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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독일뉴스

News | 베를린의 기괴한 코로나 봉쇄 반대 시위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기괴한 데모다. 극단적인 좌파성향의 반정부주의자부터 네오나치 수준의 극우분자들이 함께 모였다. 거기에 옆집 아주머니 할아버지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함께 모였다. 8월 29일 베를린에서 열린 코로나 봉쇄 반대 시위의 모습이다.

베를린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시위가 벌어졌고 경찰 추산 38000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런데 위 캡쳐 사진을 보면, 독일제국 국기(검정-하양-빨강)를 흔드는 머리 짧은 백인 청년 무리들이 보인다. 사진만 봐도 독일의 극우분자들이라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들은 경찰의 방어벽을 뚫고 국회의사당 계단에 난입해 환호하는 중이다. 극우분자의 폭력시위인 셈인데, 경찰에게 따지는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동네 이웃처럼 생긴 아저씨 아줌마들이다.

근처의 다른 장소에서는 로버트 F. 케네디가 연설 중이다. 그는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조카이며, 환경운동가라고 한다. 그가 이 자리에서 이야기한 것은 놀랍게도 5G 음모론이었다. 5G 전파가 인체 면역력을 망가트려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전파된다는 것이 음모론의 골자. 수년 전부터 백신 개발을 강조했던 빌 게이츠를 그 배후로 지목한다. 마스크 속에 "해로운" 5G 전파 흡수가 잘 되도록 철심을 숨겨두었으며, 그래서 정부가 국민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이런 음모론이 극우분자의 폭력 시위와 함께 퍼졌다.


위 캡쳐 기사의 제목 아래 첫 줄을 보라. "백신 반대론자와 네오나치, 트럼프의 팬, 헤어 크리슈나 댄서"가 한 자리에 모였다고 중계한다. 시위 현장에서는 성경 구절 유인물을 나눠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는데, 미루어 짐작하건대 종말론자였을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조합인가? 그래서 필자가 "기괴한 데모"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들은 코로나바이러스 통제를 위하여 정부가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제하는 것(위반 시 벌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진짜로 목숨보다 인권과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좌파주의자도 있겠고, 이 참에 정부를 까고 싶은 극우세력도 있겠고, 음모론을 철썩같이 믿어 공포심에 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시위에 불을 붙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위 캡쳐는 8월 1일 베를린 시위 모습이다. 마찬가지로 코로나 봉쇄 반대를 외치며 대규모 군중이 모였는데, 당연히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거리두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방역수칙이 깡그리 무시된 대형집회 이후 독일도 다시 코로나 확진이 늘어나 대유행이 우려되는 상황으로 악화되고 있기에 또 한 번 대형집회를 예고하자 베를린 상원의회가 집회를 금지하였다. 이에 주최측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결국 베를린 행정법원에서 이 집회의 개최를 허가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집회 금지 사유는 간단하다. 이미 8월 1일 집회에서 이들이 방역수칙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음이 확인된 상태에서 국민의 안전을 위해 집회를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최측에서는 이번 집회는 거리두기를 준수할 것(마스크 착용한다는 말은 안 함)이라 약속하였으나 사실 그게 말이 되는가. 애당초 그런 방역수칙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거늘. 그러나 법원에서는 "주최측이 약속까지 했는데 이들이 약속을 어길 거라는 증거는 없으니 집회를 금지할 합법적 근거가 없다"는 논리로 집회를 허가하였다.


유럽은 집회결사의 자유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대한 권리로 여겨진다. 그러니까 극우가 백주대낮에 인종차별적 망언을 내뱉으며 데모해도 그것을 막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곳이기 때문에 정부가 집회를 금지했다는 사실만으로 분노한 사람이 늘어났다. 결국 집회를 금지했다가 법원에 의해 취소된 것이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은 시위대를 베를린으로 모이게 만든 셈이다.


물론 이 날 시위 현장에서 마스크는 당연히 찾을 수 없었고 거리두기도 지켜지지 않았다. 오전이 시작된 가두행진은 거리두기를 주문하는 경찰의 방송은 가볍게 무시하였고, 결국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하지만 다시 오후에 모인 시위대는 역시 거리두기를 무시한채 대규모 집회를 계속하였고 경찰은 더 이상 이를 해산시키지 못했다. 다만,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는 "푸틴"을 연호하는 극우 세력의 폭력이 도를 넘어서면서 수백명이 연행되었다.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청년도 중장년도 아니고, 독일인도 이민자도 아니고, 남성도 여성도 아닌, 이 기괴한 조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필자가 독일의 여러 언론을 번역기 돌려가며 확인해본 결과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SNS다.


즉, SNS나 유튜브 등으로 음모론에 빠져들고 그것이 진실이라 믿은 사람들의 모임이라 생각된다. 코로나 확산 자체를 국민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고의라고 생각하니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생각할리 있을까. 게다가 기존의 정치적 질서를 일체 거부하니 극우세력도, 반유대주의자도, 성소수자도, 이민자도, 사이비교도도, 모두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터넷만 열면 존재하는 모든 언론사의 뉴스를 받아보지만 유럽에는 그런 포털 사이트의 개념이 없다. 직접 돈을 주고 신문을 사서 읽거나 방송시간 맞춰 TV 앞에 앉아야 뉴스를 본다. 당연히 뉴스를 접하지 않게 되고, 스마트폰으로 들어오는 그럴싸한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쉽게 믿게 되는 건 아닐까.

이제 불똥은 정치권으로 튀었다. 시위대는 집회 금지 명령을 내렸던 상원의원 안드레아스 가이젤의 사퇴를 요구한다. 그가 속한 사민당(SPD)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메르켈 총리에 대한 불신과 비난이 난무하니 기민당도 함꼐 돌을 맞는다.


데모의 주최 단체 중 가장 앞에 선 크베어뎅켄711(Querdenken; 거꾸로 생각하기)의 요구사항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모든 코로나 봉쇄 조치를 해제할 것. 둘째, 연방정부를 해체할 것. 바덴뷔르템베르크, 헤센, 바이에른 등 각 연방주가 독립국이 되고 독일이라는 연방공화국은 해체하라는 매우 극단적인 요구를 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참으로 혼란스럽다. 결국 이런 분위기가 강해질수록 SNS에 가짜뉴스를 퍼트리며 극단적 공약으로 유권자를 선동하는 정치세력이 득세할 것이고, AfD 등 극우정당의 파이만 커질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극우와 한 자리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극우를 벌레보듯 했다면 이런 일이 한두번 반복되면서 극우에 대한 반감이 사라질 것이고, 결국 그 수혜는 극우 정치인이 누리게 될 테니까.


코로나는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독일 역시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불어닥칠 것 같고, 사회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PS. 길게 적었는데, 이 스토리의 적지 않은 부분이 한국과도 오버랩되었을 것이다. 정부를 불신하며 SNS상의 가짜뉴스와 음모론에 선동된 사람들, 코로나라는 핑계로 정부가 국민을 통제한다는 그릇된 믿음, 하지 말라는 걸 굳이 하면서 방역수칙을 무시하는 것, 이렇게 될 게 뻔히 보이는데 집회를 허가한 판사의 안일한 결정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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