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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470. 뮌헨의 제1차 세계대전 기념비

독일에 전쟁 기념비나 기념관이 굉장히 많죠. 그런데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왜 제1차 세계대전 관련 기념비는 본 기억이 없을까?"


어쨌든 1차대전도 독일이 패전국이었고 많은 사람이 죽었죠.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역사를 기억하고 경고를 남기는 독일의 스타일상 1차대전을 굳이 기억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궁금해졌습니다.


외국 자료를 열심히 찾아보았고 여기에 개인적인 생각을 더하여 이런 답을 내게 되었습니다.


2차대전 이후에 만든 기념비는 당연히 2차대전과 관련된 것이겠죠. 특히 2차대전 중 독일이 워낙 나쁜 짓을 많이 했기에 희생자에게 사죄하는 것만으로도 메모리얼이 차고 넘친단 말이죠. 아마 1차대전이 끝난 뒤에는 1차대전과 관련된 기념비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2차대전 중 싹 다 부수어졌겠고, 전쟁 후에 굳이 1차대전 기념비를 다시 복원하기보다는 2차대전에 대해 사죄하고 추모하는 분위기가 지배하는 게 당연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도 1차대전 기념비가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요? 기억을 되짚어보니 제가 방문해본 곳 중에서는 뮌헨에 하나 있습니다.

레지덴츠 궁전과 호프가르텐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바이에른 주청사(Bayerische Staatskanzlei)입니다. 관공서 건물이어서 관광지로는 거론하지 않는 곳인데요. 사진에서 보시면 건물 앞에 돌로 만든 네모난 석관 같은 게 보일 겁니다. 이것이 바로 호프가르텐 전쟁기념비(Kriegerdenkmal im Hofgarten), 1924년 설치되었고 1928년까지 추가로 작업되었습니다.


이것을 만든 이는 비텔스바흐 가문의 수장인 루프레히트(Rupprecht von Bayern)입니다. 이 시기에는 바이에른 왕국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므로 왕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사실상 국왕에 준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1차대전의 희생자를 추모하고자 기념비를 제작하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기념비도 2차대전 중 폭격으로 훼손되었는데, 전쟁 후 다시 복원된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념비 겉에 "당신들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Sie werden aufstehen)"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옆으로 돌아 입구로 들어가면 반지하 정도 되는 공간에 누워있는 동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전쟁으로 산화한 이름없는 병사들 모두를 추모합니다. 원래 기념비 내부를 장식하는 문구나 부조 등이 많았는데, 복원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대신 2차대전과 관련된 문구 하나를 더하여 복원을 마쳤습니다.

배경 설명 없이 문구만 덩그러니 적혀있어 정확한 행간을 모르겠지만, 아마 2차대전 중 뮌헨에서 숨진 독일군의 숫자를 적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1939-1945년 뮌헨 도시의 22000명의 사망자, 11000명의 실종자, 6600명의 공중전 희생자를 기리며"라고 적혀있네요. 민간인 사망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적어서 아마 군인의 수가 아닐까 추측한 것이고요.


기념비를 복원할 때 굳이 2차대전 전몰장병을 무시하는 것도 이상하고, 또 그들을 영웅처럼 기리자니 나치 독일군이었고, 그래서 이런 드문 성격의 기념비가 존재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작가 개인의 추정입니다. 독일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애매한 상황인지라 독일 내에서 1차대전 기념비가 거의 다 사라진 게 아닐까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보았습니다.

저는 지금 네이버 여행플러스를 통하여 독일 역사여행기를 연재하는 중인데요. 다음주에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진도가 넘어갑니다. 1차대전은 다루지 않기로 했어요. 다룰만한 여행지가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블로그에서라도 이렇게 글 하나로 1차대전의 이야기를 남겨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