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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322. 바이에른과 티롤의 악연

여행정보라기보다는 역사 속의 이야기 하나 들려드립니다.


여기 오스트리아 티롤(Tirol)의 주도 인스브루크(Innsbruck)가 있습니다.

베르기젤(Bergisel)이라는 이름의 언덕에서 바라본 시내의 풍경입니다. 이렇게 알프스의 험준한 절벽이 도시를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죠. 이들은 합스부르크 왕가에게 충성하며 나름의 자치권을 획득해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여기 바이에른(Bayern)의 주도 뮌헨이 있습니다.

레지덴츠 궁전 옆 바이에른 주립극장 앞에 큰 동상이 있는데, 이 사람이 바이에른의 초대 국왕인 막시밀리안 1세입니다. 그 전까지 바이에른은 왕국이 아니라 공국이었기 때문에 군주는 국왕이 아니라 대공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막시밀리안 1세 시대에 왕국으로 격상되어 군주의 지위도 국왕으로 격상됩니다.


내가 오늘부터 왕이 되고 싶다고 왕국이 되는 건 아니죠. 왕국을 선포하는 건 자유지만 그것이 주변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바이에른 왕국의 선포를 인정받은 것은 당시 유럽을 꽉 잡고 있던 나폴레옹의 프랑스의 도움이 컸습니다.


막시밀리안 1세는 적극적으로 프랑스에 협력했습니다. 나폴레옹군이 동쪽으로 쳐들어갈 때 바이에른의 군대도 함께 합니다. 처음 프랑스가 타깃으로 삼은 곳은 오스트리아였습니다. 나폴레옹의 정예군은 수도 빈(비엔나)으로 진격하고, 바이에른군은 상대적으로 약했던 티롤을 접수하기로 합니다. 일방적으로 티롤은 바이에른 것이라고 선언하고 군대를 보내 접수하려 했죠.


그러나 티롤의 저항은 막강했습니다. 민병대 수준의 오합지졸 군대로 보였지만 알프스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을 펼치니 바이에른군이 완전히 농락 당합니다. 보다 못한 프랑스군이 원군으로 도착했지만 역시 티롤 민병대에게 농락 당합니다.

아까 베르기젤 언덕을 언급했는데, 바로 여기서 바이에른과 프랑스군대가 박살이 났습니다. 지금 그 자리에 세워진 이 동상의 주인공이 안드레아스 호퍼(Andreas Hofer). 민병대를 이끈 지도자였는데, 군인이 아니라 여관 주인이었어요. 숙박손님 받고 술 팔던 사람입니다. 티롤이 강대국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남의 손에 넘어가는 꼴을 볼 수 없어 들고 일어나 민병대를 지휘하며 바이에른과 프랑스 군대를 몰아냅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에 충성한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겼으니 비엔나의 중앙정부가 티롤에 군대도 보내주고 지켜줄 것이라 믿었죠. 스스로 행정부를 꾸려 티롤의 체계를 강화한 뒤 오스트리아에 도움을 청합니다. 하지만 왠걸요. 비엔나가 함락당하고 오스트리아 황제는 바이에른에 티롤을 거저 줘버렸어요.


졸지에 역적이 되어버린 안드레아스 호퍼는 다시 민병대를 조직해 싸웁니다. 이번에는 프랑스 정예군이 새까맣게 몰려왔고, 가뜩이나 굴욕을 당해 독기까지 오른 프랑스군을 상대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계절도 겨울로 바뀌었습니다. 산에 숨어서 게릴라전을 벌이기에는 식량도 없고 날씨도 추웠습니다. 결국 티롤은 패하고, 안드레아스 호퍼는 체포되어 처형당하고 맙니다.


그렇게 티롤은 바이에른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물론 나폴레옹이 몰락함에 따라 나폴레옹의 동맹인 바이에른도 큰 손실을 입고 일부 영토를 포기하게 되는데, 이 때 티롤을 포기하면서 다시 오스트리아의 영토로 돌아가기는 합니다만, 티롤와 바이에른은 이런 지독한 악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오늘날에는 그런 악감정은 없는 듯합니다. 인스브루크 등 티롤 지역은 비엔나에서 멀기 때문에 오히려 바이에른을 배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비엔나에서 기차 타고 가는 것보다 뮌헨에서 기차 타고 가는 게 더 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