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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471.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기념관

히틀러가 몹시 사랑했던 도시 뉘른베르크. 덕분에(?) 연합군의 폭격으로 처참히 파괴되었을뿐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에는 A급 전범을 심판하는 전범재판까지 뉘른베르크에서 열렸습니다. 물론 이것은 폭격에 파괴되지 않은 법원이 남아있는 도시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뉘른베르크가 선택된 것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치의 대표적인 도시에서 나치 전범을 처벌하는 도시로 극적인 드라마를 갖게 됩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은 승전국 4개국(미,영,프,소)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의 전쟁범죄에 대한 기소처벌권을 가지고 수행한 재판이었으며, 전범 중에서도 가장 수뇌부라 할 수 있는 A급 전범만 한 자리에 모아 심판을 내렸습니다. 물론 전범 중 가장 꼭대기에 있어야 할 이들(대표적으로 히틀러와 괴벨스)은 자살로 생을 마쳐 법정에 세울 수 없었지만 나치의 3인자 헤르만 괴링(Hermann Wilhelm Göring), 히틀러가 총애한 건축가이자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해군 원수 겸 최종 대통령대행 카를 되니츠(Karl Dönitz) 등 거물급(?) 전범이 이 자리에서 처벌을 받았습니다. 또한 신변이 확보되지 않은 나치의 당수부장 마르틴 보어만(Martin Ludwig Bormann)도 궐석으로 재판하여 사형을 언도하였다가 훗날 보어만의 시신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 열린 뉘른베르크 법원(Justizpalast)에는 2000년 뉘른베르크 재판 기념관(Memorium Nürnberger Prozesse)이 생겼습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대한 자료를 보다 체계적으로 확실히 고지하여 역사를 바로 알리고 미래세대를 교육하는 역할을 하기 위함입니다.

당시 실제 재판이 열린 법정도 그 모습 그대로 복원하여 공개 중입니다. 어느 자리에 판사 누구, 검사 누구, 피고인 누구, 앉은 자리와 들어오고 나간 동선까지도 모두 안내되어 있습니다.

전범재판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정리한 박물관이 이어집니다. 나치의 패망 이후 연합군에 의해 전범재판이 열렸던 모든 과정, 재판장소인 뉘른베르크 법원을 준비하는 과정 등 TMI 수준의 방대한 자료가 자료사진 등과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다수의 전시물은 독일어로만 안내됩니다. 입장 시 추가비용 없이 영어 오디오가이드를 받을 수는 있는데요. 군사재판 관련 용어가 낯설기 때문에 고난이도의 영어 리스닝을 요구하며, 보통 수준의 영어를 읽고 쓰는 여행자라면 아마 전시된 내용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채 나오게 될 것이라는 점이 단점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물론 전문적으로 연구할 목적이 아니라면 전시된 사진과 영상 등 시청각 자료만으로도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기에 부족함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제 피고인이 앉았던 의자를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고, 그 너머에 재판 화면이 동영상으로 재생됩니다.


이 재판으로 인해 24인의 피고 중 12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또한 1명은 재판 전에 자살하여 미결수 신분으로 재판을 끝냅니다. 원래 군사재판의 통례상 군인은 총살형, 민간인은 교수형으로 처벌하여야 하는데, 당시 재판장인 소련의 이오나 니키첸코 장군의 강력한 요구로 전원 교수형에 처합니다. 군인을 교수형으로 처형하는 건 명예마저 더럽히는 치욕적인 죽음이라고 하네요. 나치 독일에 의해 가장 커다란 피해를 입은 게 소련이었기에 연합군 중에서도 전범재판에 가장 자비가 없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11명 중 무혐의로 석방된 건 3명, 그리고 기소해야 할 전범 대신 그 부친을 잘못 기소한 1명은 무혐의가 아니라 미결수 신분으로 재판을 끝냅니다. 재판정에서 대부분 잘못을 뉘우치기보다는 역정을 내거나 억울함을 호소하였는데, 잘못을 뉘우치고 죗값을 치른 이가 딱 2명이었고 그 중 알베르트 슈페어는 징역 20년 복역 후 출소하여 자신이 보고 들은 나치의 실상을 자백하여 나치 독일의 연구에 나름의 공헌을 했다고 합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은 A급 전범을 처벌한 뒤 이제 B급 이하의 전범들을 추가로 기소하여 처벌하는데, 이것은 연합군 4개국의 국제군사재판이 아니라 뉘른베르크 지역을 점령한 미군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한 재판입니다. 뉘른베르크 계속재판(Nürnberger Nachfolgeprozesse)이라는 이름으로 구분하는데, 기념관에는 뉘른베르크 계속재판에 대한 자료도 상세히 공개됩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전시물이 있었는데요. 바로 도쿄 전범재판(Tokio Prozess)에 대한 자료였습니다.

나치 독일 전범만 심판하면 안 되죠. 극동아시아에서 일본이 벌인 전범행위도 심판해야죠. 일본의 A급 전범을 심판하기 위한 자리로 1946년에 시작되었습니다(일본 패망 후 1년이 지난 시기입니다). 독일과는 무관하지만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과 비슷한 속성의 역사인만큼 기념관 내에서 한 섹션을 할애하여 적잖은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도쿄 전범재판은 11개국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한국은 배제되었다는 게 우리 관점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고요. 전범 중 가장 0순위로 이름을 올려야 할 일왕(천황)은 아예 기소자 명단에서 빠져있는 등 여러모로 알맹이 없는 재판으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과 비교됩니다. 이건 마치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하지 않았는데 전범재판정에 세우지 않은 것과 같으니까요. 이때 A급 전범 혐의가 있음에도 아예 기소조차 되지 않고 석방된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가 일본의 현 총리 아베 신조입니다.


독일은 뉘른베르크 법원에 기념관을 만들어 전범재판과 관련된 내용을 가감없이 공개하고 있으나 일본은 도쿄의 재판장소(육군사관학교)에 기념관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네요. 아마 아닐 겁니다.


뉘른베르크 재판 기념관은 어려운 내용의 역사 박물관인만큼 보편적으로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역사를 마주하는 독일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소라는 측면에서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립니다.


뉘른베르크 법원 바로 옆 별관에 있습니다. 큰 건물로 들어가지 말고 (건물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그 우측의 별관을 찾아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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