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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크스부르크

외부기고 | 독일 역사여행 - (3) 한자동맹과 르네상스 4월부터 격주로 6개월간 독일 역사여행을 떠납니다. 실제 찾아갈 수 있는 여행지 속에서 역사적인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여행 이야기라기에는 말이 많고, 역사 이야기라기에는 여행을 더 많이 이야기하는 특이한 시리즈 으로 독일을 만나보세요. 네이버 여행플러스를 통해 연재합니다. 세 번째 이야기. 한자동맹과 르네상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여행플러스 포스트에서 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0. 5. 11. 09:00 | 더보기
#390. 물의 르네상스, 아우크스부르크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는 많은 분들이 들어보았을 겁니다. 몇년동안 계속 한국인 축구선수가 몸담은 분데스리가 축구팀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꼭 축구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워낙 기사에 많이 언급되다보니 그 이름은 들어보았음직한데요. 막상 아우크스부르크에 뭐가 있는가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게 없을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글은 축구와는 1도 상관없는 아우크스부르크의 진짜 여행 테마입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시청 광장에 있는 아우구스투스 분수(Augustusbrunnen)입니다. 로마 황제였죠. 아우크스부르크는 로마제국부터 존재한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도시의 설립자나 마찬가지이고요. 도시 이름도 황제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런 아우크스부르크의 가장 유명한 여행테마는 "르네상스"입.. 2019. 7. 14. 00:17 | 더보기
두.유.Travel to Germany :: #187. 아우크스부르크, 푸거, 성 안나, 루터 전편에 이어 종교개혁의 역사적 아이러니 두번째 장면입니다. 이번 무대는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입니다. 먼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이야기를 잠깐 부연합니다. 루터는 원래 법을 전공한 대학생이었습니다. 성직자가 될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부모님 집에 방문하고 다시 학교가 있는 에르푸르트로 돌아오던 중 길바닥에 벼락이 내리치는 걸 목격합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루턴느 그 자리에 엎드려 성 안나에게 기도합니다. "목숨을 구해주면 성직자가 되겠습니다"라구요.성 안나는 광부의 수호성인이었습니다. 루터의 아버지가 광부였습니다. 광부는 언제 사고가 생길지 모르는 위험한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수호성인이 자신들을 지켜준다며 성 안나에게 기도하는 게 그 시절의 풍습이었다고 합니다. 루터는 광부가 아니었지만.. 2018. 10. 20. 02:00 | 더보기
두.유.Travel to Germany :: #138. 모차르트 아버지와 어머니의 집 유명인과 관련 있는 장소가 우리 동네에 있으면 어떻게든 기념하며 알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죠. 세계적인 유명인의 생가 기념관은 매우 많지만, 유명인의 부모의 생가 기념관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워낙 유명인 중의 유명인이라 그런지, 아버지의 생가와 어머니의 생가까지 모두 기념관으로 남아있는 매우 특이한 사례입니다. 바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세계적인 작곡가 모차르트의 생가는 -많이 아시겠지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Salzburg)에 있습니다. 그러면 모차르트 아버지 생가는? 어머니 생가는? 솔직히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죠. 그런데 해당 도시에서는 그 인연을 소중히 기념하고 있어 함께 소개합니다. 모차르트 아버지도 모차르트죠.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모차르트의 생가 모차르.. 2018. 8. 15. 15:19 | 더보기
2017년 4월 배경화면 (1920*1080)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 그래서 2017년의 배경화면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및 종교개혁과 연관된 중요한 성지(聖地)로 선정하려고 한다. 4월 배경화면은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마르틴 루터가 신성로마제국 제국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해 목숨을 걸고 신념을 지켰던 도시이며, 훗날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아우크스부르크 화의의 무대가 되었던 도시이다. 제국의회가 열릴 정도로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중심 도시였으며, 푸거 가문으로 대표되는 무역업과 금융업의 중심지로 엄청나게 부강했던 도시였다. 지금도 중세의 부강한 흔적이 구시가지에 그대로 남아있으며, 사진 속 시청사(Rathaus)는 신성로마제국을 상징하는 검은 독수리가 그려져 있어 당시의 영광을 증명한다. 아마 많은.. 2017. 4. 1. 00:30 | 더보기
