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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484. 세계 최초의 개신교 교회

세계 최초의 개신교 교회는 어디일까요?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탄생했으니 당연히 종교개혁이 일어난 독일에서 그 이후에 만들어졌겠죠. 기존 성당이 종교개혁 후 개신교를 받아들인 케이스가 아니라, 교회 건축부터 온전히 개신교 교회로 사용하고자 만들어진 최초의 교회는 독일 토르가우(Torgau)에 있습니다.

토르가우는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영지였습니다. 그는 바르트성에 루터를 숨겨두어 성서를 번역하도록 지원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루터를 후원한 제후입니다. 그가 토르가우에 하르텐펠스성(Schloss Hartenfels)을 지었고 그 후임 제후가 성에 딸린 예배당을 추가로 만들었는데, 바로 이 예배당이 개신교 정신에 입각해 건축한 세계 최초의 교회입니다.

성의 일부인만큼 겉으로 보기에 크게 구분되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이렇게 성의 한 쪽에 별도의 출입문으로 구분된 예배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슐로스카펠레(Schlosskapelle), 즉 궁정 예배당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궁정 교회(슐로스 교회; Schlosskirche)라고 적는 자료도 간혹 보입니다.


궁정 예배당은 철저히 종교개혁 정신을 반영하여 설계하였습니다. 물론 마르틴 루터가 적극 관여하였고요. 1544년 예배당이 문을 연 뒤 봉헌예배를 드릴 때에도 루터가 설교하였습니다. 루터는 사제가 예배의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모든 신도가 하나님을 직접 마주해야 한다고 가르쳤기에 예배당의 정면에 십자가와 제단화를 두고, 설교단은 측면으로 옮겼습니다. 즉, 예배에 참석한 이들은 설교하는 목사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게 됩니다.

교회 출입문도 측면에 위치하고, 설교단도 측면에 위치합니다. 정면에는 제단이 있고, 그 위에 오르간을 설치하여 교회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방에 각각의 요소가 자리하면서 신도가 중앙에 모이게 되는 방식으로 설계된 교회를 독일어로 크베어키르헤(Querkirche)라는 용어로 구분합니다. 직역하면 "가로지르는 교회" 정도가 되겠습니다. 기존의 가톨릭 교회와는 구분되는 중세 개신교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을 구현한 방식입니다.


궁정 예배당은 이후부터 건축될 개신교 교회의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교회 건축이 유행하면서 후에는 가톨릭 교회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중앙제단은 매우 단촐합니다. 이 위에 성경을 펴고 예배하니 사람들은 다른 것 없이 오직 말씀에만 집중할 수 있었겠죠. 지금과 그 시절의 차이가 있다면, 그 때에는 제단 뒤편에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제단화가 펼쳐졌습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이 많던 시절이라 그림을 곁들여 설명하면 이해가 빠르기 때문입니다. 또 제단 위의 오르간도 파괴되어 1994년에 새로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단순하고 별 것 없어보이는 모습이지만, 이 단순함 속에 종교개혁의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최근 물의를 일으키는 일부 교회에게 귀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렇듯 종교개혁은 500년 전의 사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금도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마르틴 루터의 일생을 뼈대로 하여 종교개혁을 이야기하는 여행인문학 강연이 준비되었다는 점도 덧붙여 안내드립니다.

토르가우는 종교개혁 성지 비텐베르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기차로 원데이투어 가능한 거리에 있고요. 세계 최초의 개신교 교회가 있다는 점 외에도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Katharina von Bora)의 임종지라는 사연이 있습니다. 종교개혁 성지순례 중 기억해둘만한 도시입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