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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54. 브레멘 음악대

아마 동화 <브레멘 음악대>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거기 나온 동물들이 뭐였더라, 그런 디테일은 혹 까먹었을지라도 동화의 줄거리는 다 아시겠죠. 주인으로부터 도망친 네 마리의 동물이 브레멘에 가서 음악대가 되자며 길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브레멘 음악대>는 독일에서 전해지는 설화를 바탕으로 그림 형제(Brüder Grimm)가 펴낸 동화책에 수록된 이야기입니다. 실컷 충성하며 평생 고생한 늙은 당나귀가 주인에게 학대당하자 주인으로부터 도망칩니다. 그리고 개, 고양이, 수탉을 차례로 만나 함께 길을 가죠. 그들의 목적지는 브레멘(Bremen). 거기서 음악대에 들어가자며 길을 가다가 도둑들이 사는 집을 발견하고, 네 마리 동물이 차례로 올라타 소리를 지르니 괴물이 나타났다며 도둑들이 도망갔답니다. 그래서 네 마리 동물들은 그 집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해피엔딩입니다. 그런데 남의 집을 빼앗은 거니까 얘네들도 도둑 아닌가?

도둑을 쫓아내려고 네 마리 동물이 합체(?)한 모습은 <브레멘 음악대>를 상징하는 포즈나 마찬가지죠. 브레멘 곳곳에서 이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림으로, 조각으로, 때로는 정교하지만 때로는 조악하게, 정말 다양하게 <브레멘 음악대>를 기념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중 "공식" 동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시청사 옆에 있습니다. 청동으로 만든 네 마리의 동상은 브레멘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며, 너도나도 사진을 찍고 가는 핫플레이스입니다. 가장 아래에 있는 당나귀를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어 너도 나도 당나귀를 어루만진 덕분에 앞다리와 코끝은 새하얗게 닳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브레멘 음악대> 내용대로라면, 네 마리의 동물들은 도둑을 퇴치하고는 그 집에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다시 말해, 브레멘에 가서 음악대가 되자던 처음의 목적을 버리고 자기들의 작은 행복을 찾기로 했답니다. (그 시절의 소확행일까요?)


즉, 이들은 브레멘에 가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지금 브레멘에서 이들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보게 됩니다. 특히 시청은 도시의 중심이죠. 시청사 옆 브레멘 음악대 동상은 이들이 브레멘에 무사히 잘 도착했노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동화 내용과 정반대죠.


그러나 지금 누구도 이들을 브레멘에서 만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화의 내용과 정반대이지만 모두가 자연스럽게 수긍합니다. 이토록 아이러니한 풍경이 어색하지 않는 동화 같은 마을, 브레멘이 들려주는 역설의 미학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동화 같은 풍경으로 기억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유피디의 독일의 발견>에 수록된 브레멘의 두 가지 역설의 미학 중 하나입니다. 나머지 한 가지 아이러니는 다음 기회에 다시 부연하겠습니다.

아, 그러면 "브레멘 음악대"가 실제로 존재했던 건 맞나요? 네, 맞습니다. 오래 전부터 브레멘 시에서 운영하는 마을 음악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동물들이 브레멘에 가서 음악대가 되자고 결의한 것은 팩트에 근거한 배경 설정이 맞습니다.


대체 그림 형제는 왜 이런 동화를 썼을까요? 힘 없고 약한 보잘 것 없는 이들도 힘을 뭉치면 악을 물리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주려 했답니다. 언뜻 들으면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맞고, 조금 더 진지하게 분석하자면 봉건시대에 권력자에게 억눌린 농민들의 저항권을 이야기한 진보적인 이야기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