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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정보/다하우

Dachau | #01.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 KZ-Gedenkstätte Dachau
Dachau | 2012.6.10.
▲정문에 새겨진 "노동이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 KZ-Gedenkstätte Dachau
Dachau | 2012.6.10.
▲정문은 나치 친위대 사무실을 겸하여 만들어졌다.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 KZ-Gedenkstätte Dachau
Dachau | 2012.6.10.

a.k.a. 다카우 강제수용소 기념관 | 다하우를 다카우라고 적어도 되듯 다카우 강제수용소 기념관이라도 적어도 틀린 표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는 두 가지 표기가 혼용된다.


이 곳은 나치가 독일 곳곳(폴란드 등 자신의 치하에 있던 지역을 포함하여)에 세운 강제수용소(Konzentrationslager; KZ) 중 최초로 세워진 곳이다. 탄약 공장이 있던 곳을 개조하여 거대한 광기의 현장을 만들어버렸고, 이후 세워질 강제수용소의 원형이 되었다.


강제수용소만 있던 것이 아니라 나치 친위대의 군사 캠프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군사 캠프의 규모가 수용소보다 더 컸으며, 지금은 군사 캠프 지역은 모두 파괴되고 강제수용소만 남아 당시 폭력의 현장을 고발하고 반성하는 기념관으로 사용 중이다.


그래서 정식 명칭은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KZ-Gedenkstätte Dachau). 당시 나치가 인간으로서 할 수 없을 광기와 야만에 함몰되었음을 각종 사진과 자료를 통하여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독일의 입장에서는 감추고 싶은 과거이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모두에게 공개함으로써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함은 물론 후대가 다시는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의미가 있기도 하다. 똑같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오늘날까지 제대로 반성조차 하지 않는 이웃나라와는 정말 비교되는 것이다.


강제수용소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가이드 투어는 유료). 자신들의 치부를 돈벌이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일 터. 버스에 내리면 인포메이션 센터와 레스토랑, 서점 등이 있는 건물이 있고, 이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면 강제수용소 정문이 나온다. 정문에는 당시 나치가 새겨둔 "노동이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는 문구가 있어 실소를 자아낸다.


이 곳에서 죽은 수감자가 25,000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나치 패망 후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어 풀려난 수감자가 32,000명 이상이라고 하니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감되었다는 말일까? 그들은 처음에는 정치범(나치에 반대하던 지식인이나 지도자 등)부터 시작하여 나중에는 오직 "인종"이라는 한 가지 이유로도 무수한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 KZ-Gedenkstätte Dachau
Dachau | 2012.6.10.
▲전기가 흐르는 철책으로 수감자를 격리한 흔적

요즘 인터넷 댓글을 보다보면 당시 전쟁의 광기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남의 일이라고 해서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게 된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이 곳을 권한다. 뮌헨(München)까지 갈 일이 있다면 이 곳은 시간을 내서 꼭 들러보자. 몇 시간의 관광 후에는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테니.


입장료 : 무료

개장시간 : [확인]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기차역(Bahnhof)에서 724 또는 726번 버스를 타고 강제수용소 기념관 정류장에서 하차 (7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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