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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정보/바이마르

Weimar | etc. 부켄발트 기념관

바이마르 시 외곽에는 부켄발트(Buchenwald)라는 이름의 산이 있다. 나치는 이 곳에 거대한 강제수용소를 짓고 부켄발트 강제수용소(Konzentrationslager Buchenwald)라 불렀다. 25만명 이상이 수감되어 5만명 이상이 수감 중 사망하였다. 나치가 패망하고 소련군에 의해 수용소는 해방되었지만, 소련군은 부켄발트를 1950년까지 자신들의 수용소로 계속 사용하여 3만명에 달하는 포로가 또 수감되는 역사의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바로 이 곳 부켄발트 강제수용소는 지금 부켄발트 기념관(Gedenkstätte Buchenwald)라는 이름으로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 독일 내에서 이와 같은 나치의 수용소 기념관이 다카우(Dachau)에도 있는데, 부켄발트는 다카우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이 곳은 부켄발트라는 산 전체가 기념관인 셈이다. 곳곳에 기념비와 추모비 등이 세워져 있고, 박물관뿐 아니라 강제수용소의 거대한 주요 시설이 다 그대로 남아있다. 또한 울창한 숲은 마치 거대한 공원처럼 고요하고 평온하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 마침 가을의 절정이어서 온 숲이 색색의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냥 자연의 모습 자체가 너무도 아름다운 곳. 그래서 이 곳이 광기의 전시장이라는 것을 잊게 만드는 곳이다.


그래서 부케발트 기념관은 짧게 둘러보기에는 힘들다. 아예 하루종일 산 전체를 트래킹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다카우에 비해서 관광객의 모습은 눈에 많이 띄지 않았다. 가족 단위로 나온 현지인들이 휴식과 산책을 즐기면서, 전쟁을 모르는 자녀들에게 전쟁의 실상을 교육하는 산현장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해보였다.

그만큼의 시간을 들이기 힘든 여행자의 입장에서 부켄발트 기념관에서 나치의 만행이 전시된 박물관 정도만 돌아보는 것이 최선이다. 부켄발트 기념관의 출입문, 그러니까 원래 강제수용소의 출입문이었던 곳에는 "Jedem das Seine"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직역하면 "각각의 것을 자신에게"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각각의 죄값을 치른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 적확하다. 수감자들에게 "죄값을 치르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산등성이의 언덕배기에는 수감자들을 수용하는 천막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철거되고 터만 남았는데, 이 곳의 전망이 너무 좋다. 그야말로 아이러니의 절정. 그리고 수용소 터 옆의 창고 건물은 지금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4층 건물 전체가 박물관으로서, 주제별/시대별로 나치의 만행, 그리고 부켄발트 강제수용소에서의 폭압을 증거하고 있다. 다카우가 사진과 그림, 문서 등의 자료에 더 치중한다면, 부켄발트는 수용소에서의 열악한 생활을 당시의 물건으로서 전시하는 것에 더 치중하는 느낌이다.

비위가 허락한다면 시체 소각장(Krematorium)도 구경해보자. 시체가 산을 이루고, 그 시체들을 가차없이 불태웠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누군가의 추모의 손길이 곳곳에 배어있지만, 당신의 뇌리에는 추모보다는 폭력이 강하게 각인될 것이다.

굳이 다카우와 부켄발트 중 한 곳을 고르라면 필자는 다카우를 선택할 것이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다카우가 부켄발트보다 더 "하드코어"이기 때문. 하지만 다카우를 들르지 않고 바이마르는 들른다면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부켄발트에 방문해보자.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현대사의 가장 잔악한 순간의 간접체험으로서 분명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입장료 : 무료

개장시간 : [확인]


* 찾아가는 법

기차역(Bahnhof) 또는 괴테 광장(Goetheplatz)에서 6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부켄발트(Buchenwald) 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단, 6번 버스는 에터스부르크(Ettersbrug) 방면과 부켄발트 방면으로 종점이 나뉜다. 종점이 부켄발트인지 반드시 확인할 것. 부켄발트 행 버스는 1시간에 한 대 꼴로 드물게 다니므로 시간표도 미리 확인해두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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