종교개혁 500주년 (2) 1편에서 두 곳의 "루터슈타트" 아이슬레벤과 비텐베르크를 소개했다. [바로가기→] 이번에는 루터의 종교개혁에 큰 발자취가 남은 유서 깊은 곳을 소개한다. 일대기의 연표순이 아닌, 역사적 중요성을 기준으로 순서를 정하였다. 아이제나흐 바르트 성 Wartburg Eisenach 가장 먼저 거론할 곳은 아이제나흐(Eisenach)다. 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하고 법에서 추방당한 루터가 여기 은신하면서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성경의 번역은 신성로마제국에서 권력 구조가 완전히 뒤바뀐 촉매가 되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체계 없이 지역마다 방언 형태로 존재하던 독일어의 체계가 잡힌 순간이 되었다. 그래서 독일어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도 루터는 꼭 언급되는 위인이다. 루터 하우스 Lutherhaus Eisenach.. 2016. 12. 31. 20:44 | 더보기
Augsburg | Hostel. 유스호스텔 아우크스부르크의 공식 유스호스텔(Jugendherberge)은 대성당(Augsburger Dom)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규모도 크고 시설도 현대식이라 도미토리에서 지내는 것도 전혀 불편이 없다. 방마다 세면 시설은 따로 있고, 층마다 있는 공동 욕실과 샤워실도 청결하게 관리되며,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1층 레스토랑에서 조식 뷔페도 제공해준다. 원래 유스호스텔은 회원증이 있어야 투숙이 가능하지만, 이 곳의 경우 체크인할 때 약간의 비용을 추가 지불하면 회원증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리고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 카운터에 있는 직원이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한 덕분에 추가 비용을 받지 않아 회원증 없이 정상 가격에 투숙하는 행운도 뒤따랐다. * 찾아가는 법 중앙역(Haptbahnhof)에서 .. 2013. 1. 10. 23:20 | 더보기
Augsburg | etc. 모차르트 하우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모차르트 하우스(Mozarthaus)가 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가 이 도시에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모차르트의 아버지까지 몇 대가 아우크스부르크에 거주했으며, 증조부는 푸거라이(Fuggerei)에서 살기도 했다. 이런 인연 때문인지 모차르트는 평소 아우크스부르크를 "아버지의 도시"라고 부르며 자주 찾았다고 한다. 모자르트 하우스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Leopold Mozart)의 생가. 1937년부터 모차르트를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아우크스부르크와 모차르트 일가의 인연을 소개하며,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사용했던 도구와 악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입장료 : [확인] 개장시간 : [확인] * 찾아가는 .. 2013. 1. 10. 23:07 | 더보기
Augsburg | #13. 성 안나 교회 성 안나 교회(St.Annakirche)는 1321년 지어져 15~16세기경 확장되었다. 이 교회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와 인연이 있다.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써붙은 다음해인 1518년, 루터는 아우크스부르크의 제국의회에 소환되었다. 그 때 그는 성 안나 교회에 머물렀는데,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라는 교황청의 요구를 거부한 뒤 자신을 체포하려는 세력을 피해 성 안나 교회에 피해 있다가 밤에 탈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루터가 자신의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보면서 엎드려 "성 안나여, 나를 구하소서"라고 했었다는 점이다. 자신을 구해달라고 했던 성 안나의 이름이 붙은 교회에 은신하여 목숨을 구했던 것이 마치 그의 기도가 통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 때의 인.. 2013. 1. 10. 22:55 | 더보기
Augsburg | #12. 막시밀리안 박물관 귀족이 살던 저택을 활용하여 1855년 개관한 막시밀리안 박물관(Maximilianmuseum)은 바이에른(Bayern)의 왕 막시밀리안 2세(Maximilian II)에 의해 만들어졌다. 오랜 시대에 걸쳐 수집한 조각, 자기, 악기, 가구, 보석 등 각종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입장료 : [확인] 개장시간 : [확인]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푸거라이(Fuggerei) 입구를 등진 방향으로 왼편으로 야콥 거리(Jakobstraße)를 따라 거리가 끝날 때까지 직진하면 페를라하 탑(Perlachturm)이 나온다. 시청 광장(Rathausplatz)의 맞은편 끝에서 필리피네 벨저 거리(Philippine-Welser-Straße)로 좌회전하여 조금 더 가면 삼각형 모.. 2013. 1. 10. 21:51 | 더보기
