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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tvN <알.쓸.신.잡3> 프라이부르크 - 과거

뒤늦은 TV프로그램 리뷰 하나 추가합니다. 너무 유명한 프로그램이라 설명이 필요없을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3>에 나온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 im Breisgau) 이야기입니다.

사실 제가 이 출연진의 코멘트에 토 달 자격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앉아 듣고 배우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독일에 있어서만큼은 저도 나름 이야기를 섞을 수는 있을 것 같다고 건방을 떨며, 시즌3에서 독일 프라이부르크를 이야기한 6화(2018.10.26 방송)만 리뷰를 올려봅니다. 실제로 방송에 언급된 수많은 지식들이 이미 제 책이나 블로그에 언급된 것들이기도 합니다.


이 프로그램이 방송될 때 저는 한국에 없었는데, 출국 전 아테네와 피렌체에 갔다는 소식까지는 기사로 보았습니다. 어쩌면 독일도 갈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만약 간다면 김영하 작가의 작품 무대이기도 한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를 갈까? 유시민 작가가 공부한 마인츠(Mainz)에 갈까? 아니면 촬영시기(2018년)가 마르크스 200주기였기 때문에 그의 고향 트리어(Trier)에 가서 공산주의부터 시작해 민주주의 자본주의 등 온갖 "이념적" 수다를 떨까? 아테네를 갔으니 아테네를 독일에서 리바이벌한 뮌헨(München)을 갈까? 그 정도만 생각했었죠.

그랬더니 프라이부르크를 갔대요. 해외에서 기사로 보면서 "와!" 했습니다. 이건 보나마나 환경과 에너지 이야기를 하겠구나 싶었죠. 지금 한국에서 가짜뉴스가 유독 심하게 판치는 분야 중 하나가 환경과 에너지니까 엄청난 수다를 떨었겠구나 싶었죠. 그래놓고 이제 와서 방송을 뒤늦게 보았습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을 이번에 처음 보았습니다. 과연 소문대로 주제의 틀을 정하지 않고 온갖 이야기를 넘나들더군요. 방송 내용이 너무 방대한 관계로 리뷰는 두 편에 나누어, 나치와 전쟁 등 과거 이야기, 환경과 생태 등 미래 이야기로 나누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수다 장소는 프라이부르크의 한 레스토랑. 독일 대표 향토요리인 학세, 여기 곁들이는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 방송에서는 사워크라우트로 표기)를 놓고 수다를 시작합니다. 이 레스토랑 위치는 아래 지도 참조하세요. 구시가지쪽이 아니어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닙니다. 조용한 주택가에 있습니다.

음식을 앞에 놓고 수다를 떨다가 낮에 먹은 아프가니스탄 음식 이야기가 나오고, 다국적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독일 이야기, 그것의 역사적 배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게 정말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더군요.

일단 아프가니스탄 음식을 파는 곳은 아래 지도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역시 관광지 쪽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독일에 왜 이민자가 많은가, 그들이 자행한 최악의 인종차별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입니다. 독일은 가해자입니다. 그런 독일인이 또 타민족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이면, 남이 욕하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두려운 겁니다. "이러다 우리 또 미치면 어떻게 하지?"

경제성장기에 필요한 노동력을 위해 이민자를 적극 수용한 것도 맞는 말이고, 그 때문에 한국에서도 광부와 간호사를 독일에 잔뜩 보냈습니다만, 아무튼 기본적으로 독일인은 외국인을 혐오하고 차별했던 과거에 대해 반성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외국인을 배척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외국인 혐오와 차별, 남의 일만은 아니죠? 만약 모두가 이렇게 혐오와 차별을 합리화했다면, 사실 한국이 진작부터 피해자가 되었을 겁니다. 한때는 외국인 노동자의 신분으로 타지에서 험한 일 하며 힘든 시절을 보냈던 나라에서, 이제 먹고 살만 하다고 외국인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음식에서 넘어온 인종차별 화두를 받아 이번에는 인종차별 피해자를 위한 기념비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프라이부르크뿐 아니라 독일 어디서든 발견되는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입니다. 방송 중 유시민 작가는 슈톨퍼슈타인이라고 하던데 자막은 슈톨퍼스타인이라고 잘못 적었습니다. 저는 슈톨퍼슈타이네(슈톨퍼슈타인의 복수형 단어)라는 이름으로 한 번 자세히 소개해드린바 있으니 이 내용에 대한 코멘트는 해당 글로 대신합니다.


그리고는 슈톨퍼슈타인의 희생자에게 폭력을 가한 가해자, 즉 나치 독일의 만행으로 화두가 넘어갑니다.

희생자들은 왜 미처 도망치지 못했을까 이야기하면서 "여기서 스위스가 가깝다"는 말을 하는데, 방송에서는 별도의 부연이 없었습니다만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으로 유명하죠. 나치도 스위스만큼은 못 건드렸습니다. 그러니 스위스로 도망갔으면 살았겠죠. 프라이부르크는 독일과 스위스의 국경에서 아주 가깝습니다.

왜 도망치지 못했는고 하니, 그만큼 독일이 철저하고 꼼꼼하며 성실하기 때문입니다. 독일군이 사람들을 잡아다 수용소로 보내는 악행을 저지를 때에도 워낙 철저하고 빈틈이 없어 도망치는 게 불가능했다는 거죠.

