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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81. 베를린 훔볼트하인 공원

베를린 지하세계(Berliner Unterwelten)가 소개된 TV 프로그램의 리뷰를 적은 김에 방송에 나오지 않은 관련 장소를 하나 더 소개할까 합니다.

여기는 베를린의 훔볼트하인 공원(Volkspark Humboldthain)입니다. 넓은 잔디밭과 울창한 나무가 있는 평범한 시민공원처럼 보이죠.

공원의 북쪽으로는 이런 가파른 언덕이 있습니다. 나무도 울창하니 언덕보다는 "야산"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여기까지는 뭐 그런가보다 싶은 장소입니다. 넓은 시민공원에 야산이 있는 게 대단한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 산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겁니다. 사람이 산을 만든다고요? 누가? 왜요?

산꼭대기에 올라가니 이런 모습이 펼쳐집니다. 제가 산을 올라온 방향은 위 사진에서 오른쪽입니다. 그러니까 등산로에서는 보이지 않는 꼭대기 반대편으로 이런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는 거죠.


이 구조물은 나치가 만든 대공포탑입니다. 연합군의 폭격기가 뜨면 포를 발사해 격추시키는 방공망이죠. 어찌나 튼튼히 지었는지 폭격에 맞아도 부숴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이 대공포탑을 방공호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베를린을 접수한 연합군은 이 대공포탑을 부숴버리려 했으나 워낙 튼튼하게 지은지라 잘 부숴지지도 않았습니다. 이에 연합군의 선택은, 대공포탑을 파묻어버리기로 합니다.


당시 베를린은 폭격으로 온 도시가 파괴되었으니 길바닥에 건물의 잔해가 나뒹굴고 있었겠죠. 그걸 치워야 다시 도로도 깔고 건물도 지으니까 잔해를 치워야 했는데, 그걸 어디 갖다버릴 곳도 없잖아요. 그러니 연합군은 그 잔해를 가져와 여기에 쌓기 시작했습니다.


건물의 잔해로 대공포탑을 덮어버렸어요. 그리고 흙을 깔고 나무를 심어, 마치 원래 산이 있었던 것처럼 대공포탑이 존재를 지워버린 겁니다. 이런 걸 보면 나치도 미쳤지만 연합군도 제정신은 아니죠.


그런데 이 대공포탑 앞으로 철로가 있었습니다. 위 사진 기준으로는 왼편이 철로입니다. 막상 산을 만들 때 생각해보니 이게 원래 존재하던 게 아니라 흙무더기를 쌓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혹 폭우 등으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해 철로를 덮칠 것이 우려되었습니다.


그래서 철로의 반대편은 완전히 파묻었지만 철로 방면으로는 완전히 파묻지는 못했고, 그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이렇게 빼꼼 삐져나와 이 대공포탑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대공포탑 내부를 베를린 지하세계 투어의 하나로 들어가볼 수 있습니다. 내부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렇게 야산을 올라 대공포탑의 모습을 보는 건 가능합니다.

공원 쪽에서 등산하지 않고 큰 길에서 위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면 보다 수월하게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인간이 만든 산"의 모습을 실감나게 느끼기는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