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두.유. Travel to Germany

#245. 바르샤바와 베를린의 사과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의 글을 옮겨 적었습니다.


1월 27일은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입니다.

아시듯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자행한 대규모 인종학살을 홀로코스트라 부릅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유대인이었지만, 그 외에도 슬라브족 등 유럽의 많은 민족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특히 폴란드에 거주하던 유대인은 그 피해가 가장 극심했죠.

가장 악명 높은 강제수용소인 아우슈비츠 역시 폴란드에 있습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셨다면 폴란드의 유대인이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 것입니다.


.................


전쟁이 끝난 뒤 폴란드는 (비록 소련의 영향을 받는 공산주의 국가였지만) 독립국이 됩니다. 폴란드 국민이 독일을 혐오하는 것은 당연한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1970년 독일의 총리가 폴란드에 방문한답니다. 그것도 같은 공산주의 "동지"인 동독의 총리가 아니라 서독의 총리가 말입니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 반대시위를 하고 노골적인 증오를 드러냅니다.


서독의 총리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정해진 일정에 따라 게토 영웅 기념비에 헌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게토 영웅 기념비는 게토(유대인 격리수용구역)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던 유대인이 1943년 맨몸으로 나치 독일에 항거한 사건을 기념합니다. 전후 1948년 설치되었는데, 나치 독일에서 만든 기념물을 파괴하고 그 잔해를 가지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서독의 총리는 갑자기 무릎을 꿇었습니다.

비가 오는 가운데 그 비를 그대로 맞으며 돌바닥에 무릎꿇고 희생자에게 사죄하였습니다. 이 장면을 본 폴란드 국민은 서독 총리에 대한 반감을 거두게 됩니다. 독일이 전쟁범죄를 청산하고 사죄하여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전 세계에 보여준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세계사에 기록되는 순간입니다.


사진 속의 서독 총리는 빌리 브란트입니다.

그는 재임 기간 중 "동방정책"을 추진해 동독, 폴란드, 나아가 소련까지도 관계를 개선하여 훗날 독일 통일에 초석을 놓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하구요.

재미있는 것은, 빌리 브란트는 나치에 탄압받은 운동가였다는 사실입니다. 나치가 저지른 죄를 직접 사죄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수상으로서 그는 독일을 대표하여 무릎을 꿇었습니다.

찬사 받기에 합당한 위대한 지성입니다.


.................


폴란드의 유대인 중 나치에게 끌려가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부부가 있습니다.

다행히(?) 그들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청소 당하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당연히 독일 하면 몸서리칠 수밖에요.

그들의 아들도 독일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리 없습니다. 아들은 건축가가 되어 이름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독일 통일 후 베를린에서 박물관 건축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응모합니다.

그것은 나치에게 희생당한 유대인을 기리는 박물관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의 산증인인 그의 설계가 당선되어 그의 구상대로 박물관이 완성됩니다.


그는 희생자가 받았을 상처를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기괴한 건축물을 완성했습니다.

건물은 다윗의 별(유대인의 상징문양)을 찢어발긴 모습으로 자리 잡았고, 건물의 외벽에 칼로 베인듯한 수많은 날카로운 장식을 더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다니엘 리베스킨트.

그가 만든 유대인 박물관이 개관식을 가질 때 그는 아버지와 함께 초청받아 행사에 귀빈으로 참석합니다. 이 때 행사에 참석한 독일의 슈뢰더 총리가 리베스킨트의 아버지에게 무릎 꿇고 사과합니다.

슈뢰더 총리의 아버지는 전쟁 당시 독일군이었다고 합니다. 독일군의 아들이 홀로코스트 피해자에게 사과한 것입니다.


오늘날 베를린에 참 많은 박물관이 있지만 유대인 박물관은 그 중에서도 몇 손가락에 꼽히는 명소입니다.

세대를 초월한 사죄의 현장이니 그 진정성은 피해자뿐 아니라 다른 모든 관광객의 마음도 울리는가 봅니다.


.................


사과라는 것은 말입니다.

사과 받을 사람이 "이제 됐으니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하는 겁니다. 그게 진심이 담긴 사과입니다.

미안하다는 형식적인 인사 한두번 하고는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난 할만큼 했다고 말하는 건 가짜입니다.


독일의 사과는 진짜입니다.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들은 사과하고 또 사과하고 또 사과합니다.

모든 것을 기록하고 공개하여 후손에게 남겨 "다시는 이런 짓을 저지르지 말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합니다.


이 주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떤 나라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사과를 끝냈고, 그것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말합니다. 사과를 안 받는 건 니네 잘못이고 우리는 할만큼 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테지만, 그래도 바르샤바와 베를린의 사과를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