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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487. 라이프치히 현대 건축

10월 9일에는 라이프치히(Leipzig) 이야기를 꼭 해야 할 것 같아요. 올해에도 어김없이 라이프치히와 관련된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라이프치히 곳곳에 있는 현대 건축을 모아서 소개해드릴게요.


독일은 유별날 정도로 전통을 수호하는지라 큰 도시에도 중세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현대 건축은 상대적으로 자리를 잡기 어렵죠. 그런데 라이프치히는 독일에서 수도 베를린에 버금갈 정도로 현대 건축의 다양한 경향이 나타납니다.

제가 처음 라이프치히를 여행할 때 막 공사가 끝난 건물입니다. 직역하면 시각미술 박물관(Museum der bildenden Künste), 편의상 라이프치히 미술관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곳은 시내 한복판에 있습니다. 주변의 중세 건물보다 더 높고 거대합니다. 이런 건물을 시내 한복판에 새로 만드는 사례를 독일에서 쉽게 찾기 어렵습니다.


라이프치히는 구동독에 속한 곳이었죠. 그래서 전후 복원이 더딘 편이었고 빈 땅도 많았으며, 이미 전통의 복원이 단절된 지역이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현대 건축으로 채워넣어도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만약 뮌헨 같은 곳의 시내 한복판에 이런 건물을 지었으면 난리가 났을 거에요.

아우구스투스 광장에 있는 옛 대학교회 파울리눔(Paulinum)입니다. 유리창이 세로로 복잡한 패턴을 만드는 과감한 디자인이죠.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교회의 모양을 그대로 살리되 현대식 재료를 가지고 완전히 다른 결과물로 복원한 케이스입니다. 말하자면, 전통의 흔적을 남기고 현대적인 것으로 채워넣은 셈이죠.

몇해 전 완공된 회페 암 브륄(Höfe am Brühl) 쇼핑몰도 유사한 철학을 보여줍니다. 겉에서 보기엔 그냥 현대식 쇼핑몰이에요. 그것도 몇 블럭을 혼자 차지하는 초대형 쇼핑몰입니다. 그런데 이 큰 쇼핑몰을 겉에서 보면 마치 여러 구역으로 나뉜 것처럼 설계되어 있는데, 이것은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건물의 번지수대로 영역을 나눠 표현한 것이라 합니다. 그 중 한 구역에는 이렇게 유리창에 옛날 가옥이 프린트 되어 있어요. 여기가 작곡가 바그너의 생가가 있던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미 사라진) 바그너 생가의 당시 모습을 프린트하여 유리에 그려두었습니다. 유리라서 반대편 건물이 반사됩니다. 반사된 건물과 프린트 된 건물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센스가 상당합니다.

공산주의 국가인 구동독의 철칙은, 일부러 교회를 부수지는 않겠지만 파괴된 교회를 복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라이프치히의 교구 교회(Propsteikirche) 역시 파괴되어 사라졌습니다. 통일 후 그 자리에 다시 교회를 복원하였는데, 원래 모습을 싹 지워버리고 현대 건축으로 설계하였습니다. 사진상으로 티가 잘 나지 않지만 십자가가 달린 탑을 꼭지점으로 삼각형 모양으로 생겼어요. 그리고 각 변의 높이가 다르고요. 그 너머에 있는 신 시청사를 가리지 않게 신경 쓴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라이프치히는 이미 전통을 복원하기에는 수십년간 구동독 시절을 지나며 단절된 사례가 많아 과거에 얽메이지 않고 새롭게 창작의 역량을 쏟아부었습니다.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시 외곽에는 과감한 현대건축을 적극 유치하였으며, 대표적인 케이스가 자하 하디드가 만든 BMW 공장입니다.

공장이 꽤 넓은데, 그 중 본관에 해당되는 중앙 건물을 자하 하디드가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스타일대로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기괴한 곡선이 교차하며 아주 특이한 외관을 과시합니다.

뿐만 아니라, 구동독의 대표 도시였던만큼 통일 후 독일의 주요 기관을 라이프치히에 세운 사례가 많은데요. 아무래도 큰 건물을 새로 만들면서 뭔가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고 싶었음인지 미래 지향적인 건축이 많습니다. 마치 두꺼운 책을 덮어둔 것처럼 생긴 독일 국립도서관(Deutsche Nationalbibliothek)도 매우 특이한 사례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라이프치히는 20세기 초부터 도서출판 문화가 크게 발달한 도시였으며, 서독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유명하다면 동독에는 라이프치히 도서전이 유명했습니다. 책에 있어서 "족보 있는" 도시이기에 국립도서관의 분관을 라이프치히에 유치하기로 하였고, 공모를 통해 이런 건축물을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라이프치히는 지금도 빈 땅에 새 건물을 하나씩 채워넣고 있습니다. 이 도시가 지금 쭉쭉 발전하고 있구나, 그냥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도시에요. 독일 통일을 이야기할 때 많은 분들이 "아직도 동독 지역은 경제적으로 잘 살지 못한다" "경제격차와 지역감정이 존재한다"는 말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구동독의 시골 마을은 낙후되고 빈곤한데 라이프치히와 같은 구동독의 주요도시는 완전히 회복되었어요. 구서독 지역과 유의미한 차이는 없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짧지 않은 세월이 필요했죠. 그래도 독일은 하나씩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며 다 같이 잘 사는 길로 가려고 노력합니다. 그 30년의 노력은 우리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직접 가서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소가 참 많아요. 그런 곳들을 모아 인문학강연도 준비했습니다.

이 글을 쓰려고 라이프치히의 현대 건축을 찾아보았는데, 제가 전혀 모르는 대형 쇼핑몰도 하나 있더라고요. 알고보니 막 오픈한 신상입니다. 제가 라이프치히를 여행할 때에는 먼지 날리는 공사장이었던 곳입니다.

페터스보겐(Petersbogen)이라는 쇼핑몰이고요. 좁은 구시가지 내에만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이 몇 개인지 모릅니다. 경제적으로 상당히 번영하고 있구나, 자본이 몰리고 있구나, 너무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사례들입니다.


라이프치히는 독일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경향이 가득합니다. 그것은 분단 시절의 상처로 인한 부득이한 결과였겠으나 그 결과물이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독일은 통일 후 다같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그걸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값진 것 같습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