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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추천 여행테마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인류 역사상 수많은 음악의 천재가 있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기계로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음악이 곧 하나의 이론이며 학문이기에 전적으로 자신의 실력에 의존해야 하던 시절에 두각을 나타낸 음악가들은 그야말로 타고난 천재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들이 만든 음악은 "클래식"이라는 이름과 함께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천재들 중에서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음악의 아버지"란 곧 "음악을 만든 사람", 즉 오늘날까지 유효한 음악의 법칙과 질서를 확립한 사람이란 뜻이죠. 그가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입니다. 바흐 이후에 바흐보다 더 뛰어난 음악가는 더 나옵니다만, 바흐가 집대성한 음악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바흐의 동상
Leipzig

바흐는 바로크 시대의 마지막 주자였으며, 그에 의해 바로크 음악이 완성되었고, 그 토대 위에 고전주의 시대로 넘어갑니다. 고전주의 시대에 배출된 천재가 바로 모차르트죠. 그리고 모차르트에 의해 더 수준이 높아진 음악적 토양과 프랑스 혁명 등 당시 사회 분위기까지 더해져 낭만주의 시대로 넘어가고, 낭만주의의 대표주자가 베토벤입니다.


즉, 바흐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앞서 그들의 길을 연 선구자입니다. 그러니 "음악의 아버지"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수밖에요. 마침 바흐가 활동한 독일에서는 그의 발자취를 기록한 도시가 곳곳에 있어 바흐를 순례하는 여행도 가능합니다. 여기 대표적인 도시를 소개합니다.


아이제나흐

바흐 하우스
Eisenach

아이제나흐(Eisenach)는 바흐의 고향입니다. 그가 태어난 생가로 추정되는 건물은 바흐 하우스(Bachhaus)라는 이름의 기념관이 되었습니다. 건물 옆에 현대식 전시관을 연결해 방대한 자료를 전시합니다.

성 게오르그 교회
Eisenach

구시가지의 중심인 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성 게오르그 교회(St. Georgenkirche)는 바흐가 세례를 받은 곳입니다. 교회로 들어가면 입구 안쪽에 거대한 바흐의 동상이 있어 이를 기념합니다. 아이제나흐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무대 중 하나로 개신교 색채가 매우 강한 도시였으며,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바흐 역시 돈독한 신앙심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나중에 바흐가 계속 교회음악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며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선보이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아른슈타트

바흐 교회
Arnstadt ⓒwww.60plus-go-on.de

아이제나흐에서 멀지 않은 아른슈타트(Arnstadt)라는 작은 마을은 바흐가 처음으로 음악과 관련된 직업을 갖게 된, 말하자면 프로 뮤지션의 길을 시작한 도시입니다. 18세 되던 해 바흐가 한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채용되었고, 그 교회는 지금 바흐 교회(Bachkirche)라는 이름을 달고 그와의 인연을 기념합니다.


그런데 사실 바흐는 이곳에서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오르간 연주자는 사실상 교회 음악의 지휘자나 마찬가지인 역할인데요. 다른 연주자들과 사이가 나빠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음악적 견해 차이로 주먹다짐 후 그룹을 깨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결국 바흐는 4주 휴가를 얻어 음악여행을 떠나는데 4개월 동안 돌아오지 않으며 성질을 보여줬고, 복귀 후 큰 다툼 끝에 그만두게 됩니다. 그러니 바흐의 입장에서 아른슈타트는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었을 거에요. 그러나 "최초"라는 타이틀 때문에 바흐와 관련된 중요한 순례지가 됩니다.


바이마르

시립 궁전
Weimar

바이마르(Weimar)는 바흐가 본격적으로 음악가로 날개를 달기 시작하는 곳입니다. 궁정 소속 오르간 연주자 겸 작곡가였습니다. 당시 바흐가 주로 연주했던 궁전에 속한 교회(궁정교회; Schlosskirche)는 지금 남아있지 않지만 궁전은 남아있습니다. 물론 궁전 내부에서 바흐의 흔적을 발견하기는 어려우므로 바흐의 바이마르 시대는 그의 일대기를 정리할 때 중요한 시기이지만 순례지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바이마르에서도 바흐의 음악생활이 평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오르간곡 중 절반을 바이마르에서 만들었을 정도로 오르간에 심취해 실력도 일취월장했고, 이탈리아 음악의 영향을 받아 칸타타를 작곡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의 실력에 비해 처우가 좋지 않은 편이었고, 바이마르 궁전 내의 권력관계의 희생양이 되었으며, 여러 상황이 맞물려 다른 도시로 이직하기 희망합니다. 여기에 아른슈타트에서 보여준 불같은 성격이 더해져 권력자의 심기를 건드려 감옥에 수감되기까지 합니다. 감옥에서도 계약조건을 이행하느라 칸타타를 작곡해야 했으니 완전히 마음이 떠났겠죠. 감옥에서 풀려난 뒤 이직 허락을 받고 미련없이 바이마르를 떠납니다.


