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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텐베르크

#482. 하노버 방언이 표준 독일어가 된 이유 고대 로마제국이 유럽으로 진출하면서 라인강 서쪽, 도나우강 남쪽까지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라인강 도나우강 건너편은 "춥고 척박한 땅"이라며 정벌하지 않고 그곳에 사는 민족을 "게르만족"이라고 지칭하였습니다. 사실 게르만족은 단일민족이 아닙니다. 여러 부족이 다들 자기 영역을 가지고 있었고, 저마다의 언어도 달랐어요. 하지만 로마인이 듣기에는 어차피 다 미개한 민족이 쓰는 거기서 거기인 언어라 생각했기에 이들의 언어를 하나로 지칭하면서, 이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게르만족으로 통칭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인이 게르만족을 멸시(?)하면서 하나의 언어로 지칭한 그 이름이 바로 도이치(Deutsch)의 어원입니다. 독일어죠. 훗날 1871년 독일제국이 출범할 때 수백년간 각각 다른 국가와 문화를 가지고 살던 이.. 2020. 9. 18. 09:00 | 더보기
#425. 종교개혁 500주년 이후 비텐베르크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정말 엄청나게 성대한 행사가 열렸고, 이 행사를 위해 각지의 순례지가 새단장을 마쳤습니다. 종교개혁이 촉발된 도시인 비텐베르크(Lutherstadt Wittenberg)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종교개혁 500주년 성지순례 가이드북 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관련 여행지를 취재하고 다닐 때 비텐베르크는 아직 미완성이었습니다. 아직 공사 현장도 눈에 띄었고 정비가 덜 된 모습이었죠.작년 이맘때 "비텐베르크를 다시 방문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해보겠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 기념일인 10월 31일 비텐베르크를 방문했습니다. 딱 1년이 지난 지금, 그 때 스케치한 모습들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비텐베르크에서 기차를 내리면서부터 변화를 마주.. 2019. 10. 31. 08:30 | 더보기
#339. 루터의 결혼식 in 비텐베르크 종교개혁의 성지 비텐베르크(Lutherstadt Wittenberg)에서 매년 열리는 루터의 결혼식(Luthers Hochzeit)이라는 축제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비텐베르크는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성직자 겸 교수로 일하다가 을 붙여 종교개혁을 촉발한 도시입니다. 루터는 계속 비텐베르크에 살았습니다(도망다닐 때를 제외하면). 그리고 여기서 결혼식도 올립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가톨릭 사제의 결혼은 금기시되었습니다. 교회법으로 결혼을 금지하는 건 아니지만 교황청에서는 사제의 독신 생활을 장려하였고, 교황청이 가진 권위와 영향력을 고려하면 이것은 사실상 반강제적인 명령에 다름 아니죠. 가톨릭에서 사제의 결혼을 금기시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 2019. 5. 13. 08:30 | 더보기
두.유.Travel to Germany :: #193. 세상을 바꾼 성지의 어제와 오늘 10월 31일은 종교개혁 기념일입니다. 왜 이 날짜가 기념일이 되었는고 하니, 이 날이 종교개혁의 상징적인 행위가 발생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Lutherstadt Wittenberg)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설교하던 한 성직자가 자신이 일하는 교회 출입문에 "대자보"를 붙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교황청을 상대로 말이죠. 당시 교황청에서는 면죄부(면벌부) 판매 등 비성서적인 부패와 타락이 극에 달한 시기입니다. 이 성직자가 보기에 교황청의 행동은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났습니다. 그래서 함께 토론을 해보자며 발제문을 붙인 겁니다.세상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오늘날처럼 SNS에 인증하며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세상이 아니었지만, 이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교황청의 타락.. 2018. 10. 31. 08:00 | 더보기
2017년 10월 배경화면 (1920*1080)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 그래서 2017년의 배경화면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및 종교개혁과 연관된 중요한 성지(聖地)로 선정하려고 한다. 10월 배경화면은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성지, 바로 마르틴 루터가 을 붙여 종교개혁이 시작된 비텐베르크(Lutherstadt Wittenberg)의 사진이다. 마르틴 루터의 동상이 있는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골랐다. 10월 31일이 종교개혁 기념일. 바로 500년 전 10월에 전 유럽의 권력구조를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이 바로 이 도시에서 일어났다. 관련 포스팅 : Wittenberg | #03. (1)마르크트 광장 ※ 다운로드 주의사항- 사진에 마우스 오른쪽 버튼 클릭 후 "다른 이름으로 저장.. 2017. 10. 1. 00:00 | 더보기
