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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Köln | #2-07. 엘데 하우스 나치 집권기 중 게슈타포(Gestapo)의 본부로 쓰인 건물이다. 지금은 그 내부를 박물관으로 재단장하여 당시 나치의 폭력과 전쟁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게슈타포는 나치의 비밀경찰로 유대인이나 사상범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고문하고 학살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엘데 하우스(EL-DE-Haus)라는 이름은, 이 건물의 원래 소유주인 레오폴트 다멘(Leopold Dahmen)의 이니셜 LD를 독일어 발음으로 "엘데"라고 읽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멘은 쾰른에서 활동하던 부유한 보석상이었는데, 나치는 그의 건물을 (표면적으로는 임대였으나) 강제로 빼앗아 게슈타포의 본부로 사용하였다. 2차 세계대전 중 공습으로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는 와중에 지하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고, 지하실에 주로 감옥과 고.. 2014. 8. 13. 16:22 | 더보기
Wuppertal | #11. 게마르커 교회 게마르커 교회(Gemarker Kirche)는 1702년 건축된 개신교 교회. 바로 인근의 카톨릭 교회인 성 안토니우스 교회(St.Antonius-Kirche)와 마찬가지로 옛 바르멘(Barmen) 지역에서 산업화로 인해 인구가 팽창함에 따라 기존 교회를 헐고 1890년 70미터 높이의 첨탑을 달고 새로 지어졌다. 1934년 바르멘 선언(Barmer Theologische Erklärung)이 있었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나치가 민중을 지배하기 위해 교회를 이용하려고 성서의 내용까지 왜곡하며 종교에 간섭하던 시절, 개신교의 지도자들이 모여 교회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반대하며 나치에 불복종을 선언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후 독일 교회는 나치의 지배에 동조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으로 분열된다. 이 .. 2013. 9. 5. 22:35 | 더보기
Berchtesgaden | etc. 오버잘츠베르크 기록의 전당 오버잘츠베르크 기록의 전당(Dokumentation Obersalzberg)은 나치와 깊은 연관이 있었던 베르히테스가덴과 켈슈타인 하우스(Kehlsteinhaus) 등 그 주변 지역의 관련 자료를 전시한 박물관이다. 나치 시대의 자료를 접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서 대표적인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원래는 나치 시대에 지어진 벙커였으며, 그래서 박물관이 크지는 않지만 내부를 충실하게 꾸며두고 있다. 또한 입장료가 무료이기 때문에 교육적 가치도 높다. 자녀를 데리고 휴양차 베르히테스가덴을 찾는 독일인도 많은데, 그들이 자녀를 데리고 들어가 교육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켈슈타인 하우스를 올라가려면 이 박물관 앞에서 버스를 타야 하므로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베르히테스가덴의 필수 코스라 할 수 있.. 2013. 8. 25. 22:51 | 더보기
Berchtesgaden | #01. 켈슈타인 하우스 - 엘리베이터 켈슈타인 하우스(Kehlsteinhaus)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Kehlsteinaufzug)를 이용한다. 최근 들어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했던 엘리베이터가 지금도 운행하고 있다. 버스에 내려 입구로 들어가면 동굴같은 통로가 길게 이어지며, 통로 끝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내부는 놋쇠(황동)으로 만들어져 황금색으로 빛나는데, 마치 거울처럼 사면이 다 반사되기 때문에 내부의 분위기가 매우 특이하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는다. 꽤 넓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는만큼 한 번에 다 탈 수 없으니 질서를 지켜 기다렸다가 안내원의 지시대로 탑승하면 된다. 내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팻말이 붙어있는데, 사진을 찍어도 특별히 제지하지는 않았다. 2013. 8. 25. 22:14 | 더보기
Berchtesgaden | #01. 켈슈타인 하우스 켈슈타인 하우스(Kehlsteinhaus)는 해발 1834 미터의 산 위에 지어진 건물. 이 부근의 독일 알프스 봉우리의 이름이 호어 괼(Hoher Göll)이라고 하는데, 또한 켈슈타인(Kehlstein)이라는 이름도 있다. 그래서 켈슈타인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산 위에 이런 건물이 만들어진 이유는 그다지 영예롭지는 않다. 나치 집권기인 1939년,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비서 및 나치의 장관을 지낸 마르틴 보어만(Martin Bormann)이 히틀러의 50세 생일을 축하하며 그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만든 별장이라고 한다. 건물에 설치된 대리석 벽난로는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가 선물로 보내줬다고. 당시의 이름은 아들러호르스트(Adlerhorst), "독수리의 둥지"라는 뜻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켈슈.. 2013. 8. 25. 21:49 | 더보기