쾨텐

바흐 하우스
Köthen ⓒde.wikipedia.org

바이마르를 떠난 바흐는 쾨텐(Köthen)에서 카펠마이스터로 채용됩니다. 카펠마이스터는 당대 음악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지위라고 합니다. 가장 편안한 환경에서 음악을 만들었던, 바흐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쾨텐은 작은 도시였지만 당시 강대국인 프로이센에서 해산된 악단을 받아들였기에 음악의 수준은 매우 높았습니다. 수준 높은 연주자들과 함께 바흐는 마음껏 걸작을 써내려갑니다. 그러나 바흐를 적극 후원했던 영주가 음악에 대한 관심이 떨어짐에 따라 바흐의 역할도 축소되었고, 또 다시 새로운 일터를 찾아 옮기게 됩니다.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Leipzig

성 토마스 교회
Leipzig

쾨텐의 영주는 바이마르 영주와 달리 쿨하게 바흐를 놓아주고, 바흐는 큰 도시 라이프치히(Leipzig)의 칸토르로 취직합니다. 칸토르는 교회음악의 총괄자 정도로 볼 수 있겠는데, 도시 내 모든 교회와 교회 부설 학교의 음악을 총괄하는 위치니 업무량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교회에서 연주할 음악을 의무적으로 작곡해야 함은 물론이구요. 교회음악에 열정을 가졌던 바흐도 살인적인 업무량에 차츰 열정을 잃고, 말년으로 갈수록 작품 수는 줄어들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라이프치히 시대에 작곡된 <마태수난곡> 등의 대표작은 후대의 역사가나 평론가들이 바흐가 바로크 음악을 완성했다는 평을 하도록 만든 세기의 걸작이었습니다. 그는 성 토마스 교회의 소년 합창단을 체계화하고 수준을 끌어올렸고, 토마스 소년 합창단은 오늘날에도 세계적인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라이프치히에서 숨을 거두었고, 그의 무덤은 성 토마스 교회 내에 마련되었습니다.

바흐 박물관
Leipzig

성 토마스 교회 입구 앞에는 그의 거대한 동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상이 바라보는 쪽에 있는 건물은 바흐 박물관으로 그의 일생과 음악을 집대성하는 기념관으로 사용중입니다. 바흐가 살았던 건물은 아니지만 바흐와 친분이 있는 귀족의 건물이었다네요. 여기서는 바흐와 그의 가문 전체의 음악인생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바흐의 음악세계를 이해할 때 꼭 가보아야 할 장소로 꼽힙니다.


참고로 바흐는 위아래로 대를 이어 가문 전체에 수십명의 음악가를 배출한 음악의 명문집안이었습니다. 오히려 바흐가 살아있을 때에는 바흐보다 그의 아들들의 명성이 더 높았다고 해요. 오죽했으면 라이프치히에 칸토르로 취직할 때 당시 명성이 높았던 작곡가 텔레만의 영입에 실패하자 "최고가 아니면 2류를 뽑자"며 바흐를 뽑았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2류 취급을 받았던 거죠.


그의 최고의 걸작 <마태수난곡>만 하더라도, 당시 연주 때 호평을 받았으나 이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습니다. 그런데 훗날 라이프치히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작곡가 멘델스존이 정육점에서 고기를 샀는데 포장지가 <마태수난곡>의 악보였다고 해요. 악보만 보고 바흐의 작품임을 알아본 멘델스존이 이 곡을 세상에 소개하면서 바흐가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멘델스존은 베토벤 등과 함께 2류 취급을 받았던 바흐의 진가를 알았던 몇 안 되는 음악인이었습니다.


당시 음악의 중심은 오스트리아였기에 베토벤, 브람스 등 독일 출생 작곡가도 오스트리아에서 빛을 발하는데, 독일에서만 활동하면서 빛을 발한(물론 후대의 평가 덕분이기도 하지만) 가장 위대한 거장이 바흐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클래식"을 논한다면 바흐가 늘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합니다.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바흐의 발자취를 쫓아가보는 순례 여행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