종교개혁 500주년 (1) 독일관광청이 정한 2017년 독일여행 테마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1517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을 내걸어 촉발된 종교개혁의 500주년을 기념하며 독일 전국, 특히 마르틴 루터와 인연이 있는 도시에서 큰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종교개혁이라고 해서 특정 종교의 역사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소수의 권력자가 가진 권력을 다수의 민중에게 이양하고 기득권을 타파한 역사적인 사건이었기에 이후 르네상스 운동의 전파에 밑거름이 되었다. 즉, 유럽의 질서, 나아가 세계의 질서를 다시 짜게 된 역사적인 순간이 바로 종교개혁인 것이다. 독일이 기독교적 문화가 많은 나라임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도 특정 종교의 행사를 국가 전체의 1년 관광 테마로 설정하여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행사를 치르기는 힘들다. 종.. 2016. 12. 31. 20:39 | 더보기
Wittenberg | etc. 루터-멜란히톤 김나지움 비텐베르크에는 그들이 자랑하는 두 명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와 필리프 멜란히톤(Phillip Melanchthon)의 이름을 딴 김나지움이 각각 있었는데, 이 두 곳의 김나지움이 2006년에 하나로 통합되면서 루터-멜란히톤 김나지움(Luther-Melanchthon Gymnasium)이 되었다. 김나지움은 우리로 따지면 중학교에 해당하는 곳. 그냥 학교에 불과한 곳이 관광지로 꼽히는 이유는, 이 곳을 유명한 건축가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가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의 건축을 남긴 그가, 이 소도시까지 와서 학교를 만들었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신 시가지에 위치하고 있어 비텐베르크 관.. 2012. 12. 24. 22:56 | 더보기
Wittenberg | #07. 루터의 나무 95개조 반박문이 내걸린 3년 후인 1520년, 결국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파면 당하게 된다. 이에 격분한 루터는 자신이 머물던 곳, 그러니까 지금의 루터 하우스(Lutherhaus)에서 멀지 않은 공터에서 교황의 파면 교서와 로마 교회 법전을 불태웠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비록 마르틴 루터가 교황청에 반하는 의견을 내어 종교개혁을 촉발하기는 했지만 교황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다만, 교황이 성서의 교리를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하여 시정을 촉구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의도였다. 하지만 끝내 교황청이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루터를 파면하자 루터의 마음도 완전히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당시 "화형식"이 있던 자리에는 이를 기념하는 나무가 심겼는데, 이.. 2012. 12. 24. 22:49 | 더보기
Wittenberg | #06. 루터 하우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비텐베르크에 머물 때 거주했던 집은 현재 루터 하우스(Lutherhaus)라는 이름의 박물관이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 관련 유적 중 한 곳. 루터 하우스에 가면 마치 궁전처럼 거대한 건물에 일단 놀라게 된다. 마르틴 루터가 이렇게 부유한 사람이었을까? 물론 아니다. 원래 이 건물은 수도원 건물이었고, 마르틴 루터는 이 곳의 수도사로서 건물 일부에 거주하고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수도원이 문을 닫자 건물은 비텐베르크 대학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되었고, 루터는 그들을 가르치고 어울리며 이 건물에서 계속 지냈다고 한다. 지금도 루터가 살던 공간은 그 시절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루터의 유품과 그의 일생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된 .. 2012. 12. 24. 22:31 | 더보기
Wittenberg | #05. 멜란히톤 하우스 비텐베르크의 유명한 종교개혁자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뿐이 아니다. 95개조 반박문이 붙었던 이듬해인 1518년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로 부임하였다가 루터와 인연을 맺고 그와 평생을 함께 한 종교개혁의 동지 필리프 멜란히톤(Phillip Melanchthon) 역시 마르틴 루터만큼이나 유명하다. 특히 멜란히톤은 종교개혁의 이론을 완성한 이로 꼽힌다. 루터가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깨우고 이를 설파하였다면, 프로테스탄트의 교리를 정리하고 이를 집대성한 이는 멜란히톤이었다. 두 사람은 평생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로서 뜻을 함께 하였으며, 루터는 여러 도시를 떠돌았으나 멜란히톤은 비텐베르크에 계속 머물며 이 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비텐베르크 구 시가지에서 위치한 멜란히톤 하우스(Melanchthon.. 2012. 12. 24. 22:15 | 더보기
