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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79. 종교개혁 성지순례지 베스트 5

10월 31일은 종교개혁 기념일입니다. 가톨릭의 부패가 극에 달했을 때 이를 비판하며 개신교가 갈라진 것이 종교개혁이었죠. 이것을 특정 종교의 사건쯤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유럽 역사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버린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곳이 독일입니다. 그 때는 신성로마제국이었죠. 황제보다 교황의 권력이 더 강했던 곳에서, 교황의 잘못을 이야기하며 바른 길로 가자고 이야기한 이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입니다. 당연히 목숨 내놓고 한 거죠.


독일에는 오늘날까지 보존된 종교개혁의 중요한 장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지순례가 가능합니다. 마르틴 루터와 관련된 결정적인 다섯 곳의 도시를 소개합니다.



비텐베르크 Lutherstadt Wittenberg

종교개혁 기념일이 10월 31일인 이유, 바로 마르틴 루터가 자신이 일하던 교회의 출입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며 교황청에 반기를 들었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장소, 슐로스 교회(Schlosskirche)는 종교개혁의 심장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루터가 비텐베르크 신학교 교수로 일하면서 학교 건물에 살았는데, 바로 그 공간에 만든 루터 하우스(Lutherhaus) 기념관은 루터의 생애와 종교개혁을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아이제나흐 Eisenach

아이제나흐는 루터가 어린 시절 친척 집에 하숙하며 학교에 다닌 도시이고, 당시 그가 살았던 집은 루터하우스라는 이름의 또 다른 기념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제나흐에서는 뭐니뭐니해도 바르트성(Wartburg)이 핵심적인 성지순례지입니다.


루터는 교황청으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받았으나 끝내 신념을 버리지 않아 "법에서 추방"되는 벌을 받게 됩니다. 법에서 추방된다는 뜻은 법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뜻, 다시 말해 누가 루터를 죽여도 살인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에 루터의 후원자인 작센 선제후가 루터를 위장 납치해 바르트성에 보호했고, 루터는 성의 작은 골방에서 10개월만에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합니다.

당시 루터가 성서를 번역한 골방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독일어는 하층민의 언어로 체계가 없고 지역마다 차이가 컸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을 읽다보니 사람들이 똑같은 독일어를 접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문법과 체계의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즉, 루터는 단순히 종교개혁에서만 업적을 남긴 게 아니라 독일어의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인입니다. 성서 번역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내용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우선 생략합니다.


보름스 Worms

루터가 법에서 추방되는 판결을 받은 장소가 보름스에 있는 제국의회 회관이었습니다. 루터가 마지막으로 목숨을 구할 기회를 받았지만 황제와 주교 앞에서 끝내 자신의 신념을 지켰고, 결국 사실상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 종교개혁의 불씨가 제대로 타오르게 된 상징적인 장소가 됩니다. 회관 건물은 오늘날 남아있지 않지만 루터가 섰던 자리는 바닥에 현판으로 표시해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름스에서는 거대한 루터 기념비(Lutherdenkmal)를 만들어 루터를 기리고 있습니다. 독일 전국에 마르틴 루터의 동상과 기념비는 매우 많습니다만, 이곳에서는 루터뿐 아니라 그의 동지와 후원자, 그리고 종교개혁에 동참한 도시의 상징 등을 모두 한 데 모아 입체적인 기념비를 만들어 종교개혁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아이슬레벤 Lutherstadt Eisleben

아이슬레벤은 루터의 고향입니다. 그의 생가(Luthers Geburtshaus)는 기념관으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의 초기 생애를 위주로 전체적인 삶의 궤적을 알려주고, 그의 뿌리나 마찬가지인 부모님에 대한 자료 등도 충실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아이슬레벤은 루터가 임종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루터는 갓난아기일 때 아버지의 일자리 때문에 다른 도시로 이사갔기에 아이슬레벤에서 거주한 기간은 몇달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년에 다른 도시로 가던 도중 심장마비가 발생해 아이슬레벤에서 휴식을 취하며 몸을 추슬렀지만 끝내 숨을 거두고 맙니다. 공교롭게도 태어난 곳에서 사망하게 되어 더욱 드라마틱한 일대기를 완성하게 되었죠. 그가 숨을 거둔 건물 또한 사가(死家; Luthers Sterbehaus) 기념관으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에르푸르트 Erfurt

원래 루터는 성직자가 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또래 중 두각을 보인 법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들판에 내리치는 벼락을 보며 성직자가 되겠다고 맹세합니다. 루터가 다닌 대학교가 에르푸르트에 있습니다. 그리고 에르푸르트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장소가 바로 에르푸르트 대성당(Erfurter Dom)입니다. 아무래도 대성당은 가톨릭교회이기에 루터와의 인연을 직접적으로 기리거나 전시하지는 않습니다만 루터 인생의 전환점을 상징하는 장소이기에 순례지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사제 서품을 받고 수도사가 되어 처음 들어간 곳이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너 수도원(Augustinerkloster)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루터에게 신은 매우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벼락 치는 모습을 보며(=목숨의 위협을 느껴) 성직자가 되기로 했으니까 당연한 일이겠죠. 끊임없이 스스로를 학대하다시피 고행하며 혼돈의 시기를 보냈던 장소이며, 루터가 머물렀던 당시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종교개혁과 관련한 거대한 사건이 연달아 있었던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구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코부르크(Coburg) 등 루터와 관련된 성지순례지가 독일에 아주 많습니다. 심지어 유명한 관광도시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도 종교개혁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10월 31일 종교개혁 기념일을 즈음하여 독일로 성지순례 가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중요한 것부터 사소한 곳까지 모두 그 나름의 의미를 담아 루터의 일대기와 함께 성지순례지를 소개하는 가이드북 <루터의 길>이 도움이 될 거라고 수줍게 광고합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