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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EBS <난생처음 다크투어> #1. 뮌헨

몇주 전에 다크투어 in 베를린 포스팅을 작성하던 중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건 꼭 봐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몇주가 흘렀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합니다. 대충 프로그램의 시놉시스를 보니 제가 다 아는 내용이었습니다. 2부작이라고 하니까 띄엄띄엄 넘겨가며 후딱 보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제가 다 아는 내용은 맞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내용이 깊고 몰입도가 높아 정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후딱 두 편을 다 볼 줄 알았는데 첫 편만 보고 먼저 리뷰합니다.


아무래도 역사 이야기인만큼 코멘트할 내용이 많습니다. 방송은 두 편이지만 저는 4개 도시를 각각 하나의 글로 이야기할까 합니다.

요즘 다크투어가 주목받는다고 하죠. 누가 뭐라하든 다크투어의 1번지는 독일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독일의 4개 도시에서 역사적인 사건과 현장을 돌아보며 이야기합니다. 첫 편에서는 그 중 절반에 해당되는 뮌헨과 뉘른베르크가 다뤄졌습니다.


다크투어의 출발지는 뮌헨입니다.

뮌헨은 백장미단 사건이 벌어진 곳입니다. 나치 집권 당시 나치에 항거하는 뮌헨 대학교 학생들의 저항단체가 백장미단인데요. 나치가 그런 못된 짓을 할 때 독일인은 뭘 하고 있었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독일인은 대부분 나치의 선동에 넘어가고 세뇌되어 진심으로 나치를 지지하던 시절입니다. 깨어있는 사람들은 이내 잡혀가 수용소로 보내졌었죠.


그런데 뮌헨에서만큼은 나치의 선동이 썩 먹히지 않았습니다. 바로 백장미단의 활동 때문이었죠. 의식 있는 학생들이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린 덕분입니다. 백장미단은 나치에 검거되었고, 주동자 학생들과 이들을 도왔던 교수는 즉결 심판에 넘겨져 사형 당하고 맙니다. 백장미단의 리더였던 숄 남매는, 마치 우리가 유관순을 생각하듯 전국민이 위인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역사적인 장소가 아직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 너무 부럽습니다. 숄 남매가 유관순 같은 존경을 받는 위인이라고 했죠. 당연히 아이들에게 그 역사적인 현장을 보여주며 교육하면 훨씬 역사를 재미있고 생생하게 받아들이겠죠. 역사 교육이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냥 현장만 남겨놓고, 진실만 알려주면 절반 이상 끝난 겁니다. 그 쉬운 것도 어려운 게 현실인데, 독일은 이렇게 미련하게스리 다 보존하고 있다는 거죠.

백장미단의 스토리, 그리고 뮌헨 대학교의 기념관, 방송에는 소개되지 않은 뮌헨 법원의 재판정(숄 남매와 백장미단에게 즉결 사형 선고를 내린 장소) 등은 모두 제 책 <뮌헨 홀리데이>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마침 대학교 앞에서 학생들이 시위하는 장면도 나왔는데요. 난민을 빨리 송환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뮌헨은 독일 내에서도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하고, 뮌헨을 꽉 잡고 있는 기사당(집권 기민당의 자매정당)은 난민에 적대적인 편인데요. 그래도 뮌헨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더랍니다.


백장미단의 키워드는 "자유"잖아요. 백장미단을 알고 배우며 성장한 학생들의 시선에서는 자유를 찾아 도망친 난민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독일 정부가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이렇듯, 역사 교육은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알려주는 목적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이정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오래된 식당"으로 소개된 이곳은 너무도 유명한 호프브로이 하우스입니다. 세계적인 식당도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역사의 무대가 되었죠. 이렇듯 그냥 일상 속에 역사가 존재합니다. 자연스럽게 역사를 알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됩니다.

그 와중에 깨알 같은 먹방을 보여주네요. 독일의 대표적인 전통음식 학세입니다. 독일식 족발이라고 부르죠. 실제로 족발과 같은 부위로 요리하고, 맛도 비슷합니다. 대신 학세는 바삭한 껍질이 있어 족발과 식감은 차이가 있습니다. 호프브로이 하우스는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너무 유명한 곳이지만, 지도는 살포시 첨부합니다.

허투루 준비하지 않았다고 감탄하게 만든, 백장미단에서 교수 신분으로 유일하게 처형된 쿠르트 후버 교수의 아들을 찾아간 장면입니다. 우리식으로 따지면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찾아간 셈인데요. 단순히 선친의 영웅적인 행동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라 여기서 또 한 명의 인물로 넘어가는 연결고리가 됩니다.

바로 이미륵 박사입니다. 먼저 솔직히 이야기하면, 저는 이미륵 박사의 책을 본 세대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있었고 뮌헨에 잠들었다는 지식만 있지, 이 사람이 독일에서 어떤 활동을 했으며 어떤 존재감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그걸 방송에서 보여주네요.

1946년에 독일에서 출간된 책을 지금도 독일의 헌책방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헌책방에 있는 것은 70년대에 인쇄된 것이라고 합니다만, 아무튼 수십년이 지나도록 이렇게 존재감을 보여주는 게 대단합니다. 참고로 <압록강은 흐른다>의 독일어 제목이 Der Yalu fließt인데요. 압록강의 만주어 이름인 얄루강을 독일어로 옮긴 거라고 합니다.

독일인이 물어봅니다. "한국에도 이미륵이 잘 알려져 있나요?" 뮌헨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두 명의 작가를 반드시 이야기하는데요. 한 명이 이미륵, 또 한 명이 전혜린입니다. 저는 전혜린까지는 들어보며 자란 세대입니다. 물론 전혜린의 글에 청춘을 불태운 세대는 아니라서 전혜린이라는 이름도 멀게 느껴져요. 하물며 이미륵은 너무 먼 존재죠. 그래서 <뮌헨 홀리데이>를 쓸 때 전혜린까지만 이야기했습니다. 그게 제 한계라고나 할까요.

뮌헨 그레펠핑 공동묘지에 있는 이미륵 박사의 묘입니다. 한국식 비석이 매우 이색적입니다. 

그리고 출연진이 음악을 연주하며 머리를 맞댄 분위기 신선한 카페는 뮌헨 대학교 근처입니다.

뮌헨의 다크투어는 여기까지입니다. 사실 뮌헨에서 조금만 나가면 다크투어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을 다하우 강제수용소도 있습니다만 다음 여행지에서 나치 강제수용소를 갈 것이라 뮌헨에서는 건너뛴 것 같습니다.


너무 유명한 관광지 뮌헨이지만 이런 역사의 비극적 현장이 있더라는 것, 그리고 그 비극적인 역사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비극적인 역사와도 겹쳐진다는 것, 그 사이에 다리를 놓은 한국인 선구자가 있었다는 것. 여러모로 생각할 것이 많은 방송이라는 생각입니다.


첫 편의 다음 여행지는 뉘른베르크인데요.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