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도패스 또는 유레일패스로 독일에서 기차를 탈 때 기본적인 내용은 워낙 잘 알려져있고 인터넷에도 관련 자료가 많으므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철도패스를 구입하면 여행사에서 동봉해주는 안내책자에도 자세한 내용이 있다).
다만, 여기서는 경험 상 독일에서 철도패스 사용 시 특별히 체크할 두 가지 내용에 대해서만 따로 부연하고자 한다.
A. 19시 룰
19시 룰(또는 7시 룰이라고도 한다)은 양날의 검이다. 잘 사용하면 득을 보지만 잘 안 챙기면 억울한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19시 룰은, 쉽게 말해서 19시(저녁 7시) 이후에 출발하여 다음날 0시 이후에 도착하는 열차를 탈 때는, 철도패스에 날짜를 기입할 때 당일이 아닌 다음날짜를 기입해야 하는 규칙이다.
아래 타임테이블을 가지고 예를 들어보자.
위 열차는 8월 20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에서 20:13에 출발해 베를린(Berlin)에 00:35에 도착하는 ICE이다. 만약 당신이 이 스케쥴대로 열차를 탄다면, 당신은 8월 20일에 열차를 출발하지만 다음날 0시 이후에 도착하므로 철도패스에는 8월 21일을 입력해야 한다. 이것이 19시 룰의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자. 당신은 8월 20일에 철도패스를 사용했고, 21일에는 사용할 계획이 없다. 그런데 이 한 번을 위해 19시 룰 때문에 날짜 하루를 더 낭비하는 것은 아깝지 않은가. 그럴 때는 차라리 23:45에 도착하는 슈텐달(Stendal)까지는 철도패스로 가고, 슈텐달에서 베를린까지는 표를 따로 구매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물론 기차에 내려서 급하게 표를 살 수는 없으니 프랑크푸르트에서 열차를 타기 전 미리 구매해두면 될 것이다. (여기서 "불법적인" 내용까지도 쉽게 머리를 굴릴 수 있겠으나 공식적인 포스팅이므로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자.)
다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당신은 8월 20일에 철도패스를 사용하지 않았고, 21일에는 사용할 계획이 있다. 그런데 위 스케쥴에서 당신의 목적지가 베를린이 아니라 22:01에 도착하는 괴팅엔(Göttingen)이라 하자. 그러면 당신은 0시 넘어 도착하는 것이 아니므로 철도패스에는 8월 20일을 입력해야 한다. 그러면 다음날 또 철도패스를 사용할 계획이 있으니 총 이틀을 사용해야 하는 셈. 하지만 그냥 처음부터 8월 21일을 기입하고 열차에 탄 뒤, 검표원이 날짜에 대해 물으면 지금 베를린에 가는 길이라고 이야기하라. 그리고 괴팅엔에 내리면 당신은 철도패스 사용일수 하루를 절약하게 된다.
2014. 5. 덧붙이는 글 : 최근 19시 룰의 내용 중 한 가지가 추가된 것을 확인하였다. 기존에는 19시 이후에 출발하여 자정이 지난 후 도착하는 열차에 적용되었는데, 최근 확인한 내용은 19시 이후에 출발해 새벽 4시 이후에 도착하는 야간열차의 경우 19시 룰이 적용된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패스를 판매하는 몇 곳의 여행사 사이트를 확인해보니 이 내용이 적혀있는 곳도 있고 예전 내용이 적혀있는 곳도 있었다. 만약 공식적으로 규정이 변경된 것이라면 위 내용 중 일부는 유효하지 않은 것이니 참고할 것.
2016. 2. 덧붙이는 글 : 19시 룰은 19시 이후에 출발해 다음날 새벽 4시 이후에 도착하는 열차에 한하여 적용되는 것으로 규정이 확실히 변경되었음을 확인하였다. 혹 아직 국내 여행사에서 이 내용이 공지되지 않았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니 이용에 착오 없기를 바란다.
B. 검표 실수
다음으로 체크할 부분은 검표 실수에 대처하는 자세이다. 앞서 소개했듯, 철도패스는 여행자가 자신이 탑승할 날짜를 기입하면 검표원이 그 위에 검표 도장을 찍어주게 된다. 그런데 기차를 한 번만 타는 것이 아니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검표를 받게 될 것이다. 이미 검표 도장이 찍힌 경우, 다음에 만나는 검표원은 그냥 눈으로만 확인하고 패스를 돌려주는 것이 정상인데, 꼭 어이없이 실수하는 검표원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가장 어이없는 실수는, 자신도 검표 도장을 찍겠노라고 빈 칸에 그냥 도장을 찍어버리는 경우이다. 날짜도 기입하지 않은 빈 칸을 그렇게 찍어버리면 졸지에 사용일수 하루가 날아가버리는 셈. 아래의 실제 사례를 가지고 부연해보자.
위 사진은 4일권의 일부. 4일권이면 도장이 총 4개가 찍혀야 하는데 5개가 찍혀있다. 그것은 네 번째 칸에 날짜가 기입되지 않았기 때문. 두 번째 칸이 5월 24일의 자리이며 이미 검표를 받은 상태인데, 다른 검표원이 네 번째 칸에 도장을 찍어버린 상태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그냥 네 번째 칸에 도장 위에 날짜를 기입한다고 가정하자. 도장은 5월 24일인데 날짜는 다른 날이 적혀있다면, 십중팔구 당신이 날짜를 지우고 그 위에 덧칠을 하여 부정사용을 한다고 의심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빈칸은 그대로 두고 그 옆의 공간에 날짜를 기입했다. 물론 마지막 사용일에 검표를 할 때마다 똑같은 해명을 지겹도록 해야 했으나 아무튼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굳이 필자가 이런 사례를 언급하는 이유는, 그동안 독일에서 무려 세 번이나 같은 경우를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잘못 도장을 찍은 것만 세 번이고, 잘못 찍으려고 해서 황급히 제지한 것까지 포함하면 다섯 번은 넘을 것이다. 사람이 검표하는 독일의 아날로그식 시스템에서는 언제든지 검표원의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워낙 티켓 체계가 복잡하고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의외로 어이없는 실수가 종종 생긴다.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좋은 것은 그 자리에서 실수한 검표원에게 정정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면 패스 뒷면 등에 검표원이 자신이 실수로 검표했다고 적어주고 한 번 더 도장을 (겹치지 않게) 찍어줄 것이다. 그것이 힘들다면 문제가 생긴 뒤 기차를 내리자마자 기차역의 라이제첸트룸(ReiseZentrum)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확인을 받아두는 것이 좋다. 독일인이 굉장히 융통성 없는 민족임을 명심하자. 나중에 설명을 잘 하면 되겠지, 라는 식의 안일한 대응은 자신에게 화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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