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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474. 쾰른 호엔촐레른 다리

독일의 대표적인 포토존이죠. 쾰른 대성당과 큰 다리가 포개지는 야경입니다. <프렌즈 독일>의 현재 표지사진 앵글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다리가 호엔촐레른 다리(Hohenzollernbrücke)입니다. 원래 이 자리에는 대성당 다리(Dombrücke)라는 이름의 다리가 있었으나 쾰른의 교통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1911년 호엔촐레른 다리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다리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자동차 통행을 배제하고 기차와 보행자만 건널 수 있게 다리 설계를 고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다리의 양끝에 쾰른 중앙역과 쾰른 메세도이츠역이 있습니다. 쾰른은 독일 제4의 도시. 호엔촐레른 다리는 독일에서 가장 많은 기차 통행량을 가진 다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ICE를 비롯하여 온갖 열차가 다리 위를 지나가고, 그 옆으로 보행자가 지나갑니다. 물론 다리 위에서는 열차가 서행하므로 보행자가 바로 옆을 걸어도 문제는 없습니다.

보행자 도로와 철교 사이의 난간에는 이렇게 수많은 자물쇠가 걸려 있습니다. 연인들이 사랑을 약속하며 걸어두었죠. 그래서 호엔촐레른 다리의 별명이 "사랑의 자물쇠 다리(Love Lock Bridge)"입니다. 2008년부터 이런 전통이 생겼대요. 이런 문화의 기원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보다 늦은 건 분명하고요. 아무튼 이 자물쇠를 다 모으면 그 무게가 최소 2톤 이상일 것으로 독일철도청이 추정합니다. 물론 그 정도로는 다리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고요.


다리 이름인 호엔촐레른은 독일 왕가의 가문 이름입니다. 프로이센 왕국의 국왕, 이후 독일 제국의 황제를 배출하였죠. 그런데 수도 베를린이 아닌 쾰른에 왕가의 이름을 딴 다리가 있는 이유는? 쾰른도 호엔촐레른 왕가의 영지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큰 다리를 만들면서 다리의 양쪽에 각 2개씩, 총 4개의 기마상을 세우고 호엔촐레른 다리라 불렀습니다. 기마상의 주인공 4명은 모두 호엔촐레른 가문 출신의 군주입니다.

대부분 쾰른 대성당에서 걸어서 호엔촐레른 다리에 도착할 것입니다. 이때 먼저 만나게 될 이가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Wilhelm II)입니다. 다리가 건설될 때 독일 황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 강 반대편으로 가면 만나게 되는 이가 빌헬름 1세(Wilhelm I), 독일 제국의 첫 황제입니다. 보행자 도로가 한 쪽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 양끝의 빌헬름 2세와 빌헬름 1세를 주로 만나게 될 거에요.

만약 쾰른 중앙역의 북쪽(대성당 반대쪽)에서 여행을 시작할 경우 뮤지컬 극장을 거쳐 호엔촐레른 다리에 도달할 텐데 이 때 처음 마주할 이는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입니다. 빌헬름 1세에 이어 독일 제국의 두 번째 황제입니다. 하지만 빌헬름 1세가 워낙 장수하여 그 아들인 프리드리히 3세가 늦은 나이에 황제가 되었고 지병도 있어서 즉위 후 99일만에 서거한 비운의 황제이기도 합니다. 빌헬름 2세가 그의 아들이고요.

마지막 네 번째 기마상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Friedrich Wilhelm IV)입니다. 프로이센의 국왕이었고요. 황제 빌헬름 1세의 형입니다. 그러니까 다리 건설 당시 황제였던 빌헬름 2세를 시작으로 차례대로 4명의 호엔촐레른 왕가의 군주가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2차대전 이후에도 호엔촐레른 다리는 두 차례나 확장되었고, 이번에 또 한 번의 확장을 계획 중입니다. 좁은 보행자 도로로 사람과 자전거가 오가는 것도 좁은데, 사랑의 자물쇠 등 관광객이 멈추고 구경하는 볼거리까지 있어 매우 혼잡했거든요. 그래서 보행자 구역을 확장하고 자전거도로를 구분하는 것을 골자로 다리를 확장하고자 합니다.


원래 계획은 이미 구체적인 확장안이 완성되어야 하고 2022년까지 공사를 끝내는 것인데, 코로나 여파로 인해 스케줄을 지키는 건 매우 어려워보입니다. 아무튼 언젠가 확장 공사가 끝나면 여행자는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쾰른을 여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