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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EBS <난생처음 다크투어> #2. 뉘른베르크

EBS <난생처음 다크투어>의 첫 방송분의 후반부입니다. 두 번째 다크투어 도시는 뉘른베르크입니다.

뉘른베르크는 바이에른 제2의 도시이며, 히틀러가 사랑한 도시이기도 했죠. 당연히 많은 역사적 흔적이 남아있는데, 그 스케일도 평범하지 않습니다.

첫번째 장소는 나치 전당대회장. 나치는 뉘른베르크에 5만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대회장을 만들려 했습니다. 말이 좋아 전당대회장이지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거대한 신전을 만들려 했었고, 실제 전당대회장 옆에 신전을 모방한 연단을 세우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나치의 패망으로 건물은 완성되지 못했으며, 지금의 모습으로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전당대회는 나치의 권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방송에 따르면 당시 뉘른베르크 인구가 40만명, 그런데 한 번 전당대회를 열면 전국에서 100만명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참고로 지금도 독일에서 인구 100만명이 넘는 도시는 단 넷뿐입니다. 지금도 그러한데 그 당시에 100만명이 찾아온다는 건 정상이 아니죠.


여기서 히틀러는 군중을 향해 연설로 선동하고 세뇌합니다. 자신을 마치 신처럼 보이도록 포장하는 이미지 메이킹도 빼놓지 않습니다. 누가 협박해서 참석하는 게 아니라 독일인은 -당시 역사적 상황과 세뇌의 결과겠지만- 진심으로 나치를 지지했고 히틀러를 영웅으로 생각했기에 이 광기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몰랐던 사실도 배웠습니다. 전당대회에 참여하려면 돈을 내야 했고, 나치는 사람들을 상대로 "굿즈"까지 팔면서 돈벌이에 여념이 없었다는 것. 즉, 나치 전당대회는 단순히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이기까지 했던 겁니다.

원래 계획은 이런 거대한 원형경기장을 만든 뒤 지붕까지 덮으려고 했어요. 수만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을 만드는 건 그 시절에도 가능했습니다. 그 시절에 만든 수만명 수용 규모의 축구장을 아직도 사용하니까요. 하지만 기둥 없이 지붕까지 덮는 건 어마어마한 시도였죠. 오늘날로 따지면 돔구장을 만들려 한 셈인데요. 그것이 가능했던 그 시절의 독일의 건축공학 기술은 참 대단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튼 나치 전당대회장은 여기까지만 완성된 상태에서 나치는 패망했고, 지금 우리는 겉에서 보면 어마어마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황폐한 이중적인 폐허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완성된 부분, 그러니까 건물 내부 공간에 나치 기록관이 운영 중입니다.

뉘른베르크 맥주회사인 투허(Tucher) 맥주로 목을 축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생각해볼만한 화두를 하나 던져줍니다. 나치 전당대회장 같은 저런 흉물을 철거하지 않고 놔둔 이유는 뭘까요? 어차피 건물로서의 기능도 하지 못할 텐데요.

어두운 역사를 다 지우고 없애버리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어두운 역사를 더 이상 다루지 않겠다는 뜻이니까요. 부끄러운 역사일수록 세상에 더 느러내놓고 솔직히 이야기해야 됩니다. 다 없애버리고 세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것은 그 어두운 역사를 이제 그만 잊어주기 바라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뉘른베르크의 다음 다크투어 장소는 벙커 미술관입니다. 나치는 전쟁 당시 폭격으로부터 예술품을 보호하기 위해 맥주 창고가 있던 지하실을 개조해 벙커를 만들었습니다. 얼핏 들으면 예술을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적극적은 노력으로 보이는데요. 정작 사람이 몸을 피할 벙커보다 예술품을 보관할 벙커를 먼저 만들었다는 것에서 나치의 야만이 또 나타나는 거죠.


나치는 위대한 게르만족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죠. 우리가 이렇게 위대한 민족이라고 선전하려면 문화유산은 필수입니다. 그래서 예술을 보호한 거에요. 예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요. 벙커 미술관은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라서 저도 내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방송을 통해 귀한 경험을 했습니다.

뉘른베르크는 폭격으로 도시 전체의 91%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폐허를 앞에 두고 나치는 "1년이면 복구한다"고 선동합니다. 1년 내에 복구한다는 것도 웃긴 소리이지만, 당장 가족을 잃고 살 집도 파괴되었을 사람들한테 "1년만 참아"라며 망언을 합니다. 돌을 던져도 시원치 않을 판에 사람들은 그 말에 박수를 보냅니다. 지금 생각하면 뭔가 다들 미친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다들 평범하고 멀쩡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사회가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미치게 만듭니다. 한 발짝 떨어져 들으면 죄다 미친 소리인데, 그 현장 안에서는 모두가 열광하고 박수를 보내며 자발적으로 동참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10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미치광이가 만드는 게 아닙니다. 나와 내 주 변에 있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 광기를 완성합니다.


그러니 이게 단지 수십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없는 거죠. 오늘 당장 내가 사는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방송에서는 이것을 "악의 평범성"이라는 용어로 이야기합니다. 너무 악해요. 악마를 보는 것처럼 끔찍하게 악해요. 그런데 알고보니 그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너무도 평범한, 우리 주변에 있음직한 사람들이라는 거죠. 평범한 사람도 사회와 환경의 어떤 조건들이 맞아떨어지면, 그리고 부조리에 맞서지 않고 그저 순응하고 따라가면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악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뉘른베르크 다크투어가 주는 교훈입니다.


여기까지가 2부작 중 1부의 리뷰입니다. 2부에서는 베를린과 에센을 간다고 합니다. 도시 이름만 들어도 또 어마어마한 이야기거리가 있겠구나 싶습니다. 원래 2부작을 모두 후딱 보고 빨리 손을 털려고 했는데, 그럴 수 있는 방송이 아닙니다. 2부 리뷰는 며칠 걸릴 것 같네요.


방송사에서 유튜브에 무료로 전편을 올려두었으니 꼭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가기]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