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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Berlin | #2-07. (4)훔볼트 대학교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에 자리잡은 학교.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Friedrich Wilhelm III)에 의해 1810년 만들어진 근대 대학이다. 대학 설립을 제안한 사람이 당시 교육장관으로 재임 중이던 유명한 석학 카를 훔볼트(Karl Humboldt). 원래 이름은 베를린 대학교(Universität Berlin)였으나 1949년 동독 정부가 설립자인 훔볼트의 이름을 따서 훔볼트 대학교(Humboldt-Universität)로 이름을 바꾸었다.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동상도 당연히 훔볼트의 동상이다. 본관 건물의 길 건너편에 있는 커다란 건물 역시 훔볼트 대학교에 속한 건물이고, 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다. 나치 집권 당시 바로 이 건물 앞 광장에서 분서(焚書) 사건이.. 2013. 7. 10. 17:12 | 더보기
Berlin | #1-10. (3)독일 돔 프랑스 돔(Französische Dom) 맞은편의 건물은 독일 돔(Deutscher Dom). 마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꼭 쌍둥이 교회처럼 보인다. 하지만 완전히 똑같이 생긴 건물은 아니고, 다만 프랑스 돔과 마주하고 있는 부분, 그리고 돔의 모양은 거의 흡사하다. 독일 돔은 프랑스 돔보다 늦게 만들어졌다.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며, 처음에는 신 교회(Neue Kirche)라고 불리다가 나중에 독일 교회(Deutsche Kirche)로 이름이 바뀌었고, 훗날 프랑스 돔과 함께 이 곳에도 돔이 추가되면서 독일 돔으로 불리고 있다.오늘날 독일 돔은 교회로서의 기능은 하지 않는다. 대신 이 곳은 의미있는 박물관으로 리모델링 되었다. 바로 독일 민주주의에 대한.. 2013. 7. 10. 17:05 | 더보기
Berlin | #1-08.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베를린에 가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이런 생각을 한다. 베를린 장벽을 볼 수 있는 곳이 없을까? 물론 있다. 그 중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이스트 사이트 갤러리(East Side Gallery)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보다도 이 곳을 추천한다. 이름도 어려운,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Topographies des Terrors)이다.이 곳에는 장벽이 무너지던 날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낙서도 되어 있고,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어떤 부분은 허물어져서 철근이 튀어나오기도 한, 가공되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 베를린 장벽을 보고 있자면, 생각보다 참 앙상하고 약해 보인다. 과연 이것이 냉전의 상징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엄연히 이것이 베를린 장벽이고, 이런 앙.. 2013. 7. 10. 17:04 | 더보기
Berlin | #1-07. 독일 저항 추모관 나치 집권 당시 모든 독일인이 나치를 추종한 것은 아니다.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저항운동을 했던 이들도 많다. 독일 저항 추모관(Gedenkstätte Deutscher Widerstand)은 그러한 저항운동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공간이다.추모관이 세워진 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육군 예비군 사령부가 있던 자리. 당시 독일 육군 내에는 히틀러에 반대하는 장교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 중 일부가 1944년 7월 20일, 이 자리에서 폭탄을 터트려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다. 그 유명한 발키리 작전(Operation Walküre). * 발키리 작전 자세히 보기 작전은 실패했고 암살의 주동자는 모두 숙청되었다. 숙청된 장교 중 한 명이었던 프리드리히 올브리히트(Friedrich Olbricht)의 미망인.. 2013. 7. 10. 17:04 | 더보기
Berlin | #1-04. 홀로코스트 추모비 홀로코스트 추모비(Holocaust Mahnmal)는 독일이 가장 부끄러워하는 치부에 대한 반성이다. 나치 집권 중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것. 네모 반듯한, 그러나 저마다 크기와 높이가 다른 돌을 마치 비석처럼 세워두어 흡사 공동묘지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이 곳이 실제 무덤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도 돌 위에 걸터앉아 쉬기도 하고, 청소년들은 돌 위를 뛰어다니며 놀기도 한다. 추모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다소 부적절해보이는 모습들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 곳은 그렇게 베를린의 삶 속에서 하나의 일부가 되어있다. * 그런데 이런 현지인의 모습들 중 규칙에 어긋나는 것들도 존재한다. 걸터앉는 것은 가능하지만 뛰어다니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그 외에도 담배를 피거나 자전거.. 2013. 7. 10. 17:03 | 더보기
