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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083. 베르히테스가덴 독수리 요새

5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1년 중 절반이 채 안 되는 5개월 정도만 볼 수 있는 경승지가 있습니다. 베르히테스가덴의 켈슈타인 하우스(Kehlsteinhaus)입니다. 원래 이름은 아들러호르스트(Adlerhorst). 영어로 Eagle's nest와 같은 뜻이라 "독수리 요새"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 왠지 폼나는 이름 같잖아요.


물론 이 폼나는(?) 이름이 나치 독일의 작품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렇게 부르면 안 되는 건데, 영어로 된 여행정보에 Eagle's nest가 워낙 보편화되다보니 독수리 요새로 부르는 자료가 꽤 많습니다. 아무튼, 바로 그 장소, 켈슈타인 하우스를 여행하기 위한 안내서입니다.

켈슈타인 하우스는 절벽 위에 지은 별장입니다. 건물 자체는 특별히 대단하지 않지만 주변 풍광이 매우 빼어난 자리에 아주 기막히게 둥지를 틀었습니다. 이 건물의 용도는, 부끄럽게도 히틀러의 별장이었습니다. 히틀러의 부관이 생일선물이랍시고 이런 걸 만들어 바쳤다고 하네요.


마침 히틀러는 베르히테스가덴에 종종 방문했습니다. 미치광이 독재자가 이런 외딴 산골에 왜 왔을까요? 바로 그의 연인 에바 브라운이 베르히테스가덴의 별장에 살았거든요.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베르히테스가덴에 은신토록 하고 히틀러가 종종 들렀다고 합니다. 히틀러가 종종 들르는 곳이니 경치 좋은 장소에 별장을 만들어 바치면 예쁨을 두둑히 받을 거라 생각했던 부관의 과잉 충성이 이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독수리 요새라는 이름은, 독일의 상징에 등장하는 독수리를 응용한 이름입니다. 실제 독수리가 서식하던 지역이라고 하구요. 독수리는 신성로마제국 시절부터 지금 독일까지도 국가의 상징이 되는(마치 한국의 호랑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막상 히틀러는 여기에 몇 번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연인을 은신 시킨 별장은 다른 곳입니다). 그 이유는 아래에 나옵니다.

전쟁이 끝나고 이 별장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됩니다. 그리고 이름을 켈슈타인 하우스로 바꿨습니다. 알프스에서 뻗친 이 부근 봉우리의 이름이 켈슈타인이라고 합니다. 레스토랑으로 개조해 간단한 먹거리와 음료 및 맥주를 팔고 있는데, 경치가 아주 좋다보니 인기가 높습니다.


현지인은 여기서부터 주변 산봉우리를 트래킹으로 정복하는 것이 일상적인 레저 코스입니다. 우리 같은 여행자는 그게 어려우니 켈슈타인 하우스에 올라 주변의 풍광을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 되는데, 만족감이 매우 높으니 일부러라도 찾아갈 가치는 충분합니다.

베르히테스가덴은 보통 독일 뮌헨 또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당일치기로 오가는 코스입니다. 일단 베르히테스가덴 중앙역에 내리면 바로 앞에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구요. 여기서 838번 버스를 타고 오버잘츠베르크 기록의 전당(Dokumentation Obersalzberg)에 하차합니다. 하차 장소에서 길을 건너면 좌측에 주차장이 보이는데요.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켈슈타인 하우스에 오르는 버스 매표소가 보입니다.

뮌헨에서 베르히테스가덴을 왕복할 때 바이에른 티켓을 이용합니다. 이걸로 838번 버스까지는 탈 수 있어요. 그런데 켈슈타인 하우스에 오르는 버스는 별도 티켓이 필요합니다. 매표소에서 왕복 승차권을 구입합니다. 성인 기준 16.6유로입니다.

매표소에서 구매할 때 승차 시간은 지정됩니다. 매표소 바로 앞에 정차하는 버스를 타고 올라가면 됩니다. 참고로 이 매표소에서 켈슈타인 하우스까지 가는 도로는 왕복 1차선이라 오로지 버스 전용입니다. 개인 승용차도, 관광버스도, 그 무엇도 지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걸어 올라가지 않는 이상 반드시 이 버스를 타야 켈슈타인 하우스에 갈 수 있습니다. (걸어서 올라가면 약 2시간 걸린다고 하네요.)

켈슈타인 하우스에 도착하면 일단 가장 먼저 할 일은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예약하는 겁니다. 버스에 태울 수 있는 승객수가 한정되어 있기에 반드시 예약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예약한 시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됩니다. 보통 2시간 정도 뒤로 예약하면 큰 무리가 없습니다.

예약을 마치면 이렇게 시간을 찍어줍니다. 만약 예약을 하지 않으면? 물론 관광을 마치고 내려와서 그 때 시간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람들이 예약을 해두었을 테니 빠른 시간대의 버스는 인원이 마감되어 예약이 불가능하겠죠. 관광 마치고 몇십문 이상 하염없이 주차장에서 기다려야 됩니다. 그래서 예약을 먼저 하라고 하는 겁니다.

예약을 마쳤으면 이제 입구로 들어갑니다. 동굴을 지나 끝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켈슈타인 하우스입니다. 엘리베이터는 2대가 있는데 아무래도 수용인원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성수기에는 대기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엘리베이터에 내리면 켈슈타인 하우스 레스토랑이니까 딱히 관심 갖지 말고 밖으로 나가세요.


히틀러가 여기를 몇 번 찾지 않았다고 했잖아요. 그 이유가 바로 이 엘리베이터입니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겼던 미치광이 독재자는 의외로 겁이 많았다고 하네요. 혹시라도 금속으로 된 엘리베이터에 벼락이 칠까봐 여기 오르는 걸 꺼렸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할 정도로 주군을 위한 충성을 바쳤는데 정작 주군이 겁쟁이인 걸 몰랐던 것 같습니다.

켈슈타인 하우스에서 나온 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세요. 어디까지 가라고 정해두지 않습니다. 그냥 자신의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그리고 예약해둔 시간에 맞춰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며 올라가면 됩니다. 이 부근 산은 바위산입니다. 등산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운동화는 필요합니다. 곳곳에 벤치도 있으니 힘들면 쉬어가도 됩니다.

혹시 길이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냐구요? 꼬마아이도 엄마 손 잡고 오르내릴 수 있는 곳입니다.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것의 역순입니다. 다시 켈슈타인 하우스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뒤 동굴을 지나 나옵니다. 그러면 버스 타는 정류장이 바로 앞입니다. 예약해둔 시간에 버스에 올라타면 끝. 그러면 매표소가 있던 오버잘츠베르크 기록의 전당까지 데려다주고요.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베르히테스가덴 중앙역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내려가는 시간에 좀 여유를 두고 켈슈타인 하우스에서 맥주 한 잔 하는 것도 좋습니다. 탁 트인 전망과 함께 신선놀음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 있으니 레스토랑이 어마어마하게 비쌀 것 같죠? 시중보다 아주 살짝 비싼 정도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보이는 뷰가 히틀러를 위한 전망이었던 셈입니다. 부관이 과잉 충성을 보일만큼 아름다운 전망입니다. 나같은 사람도 그 자리에서 맥주 한 잔 놓고 신선놀음할 수 있다니, 인생이란 게 이렇습니다. 그리고 이 경치를 볼 수 있는 기간은 1년 중 절반이 채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