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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독일 일반 정보

9. 독일의 쇼핑 - ① 독일의 실용성

9. 독일의 쇼핑 - ① 독일의 실용성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구매욕이 다르고 구매력이 다르므로 쇼핑에 대해서 정보를 전달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어지간한 것들은 다 수입이 되는 우리나라 시장규모에서 굳이 독일에 가서 일부러 사 올만한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솔직히 여기에 대한 정답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일반론 수준에서 이야기를 풀어보자.


굳이 독일에 가서 쇼핑을 한다면 독일인들이 널리 사용하는 것들이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독일인의 국민성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나라에서 많이 파는 것들은 그 나라 사람들이 많이 사는 것들이고, 그 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을 안다면 무얼 많이 사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쓸모가 있을지 판단하는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인의 국민성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실용"이다. 이것은 꼭 가격이 저렴한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비싸더라도 비싼만큼 이상의 값어치를 하고 오래 쓸 수 있다면 그것은 실용적이다. 그러나 굳이 불필요하게 비싸면 그것은 실용적이지 않다. 가령, 그 유명하다는 독일의 칼을 보자. 독일제 칼은 꽤 비싼 편이다. 하지만 그 품질은 다른 칼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우수하다. 게다가 내구성도 좋아 한 번 구입하여 잘 관리하면 굉장히 오랫동안 쓸 수 있다.


이런 사례도 들 수 있겠다. 독일 공항의 면세점에서는 "30년산" 딱지가 붙은 고급 위스키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고작해야 12년산급의 저렴한 위스키가 주를 이룬다. 왜일까? 독일인들이 그런 술은 안 마시기 때문이다. 굳이 몇 배의 비용을 내면서 고급 위스키를 마시느니 저렴한 위스키를 마시는게 더 실용적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인 것이다. 설마 그들이 돈이 없어서 그러겠는가? 체질적으로 검소함이 몸에 베어서 그렇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느정도로 검소한가?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동차를 2~3년마다 바꾼다. 그러면 벤츠, BMW, 폴크스바겐 등 이름만 들어도 흥분되는 엄청난 자동차들이 쉴새없이 출시되는 독일에서는 사람들이 자동차를 얼마나 자주 바꿀까? 놀라지 마시라. 그들은 평균 10~20년동안 차를 바꾸지 않는다. 필자가 2012년에 독일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길거리에서 가장 많이 본 차는 폴크스바겐의 골프 5세대, 그 다음은 골프 4세대였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중반에 출시된 차종이다. 우리로 따지면 길거리에서 EF쏘나타와 뉴EF쏘나타가 가장 많이 보이는 셈이다. EF 시리즈는 고사하고 NF 시리즈도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는 우리네 현실과는 너무도 대비되지 않는가?


이렇듯 검소한 사람들이라면, 소위 "명품"이라 부르는 것들의 구매력은 어떠할까? 단지 브랜드가 전통이 있고 유명하다고 하여 가격이 천정부지인 것은 절대 실용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명품 시장이 별로 크지 않다. 물론 대도시에는 명품숍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현지인보다는 관광객, 특히 돈을 물 쓰듯 쓰는 중국이나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외적인 모습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


그러니 독일에 가서 명품을 싸게 사려 한다면 애당초 출발점이 틀렸다. 그런 사람은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가야 한다. 비싸기 때문에 남들이 대접해주는 물건은 독일과는 맞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조금 비싸더라도 품질이 매우 우수하고 오래 쓸 수 있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 옳다. 하긴, 명품을 사랑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실용적인 독일의 칼도 "명품 칼"로 둔갑시키니 그런 관점에서의 명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옷도 마찬가지이다. 패션은 유행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실용"과는 거리가 멀다. 당신은 독일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 사람이다. 아마 독일에서 당신의 마음에 드는 옷은 거의 없을 것이다. 독일의 패션은 매우 투박하다. 그러나 매우 실용적이다. 날씨가 변덕스럽고 비가 자주 흩뿌리는 독일에서는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아웃도어 의류를 입는다. 이들에게 옷을 고르는 중요한 기준은 방수/방풍/방한 등 철저한 기능성이다. 


소비자의 성향이 이러하니, 디자이너가 있기는 한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투박한 디자인의 옷들이지만 그 기능성과 내구성만큼은 유럽 최고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유럽 주변 국가의 아웃도어 브랜드보다 가격이 더 저렴하다. 물론 아웃도어이기에 유럽의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보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도 객관적으로 저렴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 비싸더라도 실용적이고 오래 입을 옷을 산다는 것이 그들의 국민성이라는 뜻이다.


하여, 정리한다. 독일에서 무엇을 살 것인지 고민된다면 "실용"이라는 한 마디만 기억하자. 무조건 싼 것이 아니라, 비싸더라도 그 값어치 이상을 하는 기능성이 있는 것들, 조금 비싸도 한 번 사면 오랫동안 쓸 수 있는 것들, 독일에서는 그런 것을 사야 한다. 평소 국내에서 그런 독일 브랜드 제품을 눈여겨본 것이 있다면(아무래도 주방용품이 많을 것이다) 국내에서 파는 가격의 절반 정도로 독일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혹 독일에서의 판매가가 국내 판매가와 큰 차이가 없다면, 국내에서 수입하는 것은 중국산이고 독일에서 파는 것은 독일산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보면 된다. 나아가, 요즘 국내에서 "독일산"이라고 하면서도 국산보다 저렴하게 파는 일부 브랜드가 있는데, 이런 제품들은 독일에서는 구경도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