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독일뉴스

News | 독일 새 대통령은 슈타인마이어

요아힘 가우크(Joachim Gauck)의 뒤를 잇는 새 대통령으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Frank-Walter Steinmeier)가 선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집계했을 때 독일의 12번째 대통령이 된다.


독일의 정치체제는 독특하다. 아시듯이 독일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자는 총리다. 지금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이 숱하게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셨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인 요아힘 가우크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 정도로 독일의 대통령은 국정이나 외교무대에 얼굴을 자주 비치지 않는다.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독일의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의 상징적인 지위만 가지고 있을뿐 실질적인 권한은 없다. 대체 왜 그렇게 되었는고 하니, 히틀러 때문이다. 당시에는 대통령이 최고 권력자였다. 그런데 히틀러는 대통령 선거에 낙선한 뒤 힌덴부르크 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임명되어 총리직을 수행하다가 힌덴부르크가 사망하자 "내가 총리직과 대통령직을 다 갖겠다"고 법을 고쳐 총통(총리+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아시듯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역사와 민족 앞에 큰 죄를 지었다. 독일인은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다 박탈했다. 혹 나중에 히틀러 같은 놈이 다시 대통령이 되더라도 독재를 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 그러면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아예 없애면 되지 않을까? 어떤 나라든 국가원수는 필요하다. 총리가 실권을 가진 내각제 국가라 해도 국가원수는 존재한다. 일본과 영국이 대표적인 예. 총리가 실권을 가진 내각제 국가지만 국가원수 역할을 하는 국왕의 존재가 있다. 국왕의 존재가 없는 독일에서는 국가원수의 상징적 지위 때문에 대통령을 그대로 두어야 했던 것이다.


단, 대통령에게도 중요한 권한을 하나 남겨두었다. 바로 의회와 총리를 견제하는 것이다. 만약 총리가 법을 유린하고 독재를 하려 한다면 대통령이 총리를 해임할 수 있다. 만약 의회가 반민주적인 법안을 만들고 미쳐 날뛰면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할 수 있다. 즉, 독일에서 대통령이 존재하는 이유는, 총리와 의회가 안정적으로 국정을 수행하도록 돕기도 하고 견제도 하라는 역할인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 투표로 뽑지 않는다. 미국처럼 선거인단을 조직해 선거인단의 투표로 대통령을 뽑는데, 선거인단은 하원의원(국민 투표로 뽑은 국회의원), 저명 인사, 국가 원로 등으로 구성된다. 심지어 이번 선거인단에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요아힘 뢰브도 있었다고 한다.


슈타인마이어는 사민당 소속. 사민당은 메르켈이 속한 기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파트너지만 역사적으로 빌리 브란트 총리, 슈뢰더 총리 등 다수의 지도자를 배출한 독일의 양대정당이다. 집권 기민당 소속의 대통령 후보는 출마하지 않았다. 유력 후보가 출마를 포기하고 사퇴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전임 가우크 대통령은 무소속이었지만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된바 있다. 즉, 정당에 속하지 않아도 대통령 후보 출마는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선거인단도 인물의 됨됨이를 보고 민주적으로 투표한다는 뜻일 것이다.


독일은 올 해 총선을 치르고, 총선 결과에 따라 새 총리가 선출된다(총리도 국민 직선제로 뽑지 않는다). 메르켈은 4선에 도전하지만 난민 문제 등으로 최근 지지율을 많이 까먹었고, 국민의 존경을 받는 EU 의장 출신의 마르틴 슐츠(Martin Schulz)를 총리 후보로 내세운 사민당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대통령도 사민당에서 가져갔으니 메르켈의 연임이 상당히 불투명해지고 있다.


참고로, 슈타인마이어는 기민당-사민당 연립정권에서 사민당 몫이었던 외무장관을 오랫동안 맡았다. 외무장관은 우리 식으로 따지면 외교부 장관. 외교, 안보, 무역통상 등에 목소리를 낸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EU가 흔들리고 자유무역이니 보호무역이니 오락가락하는 불투명한 상황의 적임자가 될 수 있다. 만약 EU의회 의장 출신의 슐츠가 총리에 당선된다면, 독일인은 EU 체제를 확고히 수호할 것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고(물론 메르켈 역시 EU 수호론자지만, 상징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독일을 위한 대안(AfD) 같은 극우 정당의 설 자리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테러 등 흉흉한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더 보수적이 되기 마련이지만 독일은 일부러라도 그 반대의 모습으로 "저항"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