Augsburg | #11. 푸거라이 - 벙커 푸거라이(Fuggerei)에는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을 피하기 위해 만들었던 벙커가 남아있다. 좁은 벙커로 들어가면 당시 사용했던 구호물품과 생활물품, 사진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품이 특별히 대단하지는 않지만 전쟁 중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을 받았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은 될 것이다. 2013. 1. 10. 21:27 | 더보기
Augsburg | #11. 푸거라이 - 쇼룸 푸거라이 내부의 건물 중 샤우엔보눙(Schauenwohnung)이 있다. "보여주기 위한 방"이라는 뜻이니 모델하우스 내지는 쇼룸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실제 푸거라이 입주민들이 거주하는 것과 똑같은 집에서 독일 서민들이 사는 모습을 재현해놓고 외부에 공개하는 방이다. 중세의 모습은 아니다. TV도 있고 오븐도 있는 현대식 가정의 모습이다. 사실 이게 특별히 대단한 모습은 아니지만, 우리가 어디서든 박물관에 들어가면 권력자와 귀족이 사는 모습만 볼 수 있는데, 권력자가 아닌 일반인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소로는 아마 이 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집은 2개의 침실과 거실, 부엌, 화장실 등 딱 기본적으로 꾸며져 있다. 깔끔하게 꾸며진 내부를 가볍게 둘러볼만하다. 2013. 1. 10. 21:20 | 더보기
Augsburg | #11. 푸거라이 푸거(Fugger) 집안의 전성기를 이끈 야콥 푸거(Jakob Fugger)는 당대 유럽 최고의 부자였다. 황제와 대주교까지도 그에게 돈을 빌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 그가 활동했던 1500년대 봉건주의 시대에 복지의 개념이 있을리 없다. 그런데 푸거의 머리 속에는 복지의 개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돈으로 빈민을 위한 구제시설을 만들었다. 단지 기부금을 내는 정도가 아니었다. 집 몇 채 지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정도가 아니었다. 67채의 주거용 건물을 지었다. 그 단지 내에 교회도 짓고, 공동 우물도 만들었다. 그는 아우크스부르크에 "도시 속 도시"를 만들었다. 이 공간은 온전히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곳이었다. 이 곳의 이름은 푸거라이(Fuggerei; "푸게라이"라고 적는 자료도 있다".. 2013. 1. 10. 20:32 | 더보기
Augsburg | #10. 레흐 지구 레흐 강(Lech River)은 구 시가지를 관통하는 작은 개천이다. 그 위로 길을 덮어 지하로 흐르는 구간이 많지만 일부는 지상으로 흐르고 있다. 레흐 강이 지상으로 나와있는 주변 지역을 레흐 지구(Lechviertel)라고 부르는데, 이 주변은 아우크스부르크 구 시가지의 주거 지역이면서도 수공업자들이 모여 살던 전통이 남아 오늘날에도 주택 사이로 간간히 수공예품을 파는 공방이 눈에 띈다. 아기자기한 주택들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작은 운하, 그리고 드문드문 쇼윈도우 너머로 보이는 정교한 수공예품 등의 조화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특정 장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지역을 지칭하기 때문에 골목마다 다 둘러보기는 사실상 무리가 있지만, 곳곳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레흐 지구의 가장 주요 지역을 관통.. 2013. 1. 10. 19:10 | 더보기
Augsburg | #09. 포겔 문 아우크스부르크의 중세 성벽의 출입문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또 한 곳이 포겔 문(Vogeltor)이다. 1445년 당시 아우크스부르크의 시장 콘라트 푀겔린(Konrad Vögelin)의 지시로 만들어졌으며, 성벽 밖의 습지에 광장을 조성하면서 성문을 만드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다고 한다. 포겔 문을 직역하면 "새[鳥]의 문"이라는 뜻인데,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다만 시장의 이름인 푀겔린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유력한 학설이다. 오늘날 자동차가 다니는 큰 길의 한가운데 놓여 있으며, 그 주변으로 옛 성벽의 흔적을 볼 수 있다.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성 울리히와 아프라 교회(St.Ulrich und St.Afra)에서 왔던 방향으로 되.. 2013. 1. 10. 18:52 | 더보기
Augsburg | #08. 붉은 문 아우크스부르크 구 시가지의 성벽 출입문 중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곳이 몇 곳 있는데, 붉은 문(Rotestor)도 그 중 하나이다. 19세기경 성벽이 철거될 때 붉은 문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탑의 붉은 장식 때문에 붉은 탑이라 불린다. 12세기부터 세워졌는데, 오늘날 탑의 모습은 시청사(Rathaus)를 건축한 엘리아스 홀(Elias Holl)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원래 성문 밖으로 원형극장(Freilichtbühne)이 있는데, 방문 당시 폐쇄된 상태였다.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성 울리히와 아프라 교회(St.Ulrich und St.Afra)에서 밀히베르크 거리(Milchberg)로 언덕을 내려가 오른편에 슈피탈 골목(Spitalgasse)이 나오면 우회전, 이후.. 2013. 1. 10. 18:04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