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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93. 세상을 바꾼 성지의 어제와 오늘

10월 31일은 종교개혁 기념일입니다. 왜 이 날짜가 기념일이 되었는고 하니, 이 날이 종교개혁의 상징적인 행위가 발생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Lutherstadt Wittenberg)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설교하던 한 성직자가 자신이 일하는 교회 출입문에 "대자보"를 붙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교황청을 상대로 말이죠.


당시 교황청에서는 면죄부(면벌부) 판매 등 비성서적인 부패와 타락이 극에 달한 시기입니다. 이 성직자가 보기에 교황청의 행동은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났습니다. 그래서 함께 토론을 해보자며 발제문을 붙인 겁니다.

세상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오늘날처럼 SNS에 인증하며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세상이 아니었지만, 이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교황청의 타락에 분노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차마 내가 앞장서서 목소리를 냈다가는 내가 피해를 볼 것 같아 속으로 분노를 삼키고 있었는데, 누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나서주니 순식간에 그 밑에 모이게 된 겁니다.

이 성직자가 바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그리고 루터가 일하던 교회가 슐로스 교회(Schlosskirche), 루터가 슐로스 교회 출입문에 써 붙인 대자보가 <95개조 반박문>입니다. 이걸 붙인 날이 10월 31일, 그래서 이 날짜를 종교개혁 기념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딱 한 곳만 고르라 하면 슐로스 교회를 꼽는 게 당연하죠.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여기가 "세상의 역사를 바꾼 성지"입니다.


독일어로 슐로스는 "성(castle)" 또는 궁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슐로스 교회를 성(城) 교회라고 적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슐로스 교회를 영어로 번역한 castle church를 단순히 한국어로 다시 번역한 표기입니다. 저는 "성 교회"라는 문구가 마치 "성스러운 교회(holy church)"라는 뜻으로 오해하기 딱 좋기 때문에 슐로스 교회라는 표기를 인용합니다.


아무튼, 그렇다는 것은 슐로스 교회는 성에 딸린 교회라는 뜻이겠죠. 원래 여기에는 작센 선제후국에서 지은 거대한 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은 무너지고 지금은 슐로스 교회만 남아있는 중입니다. 성이 있던 자리에 복원된 건물은 지금 유스호스텔로 사용되고 있어요. 저도 거기서 하룻밤 묵어봤습니다만 전혀 성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써붙인 문은, 훗날 <95개조 반박문>의 내용을 새긴 청동문으로 교체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흔히 종교"개혁"이라고 하면 뭔가 급진적이고 과격한 투쟁을 떠올릴 수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루터는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수였으니 성경을 잘 알았겠죠. 당시 성경은 라틴어나 헬라어로만 출간되었습니다. 독일인은 이걸 번역해서 이해해야죠. 내가 아는 성경의 내용과 지금 교황청이 하는 행동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잘못 해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 토론을 해보자, 이런 의도로 95가지의 토론 주제를 게시한 겁니다. 싸우자는 게 아니라 토론하자는 거였어요.


(여담이지만,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교회 출입문에 붙였다는 말은 그의 동지 멜란히톤의 저서에 언급되지만 그 외에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 문에 붙인 건 아니라고 주장하는 역사가도 있습니다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토론은 불가능했습니다. 교황청에서는 즉각 루터에게 주장을 철회하라는 압박을 가했고, 속으로만 분노하던 이들은 루터의 주장 아래 모였습니다. 비텐베르크라는 시골 도시의 이름없는 성직자는 졸지에 종교개혁의 주동자가 되었습니다.


루터의 의도는, 교황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니 토론을 하며 올바른 의견을 정립하여 실수를 바로잡게 하겠다, 이런 "선의"의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교황도 사람"이라는 그 전제 자체가 이단으로 몰려 박해받는 근거가 되었으니 더 이상 "말"로 해결할 수 없었고, 결국 루터도 교황청에 돌아서 투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슐로스 교회의 내부입니다. 장엄하고 품격이 넘치죠. 원래 성의 일부였으니 당연합니다. 그리고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성도 복원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비텐베르크를 마지막으로 갔던 것이 2016년. 당시 열심히 공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이 업로드 되는 10월 31일, 저는 아마도 비텐베르크에 있을 겁니다(독일의 가을 날씨는 워낙 변화무쌍하여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것입니다. 그리고 유의미한 변화가 있다면 귀국 후 다시 한 번 글을 정리하겠습니다. 아마도 내년 종교개혁 기념일을 즈음해서요.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