München | #2-05. (2)용장기념관 오데온 광장(Odeonplatz) 한가운데에 있는 신전처럼 생긴 건물은 용장기념관(Feldherrnhalle; 독일어 발음 그대로 펠트헤른할레라고도 부른다)이다. 이 곳은 나치의 유적. 뮌헨은 히틀러와 인연이 깊은 도시이다. 히틀러는 뮌헨에서 그 유명한 "뮌헨 폭동"(맥주홀 폭동 또는 뮌헨 봉기라고도 부른다)을 일으켰다. 히틀러가 본격적으로 권력에 야욕을 드러내며 일으킨 쿠데타였지만 이는 실패로 끝나고 히틀러는 체포당한다. 훗날 권력을 잡은 히틀러는 뮌헨에서의 일을 추억하며 당시 쿠데타에 가담했다가 죽은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이 기념관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는 뮌헨에 들를 때마다 이 곳에 들러 헌화를 하였다고 하고, 그래서 항상 나치 친위대가 이 건물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뮌헨 시민들은 이 앞을 지나갈.. 2013. 7. 26. 14:29 | 더보기
München | #1-02. 뷔르거잘 교회 뷔르거잘(Bürgersaal)은 독일어로 "시민회관" 정도의 의미. 실제로 뮌헨에서 시민들의 집회를 위한 회관으로 지은 건물이 맞다. 외관 상으로도 교회로 보이지 않고 이름도 시민회관인데, 지금 뷔르거잘 교회(Bürgersaal Kirche)로 불리는 이유는, 이 곳에 시민회관을 지을 때 마리아 수녀회(Marianische Männerkongregation)의 기금으로 건축되어 종교적 목적도 포함되었기 떄문이다. 내부는 교회라기보다는 박물관에 가깝다. 내부의 벽을 둘러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담은 정교한 조각들이 있고, 교회 안쪽으로 들어가면 뮌헨에서 활동했던 마리아 수녀회의 신부 루퍼트 마이어(Rupert Mayer)에 대한 자료와 그의 소장품 등을 전시한 박물관이 있다. 루퍼트 마이어는 나치에 저항.. 2013. 7. 26. 14:12 | 더보기
Nürnberg | etc. 뉘른베르크 재판 기념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영국,프랑스,소련 4개국은 나치의 전범 20여명을 체포하여 1945년 11월부터 약 1년 동안 재판정에 세웠다. 그 외에도 연합국 또는 새로운 독일 정부에 의해 처벌받은 나치 전범이 수없이 많지만, 1945년부터 재판을 통해 처벌한 20여명은 나치의 핵심 지도자들이었기에 이 전범 재판은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재판은 뉘른베르크에 있는 법원(Justizpalast)에서 진행되었다. 그래서 이 재판을 뉘른베르크 재판(Nürnberger Prozesse)이라고 부르며, 나치의 수도나 마찬가지인 뉘른베르크에서 재판이 열려 주요 전범이 처벌된 것도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당시 전범 재판이 진행된 법원은 오늘날에도 법원으로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법원 내에 당시의 재판에 대한 기록을.. 2013. 7. 20. 17:01 | 더보기
Leipzig | #16. 라이프치히 전투 기념비 라이프치히 외곽에는 거대한 돌의 탑이 있다. 1813년 라이프치히에서 있었던 이른바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게 위한 전승탑이다. 라이프치히 전투 기념비(Völkerschlacht Denkmal). - 라이프치히 전투 자세히 보기 라이프치히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전쟁 중 가장 규모가 큰 전투로 꼽힌다. 그만큼 엄청난 사상자가 나왔고, 그것은 승자인 프로이센 연합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의 승리를 기념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전투 100주년인 1913년 이 곳에 기념비가 세워진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 곳은 히틀러가 사랑했던 장소 중 한 곳이다. 게르만군(물론 연합군이었으나)이 외세를 물리치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이 몹시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 2013. 7. 14. 22:27 | 더보기
Oranienburg | #02. 오라니엔부르크 궁전 오라니엔부르크 궁전(Schloss Oranienburg)은 도시의 시작과 마찬가지인 곳. 브란덴부르크 공국의 대공 프리드리히 빌헬름(Friedrich Wilhelm)이 오라니에-나사우 공국 출신의 아내를 맞이하면서, 1652년에 대공비에게 선물로 준 궁전이다. 그래서 대공비 출신 가문의 이름을 따서 오라니엔부르크 궁전이 되었고, 도시 이름도 그 때부터 오라니엔부르크로 부르게 되었다. 그 전까지 오라니엔부르크는 뵈초브(Bötzow)라는 이름의 작은 도시였는데, 사실 궁전이 생기기 전인 1288년부터 같은 자리에 궁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30년 전쟁을 치르면서 궁전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그 자리에 새로운 궁전을 지어 아내에게 선물로 주게 된 것이다. 새로 지은 궁전은.. 2013. 7. 13. 17:10 | 더보기
Oranienburg | #01.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 생체실험실 다카우(Dachau)에서 본 가스실만큼이나 기분 불쾌하게 만드는 공간이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KZ Sachsenhausen)에도 있다. 건물의 이름은 Pathologie mit Leichenkeller, 직역하면 "영안실이 있는 병리학 연구소" 정도가 될텐데, 쉽게 말하면 생체 실험실이다.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의 책임자였던 나치 친위대의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는 우월한 인종을 만들기 위해 인종간 교배 실험을 주도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닌 인물이었다. 그래서일까, 수용소에서 무수히 죽어나가는 수감자들의 시체를 가지고 병리학 실험을 했던 장소가 수용소 내에 있다. 시체는 지하 영안실에 안치해놓고, 필요하면 1층으로 가져와서 실험을 했다. 1층에는 딱 사람 한 명 누울 정도의 실험대가 여.. 2013. 7. 12. 21:03 | 더보기