Quedlinburg | #07. 슈티프트 교회 (a.k.a. 협동교회) a.k.a. 협동교회 | 국내에서는 협동교회 또는 세르바티우스 협동교회라는 표기를 많이 사용한다. 여기서는 독일어 발음을 살려 슈티프트 교회로 통칭한다. 참고로, Servatius는 독일어 발음으로 "세르바티우스"보다 "제어바찌우스"에 가깝다. 크베들린부르크 성(Schloss Quedlinburg)과 나란히 슐로스베르크(Schloßberg)에 자리잡은 슈티프트 교회(Stiftskirche St.Servatius)는 1129년 건축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이다. 같은 자리에는 하인리히 1세(Heinrich I)가 세운 수녀원 건물이 있었다. 하인리히 1세가 사망한 뒤 그의 아내가 이 곳에 남아 수녀원을 이끌었고, 수녀원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부터 주조권(직접 화폐를 만들 수 있는 권리)을 허락받아 제국 내에.. 2013. 1. 24. 22:56 | 더보기
Bremerhaven | #07. (2)빌헬름 바우어 잠수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잠수함인 유보트(U-Boat)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친숙하다. 브레머하펜의 항구 박물관(Museum Hafen)에는 바로 그 유보트까지도 정박해 있다. 잠수함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빌헬름 바우어 잠수함(U-Boat Wilhelm Bauer)이라고 부르며, 전쟁 후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XXI급 잠수함이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건조되어 실제 전쟁 임무를 수행한 적은 없다 하며, 발틱 해에서 1957년 인양되어 보수를 거쳐 1984년부터 기술 박물관(Technikmuseum)으로 개조하여 일반에 공개되었다. 좁은 실내를 빼곡하게 활용하여 잠수함과 관련된 기술이나 잠수함의 공격 방법 등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입장료 : 성인 3 유로, 학생 2 유로 개장시간 : (3.. 2013. 1. 18. 11:01 | 더보기
Marburg | #03. (2)구 대학교 대학도시 마르부르크의 유서 깊은 필리프 대학교(Philipps-Universität)의 옛 건물은 구 대학교(Alte Universität)라는 이름으로 보존되어 있다. 두 개의 건물, 그리고 대학 교회(Universitätskirche)가 연결된 구조로 되어 있으며, 마치 궁전을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구 대학교 건물은 "마르부르크 연설" 사건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1932년 히틀러에 의해 부총리로 임명된 프란츠 폰 파펜(Franz von Pappen)이 1934년 과격 나치당원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던 것. 이로 인해 파펜은 과격 나치당원들에게 무수한 살해 위협을 받았으나 당시 대통령인 힌덴부르크, 그리고 실질적인 권력자 히틀러 모두에게 총애를 받고 있어 화를 피했다고 한다. 2013. 1. 16. 16:31 | 더보기
Osnabrück | #07. 오스나브뤼크 궁전 오스나브뤼크 궁전(Schloss Osnabrück)은 그냥 궁전(Schloss)으로 더 흔하게 통용된다. 건물은 소박하게 생겼고, 주변의 조그마한 궁정 정원(Schlossgarten)과 넓은 공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 앞은 항상 젊은이들로 가득한데, 바로 이 곳이 1974년부터 오스나브뤼크 대학교(Universität Osnabrück)로 사용 중이기 때문이다. 1675년 영주의 거처로 지어졌는데, 당시 구 시가지의 바깥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영주가 하노버(Hannover)로 거처를 옮기게 됨에 따라 성은 텅 비게 되었다. 1803년이 되어서야 관공서로 리모델링 되었고, 2차 세계대전 동안은 나치 치하의 게슈타포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당시의 감옥은 오늘날에도 일부 보존되어 일반에 개방 중이다... 2012. 12. 17. 23:18 | 더보기
Bonn | #15. 독일 역사 박물관 독일의 굴곡 진 현대사를 알기 위해서 반드시 찾아가야 할 코스가 본에 있다. 무제움마일레(Museumsmeile)에 자리잡은 독일 역사 박물관(Haus der Geschichte; 직역하면 "역사의 집"이라는 뜻)이 그 곳이다. 베를린(Berlin)의 눈물의 궁전(Tränenpalast), 라이프치히(Leipzig)의 독일 역사 박물관(Zeitgeschichtlisches Forum)과 같은 재단에서 운영한다. 이 곳은 독일의 현대사를 집대성한 공간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시작으로, 나치가 집권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에 패배한 뒤 동서로 분단되고, 동독과 서독의 자존심 싸움을 벌이며 각자 독자생존의 길을 찾고 산업 발전에 노력하다가, 결국 통일에 이르게 되고, 통일 후 사회 부작용을 극복하고 발전하면.. 2012. 12. 16. 22:55 | 더보기
Weimar | etc. 부켄발트 기념관 바이마르 시 외곽에는 부켄발트(Buchenwald)라는 이름의 산이 있다. 나치는 이 곳에 거대한 강제수용소를 짓고 부켄발트 강제수용소(Konzentrationslager Buchenwald)라 불렀다. 25만명 이상이 수감되어 5만명 이상이 수감 중 사망하였다. 나치가 패망하고 소련군에 의해 수용소는 해방되었지만, 소련군은 부켄발트를 1950년까지 자신들의 수용소로 계속 사용하여 3만명에 달하는 포로가 또 수감되는 역사의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바로 이 곳 부켄발트 강제수용소는 지금 부켄발트 기념관(Gedenkstätte Buchenwald)라는 이름으로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 독일 내에서 이와 같은 나치의 수용소 기념관이 다카우(Dachau)에도 있는데, 부켄발트는 다카우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이 .. 2012. 12. 8. 23:38 | 더보기