Wittenberg | #04. 시립 교회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에서 건물들 뒤편으로 높은 탑이 솟아있는 시립 교회(Stadtkirche St.Marien)는 비텐베르크에서 가장 오래 된 교회이며, 도시의 중심이 된 교회이다. 슐로스 교회(Schlosskirche)가 95개조 반박문으로 이름이 알려져 비텐베르크를 대표하는 교회가 되었지만,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시립 교회에서 결혼을 했고 자녀들까지 세례를 받았으며 이후 주기적으로 설교를 했던 교회이기도 하다. 내부에서는 교회 전면의 제단이 눈에 띈다. 화려한 장식은 없으나 제단에 그려진 성화가 일품. 이 성화를 그린 이가 루카스 크라나하(Lucas Cranach)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 관련 유적에 포함되어 있다. 입장료 및 개장.. 2012. 12. 24. 22:04 | 더보기
Wittenberg | #03. (3)크라나하 하우스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에서 시청사(Rathaus) 맞은편에는 중세의 주택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이 중 유독 붉은 색으로 눈에 잘 띄는 건물이 크라나하 하우스(Cranach-Haus), 독일의 유명한 르네상스 화가이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절친한 친구로서 루터의 유명한 초상화를 그려준 주인공이며, 몇 년 동안 비텐베르크의 시장까지 역임했던 루카스 크리나하(Lucas Cranach)가 살던 집이다. 내부는 크라나흐의 작품이나 소품 등을 전시 중인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개장시간 : 월~토 10:00~17:00, 일 13:00~17:00 (단, 11~4월은 월요일 휴관) 2012. 12. 24. 21:50 | 더보기
Wittenberg | #03. (2)시청사 르네상스 양식의 시청사(Rathaus)는 1540년 완공되었다. 대칭형으로 생긴 네 개의 박공과 그 중앙의 화려한 르네상스식 입구 및 발코니가 인상적이다. 시청사 정면에는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 중앙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원래 같은 자리에 시청사가 있었으나 종교개혁 발생 후 비텐베르크가 개신교의 중심지로서 신교도의 유입이 급속히 늘고, 이에 따라 더 큰 시청사가 필요해짐에 따라 새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후 시의회 또는 군사 병원 등으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내부도 많이 바뀌었다가 1928년 다시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리모델링 되었다. 오늘날에는 신 시가지로 시청이 이주하여, 현재 이 곳은 시의회 회의장과 웨딩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2. 12. 24. 21:32 | 더보기
Wittenberg | #03. (1)마르크트 광장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은 구 시가지의 중심. 시가지의 규모에 비해 광장이 큰 편이다. 광장의 사면은 모두 옛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중 광장의 정면에 위치한 건물이 시청사(Rathaus), 그리고 광장 중앙에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동상, 그 옆에는 필리프 멜란히톤(Phillip Melanchthon)의 동상도 자리잡고 있다. 사면을 둘러싼 건물들이 크기와 색상은 제각각이지만 조화를 훌륭해 이루고 있으며, 건물들 뒤로 높은 첨탑이 솟아있는 시립 교회(Stadtkirche)까지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슐로스 거리(Schlossstraße)의 끝이 마르크트 광장으로 연결된다. 크게 보기 2012. 12. 24. 21:23 | 더보기
Wittenberg | #02. 슐로스 거리 슐로스 교회(Schlosskirche)부터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까지의 거리가 슐로스 거리(Schlossstraße)이다. 비텐베르크에서 역사적인 건물들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손꼽힌다. 특히 일부 건물의 입구에는 해당 건물에 살았던 유명인과 연도가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비텐베르크의 가장 중심가나 마찬가지이기에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 편의시설도 줄지어 있고, 거리를 따라 작은 수로도 나 있어 물줄기 소리도 경쾌하다. 거리의 분위기가 매우 활기에 넘친다.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슐로스 교회 앞 슐로스 광장(Schlossplatz)부터 거리가 시작된다. 크게 보기 2012. 12. 24. 21:14 | 더보기
Wittenberg | #01. 슐로스 교회 (a.k.a. 성 교회) a.k.a. 성 교회 | 종교개혁의 중요한 성지인만큼 오래 전부터 국내에 자주 소개되었던 장소다보니 초기 번역본에 "성(城) 교회"라는 직역이 많이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슐로스 교회로 표기한다. 웅장한 원형의 탑이 상징인 슐로스 교회(Schlosskirche). 바로 이 곳이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95개조 반박문"을 써붙임으로서 종교개혁이 시작된 역사적인 장소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 기념 유적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원래 이 곳에는 레지덴츠 궁전(Residenzschloss)이 있었다. 작센(Sachsen)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에 의해 고딕 양식의 궁전이 지어졌으며, 이 곳에 대학교가 설립되면.. 2012. 12. 24. 21:00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