Oranienburg | #01.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 추모비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KZ Sachsenhausen)는 전체 구역이 삼각형꼴로 생겼다. 그 삼각형의 꼭지점에 해당되는 곳에 오늘날에 추모비가 서 있다. Mahnmal der Nationalen Mahn- und Gedenkstätte, 40 미터 높이의 추모비 꼭대기에는 18개의 붉은 삼각형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피해자들의 국가 숫자와 같다고 한다. 추모비가 세워진 정반대편이 수용소의 입구. 그러니까 입구로 들어가면 멀리 정면에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 중간에도 두 채의 막사 건물이 있는데, 각각 부엌과 세탁실로 사용된 건물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도 각각 전시장으로 사용 중인데, 비정기적으로 테마를 정해 전시회를 열고 있다. 2013. 7. 12. 21:02 | 더보기
Oranienburg | #01.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 막사와 감옥 과거 수용소에는 수감자들이 생활하는 막사가 가득했지만 지금은 단 두 개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철거했다. 철거된 자리는 따로 표시를 남겨둠으로써 당시의 참상을 잊지는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가장 구석진 곳에 남은 두 개의 막사는, 당시의 참혹한 생활상에 대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부 공간은 내부를 비워둔 뒤 시청각 자료를 볼 수 있는 설비를 설치하여 방문객들에게 방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일부 공간은 당시의 화장실이나 샤워실 또는 침실 등을 그대로 보존하여 눈살이 찌푸러지는 순간을 선사한다. 그리고 두 개의 막사 중 하나는 특별히 유태인의 고통에 대한 자료를 집중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사진으로는 담지 못했지만, 3층침대가 가득 놓인 침실의 바로 앞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공간이 있는데, .. 2013. 7. 12. 21:01 | 더보기
Oranienburg | #01.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 신 박물관 정문으로 들어가기 전 우측에 있는 건물은 신 박물관(Neues Museum)이라 부른다. 원래 1961년에 이 자리에 박물관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새로 고쳐 지으면서 신 박물관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이 곳은 1933년 오라니엔부르크의 버려진 폐양조장이 있던 곳으로, 나치가 그 자리에 강제수용소를 처음 만들기 시작한 곳이다. 물론 옛 건물은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현대식 건물로 새로 지었으며, 내부의 박물관은 크지 않지만 수용소가 건설될 당시의 자료들을 집중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단, 내부 사진 촬영 불가. 신 박물관 건물 내에는 카페도 영업 중이다. 2013. 7. 12. 21:00 | 더보기
Oranienburg | #01.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나치의 강제수용소 중 오늘날까지 독일에 남아있는 곳은 총 세 곳. 뮌헨(München) 근교의 다카우(Dachau), 바이마르(Weimar) 근교의 부켄발트(Buchenwald), 그리고 오라니엔부르크에 있는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KZ Sachsenhausen)이다.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는 1936년 나치가 만들었으며, 수도 베를린(Berlin)에서 전철 S-bahn으로 죄수들을 호송할 수 있는 오라니엔부르크에 터를 잡았다. 오라니엔부르크 외곽의 지역 이름이 작센하우젠이었기 때문에 수용소 이름도 지역명을 땄다. 나치가 패망한 1945년까지 계속 정치범 수용소로 사용되었고, 그 기간동안 20만 명 정도가 수감되었으며 그 중 절반이 병과 영양실조, 고문 등으로 사망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나치 패망 후 소련.. 2013. 7. 12. 20:59 | 더보기
Berlin | etc. 유대인 박물관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지구에 위치한 유대인 박물관(Jüdisches Museum)은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박물관. 원래 같은 자리에 유대인들의 박물관이 있었는데 1938년 나치에 의해 강제로 폐쇄되었다고 한다. 동서 분단 시절 구 동독에서 같은 자리에 유대인 박물관을 복구하였고, 통일 후 새로운 디자인 공모를 거쳐 2001년 오늘날의 모습의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특히 지그재그 모양의 건물이 인상적인데, 이것은 유대인의 상징인 "다윗의 별"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새 건물이 지어진 이 자리에는 베를린 장벽이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평화의 상징이 된다. 내부는 독일에서의 유대인의 역사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있다. 그리고 구관과 신관을 연결하는 지하 통로는 유대인이 겪은 .. 2013. 7. 10. 17:27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