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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321. 왜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사용할까?

오스트리아도 독일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어요. 왜 오스트리아어라고 하지 않고 독일어라고 할까요?


역사상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통일된 나라였던 적이 없습니다(히틀러 치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었으니 예외로 합니다). 독일인이 오스트리아를 정복하고 자기네 언어를 썼다면 말이 되는데(마치 영국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고 미국을 건국해 영어를 쓰는 것처럼), 그것도 아니거든요. 그러면 오스트리아인 입장에서는 왜 자기 나라 언어를 오스트리아어라고 부르지 않고 남의 나라 이름을 붙여 독일어라고 부를까요?


이 이야기를 위해 우리는 오래 된 지도를 다시 소환해야 합니다. 카롤루스 대제 이후 프랑크 왕국이 셋으로 분열될 때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보여드린 지도를 다시 가져옵니다.

프랑크푸르트 등 지금의 독일, 잘츠부르크와 빈 등 지금의 오스트리아가 같은 영토 안에 묶여있죠. 동프랑크 왕국입니다. 고대로마제국에서 라인강 동편의 이 지역들을 라틴어로 게르마니아 마그나(Germania Magna)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 사는 원주민은 라틴어를 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고대로마에서는 이 집단을 Theodiscus라고 불렀습니다. 라틴어 Theodiscus가 도이치(Deutsch)의 어원이 됩니다.


사실 게르만족이 사는 곳이라 하여 게르마니아 마그나라고 하기는 했지만 작센족, 슈바벤족, 프랑켄족, 바이에른족 등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민족이었죠. 그러나 이들간에 언어의 방언 차이가 존재하지만 대략 의사소통은 가능한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로마의 시선에서는 어차피 말도 안 통하는 미개한(!) 이방인들이니 게르만족이라고 뭉뚱그려 받아들였다고 봐야겠지요.


훗날 카롤루스 대제에 의해 프랑크 왕국이 융성하고 게르마니아 마그나로 영토를 넓힙니다. 이 지역에 살던 게르만족을 점령하고, 이교도인 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며 통일된 문화를 주입합니다. 그러다 프랑크 왕국이 셋으로 나뉘고 동프랑크 왕국은 아예 게르마니아 마그나(라인강 동편)에 터를 잡게 됩니다.

프랑크 왕국이 분열된 뒤 동프랑크 왕국을 맡은 루트비히 독일왕이 죽고 작센족 출신의 하인리히 1세가 국왕이 됩니다. 이제 동프랑크 왕국은 카롤루스 대제의 카롤링어 왕조의 핏줄과 단절되고, 게르마니아 마그나에 정착한 게르만족의 왕조가 열렸습니다. 하인리히 1세는 크베들린부르크(Quedlinburg)에 성을 쌓고 동방으로 영토를 넓힙니다. 국호를 Regnum Teutonicum이라고 고칩니다. "Theodiscus의 왕국" 정도가 되겠네요. Theodiscus가 도이치의 어원이라고 했죠. 그래서 이 이름을 우리는 독일왕국이라고 번역합니다. 하인리히 1세는 첫 독일왕으로 인정받습니다. (루트비히 독일왕은 동프랑크의 왕이었고, "독일왕"이라는 별명도 후대에 붙인 것입니다.)


곧 독일왕국은 교황청으로부터 로마제국의 계승자라는 인정을 받고 국왕도 황제가 됩니다. 이때부터 신성로마제국(Heiliges Römisches Reich)이 시작되고, 공식적으로 도이치(독일)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나라는 없어집니다.


독일왕국은 10세기에 불과 44년 정도 존속했던 나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성로마제국에서도 "도이치"라는 개념이 남아있었던 이유는, "도이치"가 결국 Theodiscus라고 불리었던, 방언의 차이는 있으나 서로 통하는 언어를 가진 집단을 나타내는 것이었기에 그들 모두가 "도이치"라는 개념 하에 종속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작센도, 프로이센도, 바이에른도, 뷔르템베르크도, 헤센도, 팔츠도, 오스트리아도, 각각의 국가를 세우고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도이치"라는 개념에 함께 묶여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관념적으로는 신성로마제국 출범 이후에도 "독일왕"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건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라 보아야겠고, 실질적으로 주권이 미치는 개념은 아니었기 때문에 "도이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관념으로서만 존재했다고 보는 편이 옳습니다.)


나중에 나폴레옹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신성로마제국이 무너진 뒤 제국에 속했던 각 국가들은 서로 힘을 합쳐야 강대국의 틈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1000년가량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살아온 나라들을 하나로 묶으려면 확실한 구심점이 있어야겠죠.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통일된 무엇을 기준점으로 삼아야겠죠. 그것이 "도이치"였습니다. 언어만큼은 서로 같았으니까 언어 아래에서 하나로 뭉치게 되고, 그 언어집단을 일컫는 "도이치"라는 관념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습니다.


통일된 제국이 1871년 출범합니다. 그들은 "도이치 제국", 즉 독일제국(Deutsches Kaiserreich)이라고 이름을 정합니다. 여기서부터 오늘날의 독일(Deutschland)까지 연결되는 역사를 가집니다. 그러나 독일제국 출범 당시 오스트리아는 통일에서 제외되고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 역시 "도이치"라는 관념하에 존재한 국가였으니 그들의 언어가 "도이치"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전혀 어색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독일어"라고 하면 당연히 "독일의 언어"라고 생각하니까 "왜 오스트리아가 독일의 언어를 사용하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엄밀히 말해 "독일어(도이치)"는 게르마니아 마그나라 불린 지역에 거주한 게르만족의 언어를 뜻하는 것이고 따라서 오스트리아 역시 "독일어(도이치)"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오스트리아는 그들의 언어를 "오스트리아의 도이치(Österreichisches Deutsch)"라고 이야기합니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자면, 사실 우리가 Deutschland를 독일이라고 부르는 자체가 잘못된 출발인 셈입니다. 이름을 이렇게 정해버리니 "도이치"와 "도이치란트"를 구분할 수 없게 되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관계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도이치란트라는 이름을 놔두고 독일이라고 적을까요? 도이치란트를 발음할 수 없었던 일본에서 "도이쓰(独逸; ドイツ)"라고 적은 것을 그대로 들여와 독일(獨逸)이라고 불렀습니다. 해방 후 "도이칠란트"라고 적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국민의 언어 생활에 정착되지 못하고 독일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독일이라고 하지 않고 도이칠란트라고 부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