다고 합니다.

12번 샤프트의 정문에 해당하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은 촐페라인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이것의 용도는 권양탑(지하에서 채굴한 석탄을 끌어올리는 리프트 타워)입니다. 서독 산업화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권양탑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붉은 벽돌로 거대하게 쌓아올린 커다란 건물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촐페라인 탄광은 1986년 문을 닫았습니다. 이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통채로 인수한 뒤 체계적으로 단장하여 문화시설로 바꾸어놓았죠. 폐광의 골격을 그대로 놔둔채 전체 영역을 초대형 문화시설로 사용하면서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폐광이라 하면 흉물스러운 모습이 연상되지만 이처럼 공원을 조성하여 자전거 타고 산책하며 쾌적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두었고요. 물론 시민공원이므로 입장료 없이 완전히 개방된 공간입니다. 자전거 산책로의 총연장 3.5km이라고 하니 공원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관리된 공원의 존재 덕분에 전혀 흉물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수영장도 있어요. 아마 이런 뷰를 가진 수영장은 전세계 단 하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겨울 시즌에는 아이스링크도 운영되는데, 야간에는 공연도 열려 아이스링크 전체가 나이트클럽으로 변신합니다. 이만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문화공간으로 완벽히 재탄생한 게 분명합니다.


특히 촐페라인의 재활용에서 가장 비중을 둔 것이 디자인입니다. 폐광을 재활용하는 것 자체가 디자인의 힘이죠. 디자이너의 워크샵과 예술가의 갤러리 등으로 활용하는 공간도 있고요. 워크샵에서 탄생한 디자인 제품이나 도자기 등을 판매하는 상점도 있습니다. 디자인 학교를 유치하여 일부 공간은 학교로 사용되고, 최근에는 탄광의 느낌을 재현한 디자인 호텔도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면 여행자는 촐페라인에서 어떤 체험이 가능할까요? 폐광에 탄생한 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고요. 입구 앞에 자전거 렌탈숍도 있으니 자전거를 빌려서 한바퀴 돌아도 좋겠죠. 무엇보다 촐페라인 내부에 자리 잡은 박물관을 관람하는 게 가장 좋은 경험입니다.

12번 샤프트 구역에서 권양탑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보이는 큰 건물이 박물관입니다. 빨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두 가지 박물관이 나와요. 하나는 촐페라인 탄광과 라인-루르 공업지대(에세이 속한 독일 서부의 산업지역)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기록관입니다. 이름은 산업문화 포털(Portal der Industriekultur)입니다. 여기는 우리 한국인에게도 의미가 있어요. 왜인고 하니, 1970년대 외화를 벌려고 떠난 파독 광부들이 배치된 곳이 촐페라인 탄광이었고, 그 역사까지도 기록관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박물관은 루르 박물관(Ruhr-Museum)입니다. 루르 지역의 역사박물관인데, 이 지역에서 출토된 공룡 화석부터 시작하여 여러 카테고리의 다양한 컬렉션을 알차게 전시 중입니다. 폐광 건물 내에 전시품을 배치한 센스도 함께 감탄하게 되죠.

옛 보일러실 건물에 문을 연 박물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드닷 디자인 박물관(Red Dot Design Museum)입니다. 디자인에 관심이 없어도 레드닷은 많이 들어보셨을 거에요. 세계적인 디자인 어워드로 유명한 바로 그 레드닷의 본부가 촐페라인에 있고, 어워드 수상작을 전시하는 디자인 박물관이 운영됩니다. 한국 제품도 종종 수상작으로 이름을 올립니다.


박물관 세 곳은 모두 12번 샤프트 구역에 있습니다. 관광만 빨리 하려면 권양탑을 포함해 12번 샤프트 구역만 둘러보아도 반나절은 족히 지나갑니다. 좀 더 여유로운 여행을 원하면, 공원과 다른 구역까지 둘러보면서 이 거대한 산업유산을 구석구석 구경해보면 좋습니다. 수영장과 아이스링크 등 레저시설이 모인 곳은 코크스 공장부지입니다. 촐페라인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들을 구경할 아틀리에도 코크스 공장 구역에 위치합니다. 12번 샤프트 구역과 코크스 공장 구역이 거대한 공원으로 연결됩니다.

넓은 산업지대 전체를 걸어서 구경하는 게 만만치는 않겠죠. 내부를 순환하는 셔틀버스도 운행합니다. 가이드투어를 결합한 내부 투어 상품도 있기는 합니다만 아쉽게도 독일어 가이드만 지원됩니다.


공원을 포함하여 실외에서 방문하는 모든 곳은 무료입니다. 박물관과 셔틀버스는 유료입니다. 에센 시내에서 12번 샤프트 앞까지 한 번에 연결하는 트램도 다니고요. 조금 떨어진 곳에 에스반 전철이 정차하는 기차역도 있습니다.


촐페라인 탄광은 용도를 다한 산업유산을 어떻게 재활용할 것인지 가장 모범답안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그리고 파독 광부의 땀과 눈물도 스며든 곳입니다. 독일이기에 가능한 신선한 여행 테마라고 추천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