그렇게 집단적으로 철저하게 악행을 저지른 독일군, 그러면 독일군 전체가 무슨 악마 집단이었는가, 독일인의 DNA에 잔혹무도한 유전자라도 들어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고 말하면서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합니다.

"악의 평범성"은 EBS에서 방송했던 <난생처음 다크투어>라는 프로그램에도 언급되었었기에 저도 해당 프로그램의 리뷰에서 코멘트 했었는데요. 이 이론을 이야기한 한나 아렌트가 프라이부르크 출신인 건 몰랐습니다. 이렇게 또 연결되는 게 재미있네요.

히틀러가 죽일 놈이다, 히틀러라는 악마가 저지른 짓이다, 그렇게 해버리면 거기에 동조하거나 또는 방관했던 많은 독일인의 죄는 면책됩니다. 히틀러만 처벌하면 됩니다(물론 그 전에 자살했지만).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다음에 또 히틀러 같은 자가 나타나 "말빨"로 국민을 꼬시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비극이 되풀이됩니다.


독일의 역사인식은 "우리 모두 죄인이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나도, 내 가족도, 내 이웃도, 이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악인이 될 수 있다, 이 끔찍한 폭력이 되풀이될 수 있다, 이 역사인식을 끊임없이 학습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또 히틀러 같은 놈이 나타나도 사람들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웃의 어떤 나라도 히틀러와 같은 시기에 나치 독일 못지않은 만행을 저질렀죠. 하지만 그들은 말합니다. 전쟁을 일으킨 소수의 권력자는 잘못한 거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국민들은 전쟁의 피해자라고요. 그 나라에서 만드는 영화나 만화 등을 보면 그 시기에 전쟁으로 피해받고 고난을 겪는 평범한 주인공의 시선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피해자라는 거죠.


이런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면, 또 잘못된 권력자가 나타나 잘못된 길로 인도할 때 무비판적으로 따라갑니다. 악행에 동조하거나 방관하게 됩니다. 지금은 평범한 사람이죠. 선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사람이 악인이 됩니다. 이게 "악의 평범성" 이론입니다.

결국 역사 속에서 어떤 악한 일이 벌어졌다면, 그것에 순응한 모든 공동체원의 공동 책임입니다. "나 하나 나선다고 뭐가 달라져?" "그러다 내가 피해보면 누가 책임져 준대?" "그 시절엔 그럴 수밖에 없었어" "지금부터 잘하면 되지" 이런 류의 "합리화"를 일체 거부하는 것, 지금 독일에게서 배워야 할 중요한 지점입니다. (이것이 이웃나라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건 굳이 부연할 필요 없겠죠?)


관련된 주제로 유시민 작가와 유희열씨가 방문한 프라이부르크 대학 박물관 장면이 나옵니다.

우생학, 그러니까 인종에 우열이 있다는 헛소리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자가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였대요. 학교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과거죠. 하지만 부끄러운 과거까지도 다 공개해야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일관된 철학을 보여줍니다.

다시 또 이 키워드가 나왔습니다. "다시는 비극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것 때문에 독일은 부끄러운 과거를 모두 공개하고 끊임없이 교육합니다.


대화가 이렇게 넘어가는데 이 분들이 히틀러 이야기를 안 했을 리가 없죠.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부터 독일의 상황들, 전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들을 쉽게 이야기해줍니다.

특히 히틀러의 정치인생의 첫 발이 바로 이 맥주폭동인데요. <뮌헨 홀리데이>에 폭동이 벌어진 장소의 소개는 물론 폭동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세한 스토리를 소개해드리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단순한 여행정보만 나열하는 책이 아니라 깊게 들어간 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히틀러가 독일인의 자발적인 지지를 받아 집권하고는 독일인을 광기에 물들게 한 전략(?)과 수단을 이야기하죠.

오늘날 독일인이 가장 경계하는 이념이 전체주의입니다. 국민의례 같은 의식도 싫어합니다. 여러 군중이 똑같은 국가를 부르고 똑같은 국기 앞에 경례하며 국가에 충성을 다짐하는 그런 전체주의적 발상을 몹시 경계합니다.

이어지는 대화내용을 두고 유희열씨는 "참 익숙한 내용"이라고 코멘트합니다. 히틀러의 방식이 굉장히 익숙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벤치마킹한 것처럼 따라했던 사람이 있거든요. 통치자가 증오와 혐오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순간 비극은 시작됩니다. 방송을 다시 보는 분들이 있다면 이 대화 내용을 히틀러의 만행이라고 국한하지 말고 한국의 현대사에 대입하여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편을 가르고 적을 규정하고 적을 타도하려고 극단적인 증오를 드러내는 건 인간의 본성일지 모릅니다. 이것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게 교육의 역할이라고 유시민 작가가 이야기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교과서에 적어놓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열심히 떠든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에요. 시험에 출제할 테니 외우라고 해서 되는 문제도 아니에요.

앞서 슈톨퍼슈타인을 보여주었죠. 그냥 일상의 한 부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학교와 집에서 강조하여 교육해야 합니다. 일단 슈톨퍼슈타인처럼 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게 있어야 돼요.


한국도 그러한 장치들이 더 많아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김진애 박사의 의견에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자, 이제 이 쉴틈없는 수다는 독일의 역사에서 벗어나 프라이부르크의 현재로 넘어가고, 거기서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