Weimar | #09. (3)엘리펀트 호텔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에 위치한 엘리펀트 호텔(Hotel Elephant). 바이마르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호텔로 꼽힌다. 1696년 처음 지어졌으며, 그래서 역사적으로 많은 유명인들이 이 호텔을 거쳐갔다. 바이마르에 머물던 괴테(Goethe), 실러(Schiller), 헤르더(Herder), 리스츠(Liszt) 등이 이 곳에서 수시로 만나 교제를 나누며 바이마르 고전주의의 자양분을 쌓아나갔다고. 역사가 깊다보니 불명예도 피할 수 없었다. 히틀러(Hitler) 역시 이 곳의 단골 투숙객이었다. 그는 바이마르에 올 때마다 항상 이 곳에 머물며 마르크트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연설을 했다. 결국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호텔은 문을 닫았다가 1955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입구 위 2층 발코니도 항상.. 2012. 12. 7. 21:52 | 더보기
Weimar | #05. 마르슈탈 마르슈탈(Marstall)은 왕실 마구간이라는 뜻. 단순히 말을 묶어두고 관리하는 곳이 아니라 승마학교의 기능을 겸하거나 훗날 현대 문물이 도입된 후에는 왕실의 마차나 자동차 등을 관리하는 기능까지 담당하던 곳이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마구간이라고 했을 때 연상하는 비주얼이 아니라, 누가 설명하지 않으면 궁전이나 별궁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일반적. 신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바이마르의 마르슈탈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립 궁전(Stadtschloss)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어떻게 보면 시립 궁전보다도 더 궁전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나치 집권 당시 약 7년 동안 게슈타포(Gestapo)의 감옥으로 사용된 역사도 가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튀링엔(Thüringen) 주의 전시장 역할을 하고.. 2012. 12. 7. 09:59 | 더보기
Heidelberg | etc. 하일리겐 산 원형극장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까지 오를 수고를 결심했다면 또 하나 고려해볼만한 장소가 있다. 하일리겐 산(Heiligenberg)을 더 올라가 산 정상 부근에 숨겨져 있는 원형극장(Thingstätte Amphitheater)을 찾아가는 것이다. 당연히 더 많은 등산을 요구하므로 시간과 체력이 소모되니, 이 곳까지 방문할 경우 아마 하이델베르크에서 최소 1박은 필요할 것이다. 산 속에 숨겨진 채 폐허가 비교적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이 원형극장은 바로 나치의 유적이다. 나치에서 전쟁 전부터 독일 곳곳에 이러한 원형극장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제국을 꿈꾸던 나치가 로마 제국의 유적을 본따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국민들을 통솔하려 한 흔적의 일부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 곳은 오늘날 시민들.. 2012. 11. 13. 10:44 | 더보기
Dachau | Tip. 다하우 강제수용소 지도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뒤 인포메이션 건물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면 우측으로 정문이 보인다. 정문으로 들어온 다음부터는 박물관 → 벙커 → 막사 → 추모관 → 카르멜 수녀원 → 소각장 순으로 돌아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혹시라도 관광 시간이 부족하여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기 어렵다면, 박물관 → 막사 → 소각장 순으로 둘러보자. 돌아갈 때는 다시 정문으로 나가서 왔던 길을 되돌아 버스 정류장으로 가면 된다. 식사 시간에 겹친다면 인포메이션 건물 내에 레스토랑이 있으며, 가격은 시중 레스토랑에 비해 비싸지 않다. 또한 인포메이션 건물 내에 있는 서점에서는 다하우 강제수용소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의 전문서적을 비롯하여 전쟁과 나치에 관련된 여러 책을 판매하고 있다. 2012. 9. 8. 14:08 | 더보기
Dachau | #01. 다하우 강제수용소 - 소각장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 KZ-Gedenkstätte Dachau Dachau | 2012.6.10.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 KZ-Gedenkstätte Dachau Dachau | 2012.6.10. ▲홀로코스트의 현장인 가스실 내부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 KZ-Gedenkstätte Dachau Dachau | 2012.6.10. ▲시체를 태울 목적으로 만든 소각로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념관 KZ-Gedenkstätte Dachau Dachau | 2012.6.10. ▲소각로 앞에 시체가 산을 이룬 사진 무수히 죽어나가는 수감자들을 나치가 곱게 묻어주었을리는 없다. 하루에도 쉴새없이 실려나오는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나치는 수용소 한 쪽 구석에 소각장을 만들었다. 소각장 구역(Krematoriums.. 2012. 9. 8. 13:33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