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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476. 2차대전이 시작된 곳, 폴란드 그다인스크

1939년 9월 1일이 무슨 날일까요?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날입니다. 이 날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대전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독일군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침략군이 될 리는 없죠. 이유가 있었겠죠. 원래 독일의 땅이었던 곳, 그리고 독일인이 살고 있는 곳, 하지만 1차대전 이후 강제로 빼앗겨 폴란드 영토가 된 곳, 그 때문에 독일은 영토가 둘로 찢겨 월경지를 만들게 한 곳. 단치히(Danzig)가 문제였습니다.


독일은 줄기차게 찢겨진 영토를 연결할 회랑의 반환을 요구하였고 단치히는 그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폴란드는 여기에 응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결국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하여 힘을 행사하였고, 이것이 2차대전의 시작입니다.


세계 최악의 비극의 서막을 올린 단치히. 바로 폴란드 그다인스크(Gdańsk)입니다.

그다인스크는 폴란드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바르샤바 크라쿠프 등 주요 도시와 거리가 멀어요. 하지만 그래서인지 여전히 독일에 속했던 시절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아무런 배경정보 없이 여행한다면 여기가 독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지 모릅니다.


그다인스크는 처음 형성된 구시가지, 그리고 나중에 새로 만든 신시가지가 있습니다. 신시가지라고 해서 현대식 빌딩이 즐비한 그런 도시가 아닙니다. 신시가지도 중세에 만들어졌으니까요. 바로 이 신시가지가 그다인스크 여행의 핵심이며, 중앙 시가지(Główne Miasto)라 부릅니다. 독일에 속했을 때에는 독일어로 레히트슈타트(Rechtstadt), 즉 '오른쪽 시가지'라고 불렀습니다. 구시가지의 우측에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차례로 '오른쪽 시가지'의 관문인 비진나문(Brama Wyżynna)과 그 너머의 감옥탑(Wieża Więzienna), 그리고 안쪽 대문인 황금문(Złota Brama)입니다. 비진나문은 '높은 문'이라는 뜻인데 원래 독일어 지명인 높은 문(Hohes Tor)를 폴란드어로 직역하여 옮긴 것입니다.


바깥 문과 안쪽 문을 통과해 시가지로 들어왔습니다. 드우가 거리(ulica Długa)입니다.

말하자면 그다인스크의 전성기가 기록된 현장입니다. 상업도시로 번영했던 곳이며, 그래서인지 이 거리의 건축물은 네덜란드풍을 띕니다. 혹자는 그다인스크가 네덜란드 느낌이 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거리 때문입니다. 드우가 거리는 '긴 거리'라는 뜻이며, 원래 독일어 지명 랑가세(긴 골목; Langgasse)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긴 거리'는 '긴 시장'과 만납니다. 그다인스크에서 가장 유명한 곳입니다.

드우기 광장(Długi Targ). 직역하면 '긴 시장'인데, 광장이라기보다는 드우기 거리가 조금 넓어지는 구간이 광장처럼 사용되는 곳을 지칭하며, 이 또한 독일어 지명인 랑어 마르크트(Langer Markt)를 폴란드어로 옮긴 것입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여기를 영어식으로 롱마켓 광장이라 적는 자료도 많습니다.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높은 건물은 중앙 시가지 시청사(Ratusz Głównego Miasta)인데, 신시청사 정도로 번역하는 게 적당합니다. 원래 이 구역을 독일어로 '오른쪽 시가지'라고 했죠. 그래서 시청사도 '오른쪽 시가지의 시청사(Rechtstädtisches Rathaus)'라고 부른 게 원래 이름입니다.

드우기 광장의 끝은 녹색 문(Brama Zielona)입니다. 그러니까 황금문과 녹색 문 사이의 '긴 거리'와 '긴 시장'이 그다인스크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녹색 문을 지나면 모트와바강(Motława)이 나오는데요. 강변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는 시가지의 모습이 참 예쁩니다. 모트와바강은 발트해로 연결됩니다. 그다인스크가 부강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셈입니다.

강변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길도 잘 만들어져 있고, 주변에 분위기 좋은 카페나 레스토랑도 여럿 보입니다.

이 육중한 건축물은 기중기 기능을 가진 출입문입니다. 그래서 기중기문(Brama Żuraw)이라고 부르고요. 역시 독일어 지명인 크란토어(Krantor)를 폴란드어로 직역한 이름입니다.


기중기문을 통과해 다시 시내로 들어와볼까요? 그러면 성모 마리아 대성당(Bazilika Marianka)을 중심으로 펼쳐진 안쪽 골목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성모마리아 대성당을 중심으로 펼쳐진 길은 피브나 거리(ulica Piwna), 즉, 맥주 거리라는 이름입니다. 혹시 옛날에 맥주 양조장이 있었을까요? 지금 전통적인 양조장은 보이지 않지만 2012년에 문을 연 마이크로 브루어리가 유명합니다.

브로바르 피브나(Browar Piwna), 즉 피브나 양조장(=맥주 양조장)이라는 이름의 아담한 곳입니다. 독일 냄새 물씬 나는 도시이어서 독일 스타일의 헤페바이첸 맥주를 주문했더니 독일 본토 맛에 뒤지지 않습니다.


그다인스크는 독일어 지명(단치히 시절에 불리었을 지명)으로 이해해야 더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도시입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독일과 같은 문화권이었기 때문이겠죠.


만약 독일 소도시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그다인스크는 틀림없이 마음에 쏙 들 것이라 단언합니다. 아담하고 귀여운데 부티가 흐르고 품격이 있는 독일 특유의 소도시 매력이 독일 바깥에서 이렇게 완벽하게 재현되는 케이스는 흔하지 않습니다.


81년 전 비극적인 전쟁이 시작된 곳. 아픈 역사를 안고서 폴란드의 주요 도시로 완전히 부활한 곳. 그다인스크입니다. (국내에서는 그단스크라고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럽기는 합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